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피어나는 꽃
하얗게 피어나는 꽃
  • 전주일보
  • 승인 2021.07.0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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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이 용 만/수필가
이 용 만/수필가

여름이면 하얗게 피어나는 꽃들이 있습니다.

여름에 유난히 하얗게 피어나는 꽃들이 많은 것은 여름 햇살을 닮아서 그런가 봅니다. 그래서 모든 색의 근원은 흰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오월이 되면 온 산을 뒤덮은 꽃이 아카시아꽃입니다. 아카시아꽃은 우리 어린 시절의 꽃입니다. 어디나 장소를 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배고프던 아이들의 군것질감이었고 어른들의 술 담는 재료였습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나면 산 아래 밭두렁 논두렁에서는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찔레꽃은 흰옷 입은 백성들의 꽃이었습니다. 목마르고 배고프던 할머니 어머니들의 꽃이기도 합니다. 변변한 물 주전자 하나 없이 밭에 가서 김을 매던 할머니 어머니들이 목마름을 면하기 위하여 꺾어 먹었던 것이 찔레 순이었습니다. 어쩌면 배고픔을 면하기 위함도 들어 있을 것입니다. 찔레 순은 가시만큼이나 사연도 많습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너나없이 순을 잘라먹었고, 가시 때문에 농부들이 수시로 낫을 들고 잘라냈기 때문에 순을 키워낼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늦은 5월에야 겨우 가늘디가는 순을 밀어 올려서 가지를 만들었던 나무입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이 노래의 작사자가 붉은 찔레꽃이라 하였지만, 찔레꽃은 거의 하얀 꽃입니다. 찔레꽃은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게 가슴에 새겨져 있는 고향의 꽃입니다.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 있는 고향의 산천이 눈에 어리고 찔레 순 따먹던 고향의 친구들이 삼삼하여 눈시울 뜨거워지는 사람들이 어찌 한 둘이겠는지요.

이때쯤이면 땅바닥을 하얗게 수놓은 꽃들이 있습니다. 시계꽃이라 불리는 크로버 꽃입니다. 토끼풀이라고도 하는 이 꽃은 아이들의 꽃입니다. 어렸을 때 신랑 각시놀이를 하면서 꽃 두 개를 묶어 사랑의 정표로 상대방 손목에 차 주었던 꽃이기도 하지요.

토끼풀 옆에 작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피어 있는 풀꽃이 야생 안개꽃이지요. 꽃집에서 파는 서양에서 들어온 안개꽃보다 훨씬 작은 풀꽃입니다.

또 이때쯤이면 밭 가운데서는 감자꽃이 하얗게 피어납니다. 푸른색투성이인 감자밭에 피는 감자꽃은 감자알이 들기 시작했다는 신호였지요. 꼴망태 메고 풀 베러 다니던 아이들이 몰래 감자밭으로 기어들어가 감자 포기 한쪽만 파고 감자 몇 개를 훔쳐다 감자 서리를 하였던 감자밭입니다.

밭모퉁이에 심어진 파꽃도 하얀 꽃이요 장다리도 하얀 꽃입니다.

산에서 피는 하얀 꽃은 참 많기도 합니다. 아카시아에 이어 피어나는 꽃이 이팝나무꽃입니다. 꽃잎이 밥알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죽은 며느리의 한을 풀어주고자 작은 꽃들이 모여 가득 채운 밥공기처럼 봉실봉실 피어나지요. 배고프고 한스러웠던 시집살이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간직한 꽃입니다.

이팝나무꽃이 지고 나면 나타나는 꽃이 층층나무꽃입니다. 깊은 산속에서 산을 하얗게 수놓고 있는 층층나무는 그 이름처럼 층을 이루며 피는 꽃이지요. 산에 올라 푸나무 뜯다가 잠시 앉아서 쉬면서 1, 2, 3세어보던 꽃입니다.

집 앞 화단에 핀 탐스러운 수국도 하얀 꽃이요, 향기 짙은 백합화도 하얀 꽃이며 울밑에 선 봉선화도 하얀 꽃이 있고 접시꽃도 하얀 꽃이 있습니다. 나라꽃인 무궁화도 하얀 꽃이 있고 치자나무꽃, 접시꽃도 하얀 꽃이 있습니다.

그리고 울타리로 심어진 탱자나무도 하얀 꽃입니다. 탱자나무에 하얗게 피어 있는 꽃도 추억의 꽃입니다. 어린 시절 소꿉놀이하던 곳이 바로 탱자나무 아래였으니까요.

이사 가던 날/ 뒷집 아이 돌이는/ 각시 되어 놀던 나와 헤어지기 싫어서/
장독 뒤에 숨어서 하루를 울었고/ 탱자나무 꽃잎만 흔들었다네

가수 산이슬이 불렀던 이사 가던 날노래입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여름에 피는 하얀 꽃 중 대표적인 꽃은 개망초꽃입니다. 학교길 양쪽에 하얗게 피어 있던 그 꽃은 이름만큼이나 흔한 꽃이지요. 길가뿐만 아니라 논두렁이고 밭두렁이고 어디든지 빈터만 있으며 하얗게 하얗게 피어나는 꽃이랍니다.

 

여름에는 하얀 꽃 일색입니다. 어찌 여름에만 하얀 꽃이 피겠습니까? 내 눈에 하얀 꽃만 보였던 것이지요.

자꾸만 억지를 부려보고 싶어지네요. 마음이 맑고 깨끗한 사람에게는 하얀 꽃이 많이 보이는 것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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