텃밭에서 얻는 힐링
텃밭에서 얻는 힐링
  • 전주일보
  • 승인 2021.08.1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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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금 종/수필가
백금종/수필가

코로나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서 사람들은 마음을 치유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른바 힐링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치유하는 일은 누구나 소망하는 일이었다. 다만 주어진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 꿈으로나 바라는 일이었을 뿐.

일상에서 지친 몸을 풀기 위해 사람들은 산과 바다로 향한다. 누더기처럼 헤진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꽃과 나무를 가꾼다. 아름다운 선율을 감상하며 응어리를 풀어내고 한편의 독서로 사색의 여유를 갖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텃밭을 가꾸며 땀의 보람을 알고, 생명의 소중함을 확인하기도 한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방법이야 다르지만, 힐링을 위해 나선 사람들은 언제나 마음 설렌다.

나는 요즈음 텃밭을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 시대이고 보니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집에서 매일 소일하는 것도 따분한 일이라 그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텃밭 가꾸는 일이다. 땅을 파 엎고 고랑을 치며 비닐로 멀칭을 한다. 그곳에 고추와 가지, 오이도 심었다. 심어놓은 생명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는지, 새잎은 잘 돋아나고 있는지 살피고 또 살피는 것이 하루일 중 하나이다. 바싹 메말라 고개 숙인 녀석들에게는 물을 뿌려주고 바람에 흔들린 모는 든든하게 북을 해 준다.

옆자리를 차지하려 기웃거리는 잡초도 뽑아내고 괴롭히는 벌레들도 잡아낸다. 자식만큼이나 정성으로 손길을 주니 그들도 나의 수고에 보답하려는 듯 하루가 다르게 잘 자란다. 풋풋한 그 모습을 보면 고맙기도 하고 기쁨은 덤이다. 일을 낙으로 생각하니 순식간에 피로도 사라지고 몸이 개운해진다.

오늘 아침에도 텃밭으로 갔다. 이슬에 몸을 씻은 채소들이 고개를 들며 나를 반긴다. 이제는 제법 윤기도 흐르고 의젓하다. 이식할 때 가녀리고 허접했던 모습은 간데없이 듬직하다. 목욕하고 곱게 옷 차려입은 아이처럼 풋풋하다.

나는 그간 몇 해 동안 텃밭을 가꾼 경험이 있다. 그때는 젊었을 때라 고단한지도 모르고 황소처럼 일했다. 그러나 작물들이 잘 자라지 않았다. 의욕만 앞서고 경험이 부족했다. 거름만 많이 주면 잘 자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채소에도 사랑이 필요했다. 자식처럼 자주 보며 정을 주고 말을 알아듣는지 모르지만, 대화도 해야 잘 자란다.

튼실하게 자라는 채소들을 보고 옆자리의 젊은이들이 시범포라며 따라한다. 경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자산이다. 젊은 시절에 익힌 영농법으로 늘그막에 본을 보여 줄 수 있어 체면치레가 되었나 싶었다. 그러나 부담감이 생기기도 했다. 시작만 번지르르하고 작물을 잘 키우지 못하면 그 또한 낭패 아닌가. 비웃음을 사지 않으려면 남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채소를 심는 것은 바로 건강을 심고 사랑을 가꾸는 일이다. 이른 봄부터 밭을 갈고 씨앗을 심다 보면 전신운동이 되어 별도로 시간 내서 운동할 필요도 없다. 하루 중 틈틈이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매달리다 보면 자연 운동이 되니 말이다. 또 우리 가족과 이웃이 먹을 채소이니 농약을 멀리한다. 조금은 더디 자라더라도 자연 유기농 채소를 먹게 되니 건강은 따낸 당상이나 마찬가지다.

어느 사진작가가 앵글에 잡힌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이렇게 말했다. 엄마 젖을 배불리 먹고 새근새근 잠자는 아가 모습이 제일 아름답고, 그다음은 욕심 없이 파안대소하는 촌로의 주름진 모습이며 마지막으로는 땀 흘리며 일하는 농부의 모습이라 했다. 나를 땀 흘리는 농부로 봐줄지는 모르지만, 비슷한 모습은 되려니 싶다.

한나절 땀 흘리고 몸을 편다. 허리도 아프고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얼굴에는 땀과 함께 흙범벅이 되었다.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흰 구름이 씽긋 웃으며 산을 넘는다. 나도 흙범벅이 된 얼굴로 미소를 보낸다. 봄꽃 향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와 이마에 맺힌 땀을 씻어준다. 채소들은 이 순간에도 재잘재잘 소곤거린다. 발돋움하며 키재기를 하는지 푸른 잎을 치마폭처럼 펼친다. 옹달샘에 물이 솟듯 피어오르는 생명의 찬가. 내 마음에도 푸른 벌판이 펼쳐진다. 이것이 바로 힐링이다.

내일 아침도 새벽 일찍 일어나련다. 채소들의 일어나는 소리로 온 밭이 소란하리라는 생각만 해도 벌써 나의 마음에 불끈 기운이 솟아 전신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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