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없는 날 ​​​​​​​
동행 없는 날 ​​​​​​​
  • 전주일보
  • 승인 2021.07.1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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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장 지 나/수필가
장 지 나/수필가

두말할 것도 없이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웬 횡재야!’ 생각하며 시원스럽게 보이는 넓은 창문을 정면으로 보고 앉았다. 복잡한 도심에 있는 카페지만 늦은 봄날, 마스크 쓰고 봄비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들마저 풍경으로 다가왔다. 일등석을 차지한 자릿값으로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마치 동행이 있는 듯이. 맞은편 의자에 가방을 놓고 커피잔도 그 앞에 놓았다. 왠지 내 앞에 있는 커피잔보다 빈자리에 있는 커피잔에 눈이 자꾸 갔다.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 이벤트 같은 시간을 갖고 싶을 때가 있다. 밖에는 풀냄새 가득 배인 연둣빛 비가 쏟아진다. 빗물이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며 내 마음에 작은 물줄기를 낸다. 카페에 흐르는 잔잔한 음악이 조화를 이룬다. 짙은 커피 향이 흐르는 마음을 붙든다. 빗속을 걷는 사람들 걸음이 빨라진다. 우산 없는 사람들이 빗물을 털어내며 카페로 들어온다. 그들이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나는 여유를 부리며 어깨를 으쓱한다. 카페 주인의 손놀림이 바쁘다.

호랑이 장가가는 날인지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쨍하다. 비를 피하느라 들어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나갔다. 조금 한가해진 카페 주인이 비닐봉지와 칼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내가 앉아있는 창문 밖 화단에서 쑥부쟁이를 캔다. 자동차들이 달리는 도로변에서 매연에 오염되지 않았겠냐며 물어보았다. 그래서 한 번도 캐지 않았는데, TV에서 더 먹고 가라는 프로를 시청하다가 자연 음식을 하는 임지호 셰프가 식물은 자체에서 다 정화 시키니 괜찮다고 했다면서 해맑게 웃는다. 덕분에 나는 좋은 풍경 한 컷 했다. 고된 삶의 찌꺼기도 평범한 일상이 가져다주는 보너스 같은 풍경 한 자락으로 시원스레 날려 보낼 때가 있다.

카페를 나와 천변을 걸었다. 비 온 뒤 개인 날이어서인지 유난히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기분도 상쾌했다. 건강한 사람들이 추월해서 옆을 지나간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폐활량 차이를 부러워하면서 걷는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밥보다 운동을 우선시하는 시대가 되었다. 다 세월 속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비 맞은 풀 향기가 신선하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선하게 돌아가는 것 같은 기운을 맛본다. 동행이 있건 없건 지금 여기에선 아무런 아쉬움도 없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 모다 친구인 듯하다.

샤워를 한 모악산이 시원한 몸을 통째로 드러내 보여준다. 멋진 몸을 보겠다고 눈들을 들이대니 쿨하게 인심 한번 쓰는듯하다. 살짝 걸린 구름 한 자락도 치워버린 맨 몸이다. 내가 이 길을 이틀에 한 번씩 걷고 있지만, 저렇게 선명하게 다가오는 모악산을 본 일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기웃거리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웅장한 산이 풋풋한 젊은이의 몸처럼 싱그럽고 힘차게 빛난다. 산도 저렇게 아름답게 빛날 수 있구나 싶었다. 포근한 햇살에 내린 비가 증발하며 아지랑이를 피워내면서 길들이 춤을 추는 듯 보인다. 작은 나뭇가지에 감도는 산들바람에 깨어 넝쿨에 앉은 작은 새가 운다. 조용조용 다가갔다. 도망치지 않는다. 요즘 새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초밥집은 항상 만원이다. 혼자라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집에 가서 먹어도 되지만 속사정이 있다. 화장실을 좀 써야 할 것 같아서다. 도저히 집에까지는 무리다. 늙어가며 일어나는 현상이다. 언젠가부터 어딜 가든 화장실부터 눈여겨 놓는다. ‘, 나만 그런 게 아니니까하며 스스로 위로한다. 초밥과 우동 한 그릇도 주문했다. 못다 먹을 게 뻔하다. 그래도 따끈한 국물이 있어야 어울린다. 음식을 먹는 것도 자연과 대화 하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걸었다. 집까지는 30분 거리다. 삶의 무게를 덜어내듯 칼로리를 덜어내며 보폭을 넓힌다. 동행 없는 하루였지만, 꽉 찬 스케줄을 소화한 듯 나름으로 보람 있고 멋 스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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