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고향 전주천에서 찾는 풍경
여름 고향 전주천에서 찾는 풍경
  • 김규원
  • 승인 2021.07.2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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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김 고 운/수필가
김 고 운/수필가

찜통더위라는 말이 과장되지 않게 느껴지는 오후, 버스에서 내려 사무실로 가는 잠시에도 훅하고 열기가 치민다. 장마가 어설프게 끝나고 확장하는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이 만나는 중간에 한반도가 놓여 뜨거운 바가지를 씌우듯 열돔(Heat Dome)을 형성하는 바람에 기온이 40를 넘나들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있더니 36.

언제부터인가 여름 더위가 겨울 추위보다 견디기 어려워졌다. 겨울에는 옷을 입어 추위를 막을 수 있지만, 여름에 치솟는 더위는 에어컨을 짊어지고 다닐 수도 없으니 고스란히 몸으로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구 온난화로 여름은 점점 더워지고 겨울은 따뜻해지고 있으니 여름을 견디기가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지 싶다.

 

해마다 이맘때 더위가 절정에 이르러 견디기 어려워지면 어릴 적 전주천을 생각했다.

한벽루 아래 물굽이에 제방이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견칫돌을 쌓아 시멘트 기둥으로 묶어 놓은 하천 시설물이 있었다. 수면보다 조금 높아 미역감는 아이들이 올라와 쉬기 좋았던 그곳은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사내아이들은 고추를 달랑거리며 돌 위를 뛰어다녔다. 네모난 시멘트 구조물에 걸터앉아 물에서 놀다가 지친 몸을 쉬기도 하고 돌 구멍 사이에서 요리조리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거나 민물새우 징거미를 잡겠다고 손을 넣어 더듬다가 동자개에 쏘여 울기도 했다. 가끔 청년이나 고등학생 정도인 형들이 대나무에 쇠 작살을 끼워 만든 작살총을 들고 와서 물안경을 쓰고 들어가 돌 틈에서 제법 큰 물고기를 잡는 구경도 했다. 여름 한더위 때가 되면 한벽당 수영장은 아이들도 가득해서 헤엄을 칠 수도 없을 만큼 바글바글했다. 아이들이 시원한 물속에서 내지르는 높은 소리, 첨벙대는 물장구 소리, 짓궂은 사내아이들이 여자아이들을 건드려 앙칼진 욕설을 듣던 소리가 한데 섞여 여름을 지워갔다.

지금도 그 아련한 그리움에 빠져들면 한동안 헤어나기 어렵다.

중학생쯤 되었던 어느 늦여름에 한벽당을 찾아갔다. 물 온도가 내려가 수영하기가 어려워진 즈음이라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제방 구조물 위에서 밀짚모자를 깊이 눌러쓴 어떤 아저씨가 뭔가 가느다란 것을 돌 틈에 넣었다가 뺐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뭔가 내가 모르는 일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성미가 발동하여 가까이 내려가 보았다. 조금 있으니 아저씨가 손을 빠르게 위로 올리면서 왼손으로 굵은 뱀장어 한 마리를 잡아 올려 대나무 다래끼에 날쌔게 집어넣었다. 가느다란 대나무 끝에 낚시를 매어 거기다 지렁이를 꿰어서 돌 틈에 넣고 움직이면 뱀장어가 지렁이를 먹으려고 덤빌 때 잡아채는 낚시 법이었다. 아하! 이런 낚시 방법이 있구나. 그날 당장에 낚시 가게로 찾아가 채비를 만들어 다음날부터 돌구멍을 뒤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뱀장어가 걸려도 제대로 잡지 못해서 빠져 달아나기도 했지만, 손에 모래를 묻혀 장어를 잡는 방법도 배우고 실력이 늘어서 가끔 한두 마리는 잡을 수 있었다.

 

참게, 뱀장어, 징거미, 모래무지, 피라미, 버들치, 가물치, 메기, 온갖 물고기가 다 잡히던 전주천 근처에 살던 그 시절의 여름은 온통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전주이지만, 진짜 고향은 전주천인 셈이다.

가끔 뭔가 그리움이 솟구칠 때면 나는 자연스럽게 전주천을 찾는다. 한벽당 아래 산책길 옆 철제 펜스에 기대어 흐르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어느새 타임머신 속 아련한 시절을 걷고 있다. 아이들의 째질 듯 높은 소리, 깔깔대는 웃음소리, 첨벙대는 물소리가 들려오고 낚시에 걸려 팔딱거리던 피라미와 모래무지가 손끝에 떨림으로 다가서기도 한다.

에어컨은커녕 부채도 전통 방식으로 만든 한지 부채나 쥘부채가 전부였던 시대.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물을 찾아가거나, 자연 바람이 부는 그늘을 찾는 것이었다. 전주천 싸전다리나 매곡교, 지금 청연루를 세워놓은 교동 남천교 밑 그늘에서 발을 담그고 있으면 최고의 피서였다.

그리고 밤이 되면 남녀노소가 전주천에 몰려나와 흐르는 냇물에 몸을 담그고 씻었다. 교통 다리 위쪽에는 남자들이, 다리 근처와 다리 밑에서는 여자들이 몰려 목욕을 즐겼다. 하루의 땀과 피로를 씻던 그 시원한 물은 지금 어디에서 흐르고 있을까?

오늘 밤에는 자전거를 타고 전주천에 찾아가 오랜 시절의 그리움을 뒤적여 보면 한결 시원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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