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불명산 화암사
완주 불명산 화암사
  • 전주일보
  • 승인 2021.06.29 17:36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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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승 찬 / 중소기업중앙회 전북지역본부장
박 승 찬 / 중소기업중앙회 전북지역본부장

지난주 목공 선생님께 물었다. “전주 인근에 혼자 가볼만한 곳 없을까요?” 선생님이 남들이 들을세라 조심스레 말했다. “화암사 가보세요. 분명 좋아 하실 겁니다.”

인터넷에 화암사를 물으니 안도현 시인이 제일 먼저 답을 했다. “잘 늙은 절인데 찾아가는  길은 알려주지 않겠습니다.” 절이 잘 늙었다는게 무슨 의미일까 ? 빨리 가보고 싶었다. 토요일 아침 오이 하나, 사과 하나, 물한병 챙기고 화암사(花巖,바위에 핀 꽃)로 향했다. 

화암사 아랫마을을 지나다 ‘싱그랭이 콩밭 식당’, ‘싱그랭이 마을’이란 안내판에 호기심을   느껴 차를 멈췄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를 연상해서 지은 이름인가 상상하며 안내글을 읽었다. 예전 한양가는 선비, 장꾼들의 쉼터마을이었는데 주민들이 짚신을 걸어 놓으면 갈아신고 간다하여 ‘신거랭이’라는 마을이름이 붙어졌고 시간이 지나며 ‘싱그랭이’로 변했다 한다. 생각은 자유이나 데미안과 짚신의 간극이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주차장에서 화암사로 가는 길은 두 갈래. 당연히 먼 길 돌아 놀멍 쉬명 가는 길을 택했다. 5월의 산은 초록 초록 일색이었다. 4월의 울긋불긋은 지워진지 오래였다. 林道에서 내려다 본 산들은 그녀의 입술같은 햇살에 웃음짓고 엄마의 손길같은 실바람에 춤추느라 온통 정신없다. 

연두빛 나무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햇볕을 땅에서 올라온 물(H2O)과 공기중의 이산화탄소(CO2)를 만나게 하는데 열중이다. 나무와 함께 있는 지금, 나도 하늘과 땅의 모든 기운을   모아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있는 중이다. 사람도 때때로 광합성이 필요한 것 같다.

30~40분을 걸었을까 절집 뒷통수가 보였다. 돌담을 돌아 일주문을 찾으니 ‘佛明山 花巖寺’   편액이 걸린 누각이 서있다. 보통 누각 아래 가운데 칸이 안마당으로 오르는 계단 출입구인데화암사는 이 누각과 붙어있는 3칸 문간채중 제일 오른쪽 한 칸을 대문으로 만들었다.

입구부터 평범하지 않고 새로운데 왠지 정감있고 친숙한 새로움이다. 이 건물이 화암사에서 제일 먼저 대면하게 되는 이름처럼 예쁜 우화루(雨花樓: 꽃비 흩날리는 누각)이다. 10여평(?) 안마당에 들어서니 우화루 정면으로 극락전, 왼쪽에 적묵당, 오른쪽에 불명당이 처마가 닿을 듯 올망졸망 서있다.

이중 극락전은 ‘해방 이후 건조물 문화재계 최대의 발견으로 우리 건축사에서 비중이 매우 큰 전통 건조물’이라니 깊이 숙지할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하앙구조(下昻構造) 때문이다. 하앙이란 기둥 위에 중첩된 공포와 서까래 사이에 끼워진 긴 막대기 모양의 부재로 그 위에 서까래를 얹으면 처마를 길게 뺄 수 있단다.

화암사 극락전을 발견하기 전까지 일본은 조선의 건축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을 한사코 부정하였다니 발견당시 그 짜릿함은 말해 뭐하겠는가 ? 

화암사는 전체적으로 보면 지상은 건물들이 어깨를 걸고 외부를 차단하며 폐쇄성을 고수하되 건물의 높낮이를 달리하여 개방감을 주고 오직 하늘로 열린 구조를 가졌다. 아마도 불명산 한자락에 들어앉아 오직 하늘과 소통하며 마음속에 해와 달과 별만 간직하려는 수도자의 마음을 구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안도현 시인이 화암사를 왜 “잘 늙은 절”이라고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국내 유일의 하앙구조라는 존귀함을 가졌으되 들어내지 않는다. 외부로 펼쳐 보이지 않고 안으로 최대한 밀착하며 겸손하게 불명산에 스며있다.

시선을 바깥에 두지 않고 오직 하늘과 소통하며 내 마음의 고갱이를 단단히 하려는 자세. 그래서 儉而不陋 華而不侈한 모습. 

화암사 앞에서 한참을 계곡물과 풍경(風磬)의 합주를 듣다 불명산에 올랐다. 초입부터 무성한 산죽을 벗삼아 나아갔다. 하늘은 보이지 않고 온통 그늘이다.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나온 햇살이 간간이 비출 뿐이다. 어두운 길, 광명을 찾아 떠나는 순례길로 적격이다.

대다수 식물이 햇빛 편식주의자인데 산죽은 음지에서도 잘 자라나 보다. 환경 탓하지 않고  놓여있는 곳에서 곧게 자라려는 그 마음 알 것 같다. “隨處作主 立處皆眞”. 지역본부 온 후 많이도 되내었던 말이다. 모든 순간이 다 꽃봉오리다. 내 하기에 따라 달라질 것들이다.

불명산 정상에서 본 세상은 사방이 초록뿐 상념이 자리하지 않는다. 산들바람만 나를 유혹 할 뿐.

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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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1 16:44:23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추가 됐어요~

진진 2021-06-30 17:58:54
가보고 싶어집니다.

99 2021-06-30 15:21:33
제가 가본거같은 느낌을 받은 글입니다 ~~

박인숙 2021-06-30 15:13:39
전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올라오는 글을 보면 정말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

배석재 2021-06-30 13:00:56
직접 가보지 않아도 손에 잡힐 듯이 눈에 보이는 듯이 느껴집니다. 좋은 곳들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