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配慮)
배려(配慮)
  • 전주일보
  • 승인 2021.07.0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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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문 광 섭/수필가
문 광 섭/수필가

코로나 예방 접종을 앞두고 외출을 삼가며 집에서 근신(勤愼)하며 지냈다. 자연히 TV를 보는 일이 많아졌다. KBS 한국방송 글로벌 뉴스의 미국편에서다.

서부지역 어느 도시의 왕복 8차선 도로에서 거위 7~8마리가 횡단을 시작했다. 4차선을 달리던 승용차가 가까이 와서야 발견하고서 가까스로 멈춰 섰다. 거위는 나머지 3차선부터 1차선까지도 곡예사처럼 아슬아슬하게 건넜다.

수많은 차량이 멈춰선 가운데 사진을 찍는 사람, 반대편 차선으로 오는 차량에 손을 흔들어 상황을 알리는 사람도 있었다. 내용을 모르는 차량은 막무가내로 달리니 시청자인 내가 외려 가슴을 졸였다. 중앙선을 넘어서 반대편 차로 1차선을 시작으로 4차선을 통과할 때까지 모든 차량이 멈춰 섰다. 인상적인 것은 멈춰선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거나 하지 않고 거위가 지나갈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던 점이다.

뒤뚱뒤뚱 좌우로 몸을 흔들며 앞만 보고 유유히 걷는 거위들의 행보가 위험하기 짝이 없었는데, 어떻게 8차선 도로를 횡단하게 되었는지 보도가 끝나고서도 무척 궁금했다. 아마 선두에 선 어미나 우두머리가 새로운 지역으로 삶터를 이동하고자 모험을 강행하지 않았을까 생각되었다. 많은 차량이 모두 멈춰서 배려하는 모습이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그날 밤 자정쯤이다. 깊은 잠이 들었는데 핸드폰의 벨이 오래도록 울렸다. 불길한 소식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다.

“7083차량 주인 되시지요? 실내등이 켜져 있어요.”

! 감사합니다.”

주섬주섬 급히 옷을 걸치고 자동차를 둔 골목길로 나가보았다. 멀리서 봐도 불빛이 보였다. 주차하고서 실내등이 켜진 걸 깜박한 것이다.

집에 돌아와 전화 주신 분에게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한데, 또 다른 모르는 사람에게서도 문자가 와있었다. 열어봤더니, 1시간 전에 차량에 실내등이 켜져 있어요.’라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두 사람한테서 전화와 문자까지 받는 일은 처음이라서 모처럼 가슴이 훈훈하기만 했다. 문자 주신 분께도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다. 오늘 남을 위한 배려가 세상을 살 맛나게 한다는 걸 실감했다.

타인을 위한 배려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거위들이야 차량이 뜸한 때 선두에 선 리더가 횡단을 감행했지 싶다. 무모하지만 나름대로 어떤 판단을 했을 것이고. 동물들도 어미쯤 되면 경험적 판단력이나 상황을 통찰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내 차량의 실내등이 켜진 걸 알려주는 일은 귀찮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돕겠다는 배려(配慮)의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할 수 있는 행위다.

며칠 전이다. 시내 나갔다가 집에 오려고 버스를 탔다. 창가 쪽으로만 좌석이 있는 버스라 자리가 없었다. 뒤쪽으로 가려니까 젊은이가 일어나며 자리를 비워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 앉았다. 우리 집엘 가려면 한 번 갈아타야 기에 공원 입구에서 환승할 생각이었다. 한데 두 정거장쯤 앞두고 70대 초반쯤의 아주머니가 탔는데 자리가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아주머니 여기 앉으세요. 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요.”

아주머니가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난 다음 정거장에서 환승해도 되므로 성큼 일어나 내리는 출입문 쪽으로 옮겨갔다. 젊은이에게 양보받은 자리를 다른 이에게 다시 양보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이어져 흐뭇했다. 비록 작은 배려였어도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고 상쾌했다.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공중도덕을 지키고, 작은 배려를 통하여 훈훈한 인정을 나눌 때 그것이 사람 사는 진정한 모습이 아니겠는가?  또한 행복한 사회로 가는 길이리라그동안 일상생활 중 세대 차이에서 오는 고정관념과 각박해진 인심을 생각하면 설마하니 두 사람이나 친절하게 실내등이 켜진 걸 연락해줄 것이라곤 짐작도 못했다.

나부터 남의 일에 관심을 주거나 일부러 도움을 주는 일에 인색했던 게 사실이다. 아직 세상은 살만하고 남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좋은 사람들에게서 배려(配慮)라는 아름다운 말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실천할 마음가짐을 얻게 돼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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