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 원어치 행복
오천 원어치 행복
  • 전주일보
  • 승인 2021.06.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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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김 고 운/수필가
김 고 운/수필가

  그래도 봄인데 뭔가 조금이라도 달라진 일상이 아쉬운 그런 휴일 오전에 작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봄꽃을 찾아 촬영하려다가 쌈박한 봄 입맛을 찾아가기로 했다. 버스 노선을 보다가 모래내 시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진안 쪽 산에서 나오는 산나물이나 버섯이 좌판에 등장하는 곳이 모래내 시장이다. 봄 입맛을 챙기느라 몇 번 중앙시장 좌판에서 취나물을 사 보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나물이 없었다. 그래서 진안 취 가운데 아삭아삭하고 톡 쏘는 향을 지닌 취나물을 찾으러 갔다.

  붉은색이 나는 참취가 아니라, 연한 녹색에 줄기가 일찍 올라와 아삭한 맛이 좋은, 진안에서 뜯은 취를 나는 좋아한다. 같은 취나물도 산지에 따라 향과 맛이 다르다.

  시장 정류소에 내려 보니 이제 막 장이 어우러지는 때다. 좌판 상인들이 자리를 잡고 가져온 비닐봉지에서 취나물, 고사리, 두릅, 상추, 머위, 시금치를 꺼내어 판을 여는 시간이다. 나처럼 봄 입맛이 그리워 나온 사람들일까? 휴일 점심에 먹을 상큼한 입맛을 찾은 사람들일까. 사람들은 전을 펴기도 전에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모래내 시장은 장옥을 세운 곳보다 도로 쪽이 장터처럼 북적거려 재미있다. 인도 옆 상가에 점포가 있고 점포 앞에 노점상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인도가 좁아져 사람이 많지 않아도 붐빈다. 오랜만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걸 보면서 사람 사는 맛을 생각한다. 저렇게 어우렁더우렁 어울리고 부대껴가며 사는 게 맛인데.

  마스크 뒤에 숨어 눈만 내놓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긴 해도 이건 시장의 맛이 아니다. 사람의 정이 흐르지 않고 눈만 내놓고 성난 사람처럼 노려보고만 있으니 이게 바로 지옥이다. 어쩌다가 이런 지옥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 것과 네 것을 서로 바꾸어 쓰는 장소, 서로 만나 막걸리도 마시고 지난 이야기도 나누며 아픈 이야기에 눈물을 찔끔거리고 즐거운 일에는 박장대소하며 사람 사는 정()을 주고받는 오래된 터가 시장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만연하면서 서로 입을 보이며 말을 나눌 수 없게 된 오늘이다. 그러니 먹을 것을 나눠 먹는 일은 더욱 안 되는 일이다.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흥정하느라 옥신각신하던 모습도 없다. 긴소리 설명 필요 없이 살 물건 가격 묻고 마음에 들면 돈 주고 휑하니 도망치듯 자리를 뜨는 게 거래다.

  시장이라면 으레 판을 벌여 놓고 흥겨운 가락으로 손님을 부르던 난전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별말 없이 살 건 사고 아니면 눈만 뒤룩거리다가 가버린다. 가격을 흥정하다가 저만치 가면, “손니~, 이 봐요.”하고 불러 다시 흥정하던 그런 모습도 없다.

  사람이 조금 북적거릴 뿐, 시장의 모습조차 달라져 썰렁하다. 말이 들리지 않고 시끄러운 맛을 잃은 시장은 이제 시장이 아니다. 우리는 작은 즐거움마저 코로나바이러스에 강탈당했다. 1년 반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잃고 빼앗겼다.

  언젠가 이 질곡을 벗어나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미 삭막해진 마음들이 돌아서려면 제법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바이러스가 얼마든지 출현할 것이라는 전망을 보면 우리는 영영 아름답던 시절을 잃고 말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안타까운 생각 속에 노점 골목을 두어 차례 오가다 보니 한 좌판에 푸릇한 취나물이 보인다. 얼른 오천 원어치 한 바가지를 샀다. 아직 산에서 나는 산취가 나오지 않아 밭에 심은 노지 취라고 했다.

  옆에 놓인 두릅도 탐스러워 한 바가지 담았다. 봄이 되어 제멋대로 떠난 입맛을 불러들이는데 취나물과 두릅 만 한 것이 없지 싶었다. 나물과 두릅을 배낭에 넣고 버스에 올랐다. 배낭을 벗어 안고 버스에 흔들리며 오는 내내 취나물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언제 맡아도 좋은 고향 같은 냄새, 돌아오는 내내 향기에 취해 행복했다. 그리고 설핏하게 데친 나물에 깨소금을 뿌려 연하게 무쳐 향기로운 봄을 내 안에 한 움쿰 맞아들였다. 잃어버린 장터에서 산 오천 원어치 행복은 씁쓸하면서도 감칠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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