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만나는 사람
매일 만나는 사람
  • 전주일보
  • 승인 2021.05.2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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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이 용 만/ 수필가
이 용 만/ 수필가

아침 출근길에 매일 만나는 사람이 있다.

출근길이 일정하기에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만난다. 여러 번 만나다 보면 눈에 익는다.

아침 출근길은 바쁘다. 사람들은 대부분 부랴부랴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기 때문에 바쁜 걸음이어서 반가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긴 이야기를 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인지 매일 만나는 사람인데도 인사를 나눌 생각을 못 한다. 혹시 도중에서 만나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되기도 하겠으나 서로 반대 방향으로 스쳐 가는 사람들은 그럴만한 여유를 갖지 못한다.

천차만별이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잔뜩 찡그리고 갈까. 왜 저렇게 멋없이 걸어올까. 어쩌다 저렇게 뚱뚱해졌을까. 저 사람은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쁜데 왜 저렇게 굳은 표정으로 지나갈까. 그리고 저 사람은 왜 매일 같은 옷만 입고 다니고 저 아가씨는 어떻게 매일 옷을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올까. 내 나름대로 평가해 본다.

그러다가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본다. 저 사람들 눈에 비친 나는 어떤 모습일까. 저 사람들도 매일 만나는 나에 대하여 나름대로 평가하고 있을 텐데……. 표정은 밝았는가. 걸음걸이는 똑바로 됐을까. 이렇게 장작개비처럼 비쩍 말라서 그 사람들 보기에 안쓰럽지 않았을까. 나는 그 사람들에 대하여 위안이 되었을까, 짐이 되었을까.

우스운 일이다. 내 모습은 생각지도 않고 그 사람들만 내 멋대로 평가했으니……. 이제부터는 내 모습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겠다. 표정도 온화하게 짓고 걸음걸이도 바르고 힘차게 하고 용모도 단정히 해야겠다. 그리고 미소도 지어 주리라.

가장 먼저 새침데기 아가씨에게 웃어주기로 했다. 그가 늘 고개만 숙이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나와 마주칠 때는 고개를 숙이고 가던 그도 저만큼 멀어진 뒤에 뒤돌아보니 고개를 들고 살랑살랑 걸어가고 있었다. 너무 수줍음을 탄 탓이리라. 하긴 골목에서 다른 사람과 마주쳤을 때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기는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웃어 주리라. 어떻게 웃어 줄까. 거울을 보고 연습을 해둘까.

그러나 그다음 날 그와 마주쳤을 때 웃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굳어져서 지나가고 말았다. 홍안 소년도 아니요, 사랑을 느낄 나이도 아닌데 주책이라고 생각하며 며칠을 그렇게 보냈다.

어느 날 그와 골목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그만 빙그레 웃고 말았다. 집에서 급히 나온 탓일까.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뛰어온 것일까. 그토록 정숙한 그에게서 속옷이 삐죽 나와 있는 자태가 자못 우스웠다. 내가 빙그레 웃자 그도 따라 웃는 것이었다. 당황한 건 나였다. 그가 웃었다. 나를 향해 웃음을 보내 주었다. 웃는 그의 모습이 참 예뻤다. 그다음 날, 그와 다시 마주쳤을 때 그는 이미 나에게 먼저 웃음을 보내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말까지 하면서. 알고 보니 그는 아주 명랑한 아가씨였다. 그뿐만 아니라 내 고향에서 가까운 마을에 사는 사람이었다. 한 번의 웃음이 그토록 약이 될 줄이야. 그때 내가 웃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고개를 숙이며 눈길을 피해 가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그날 그의 실수가 정말 값진 것이 되었다.

문득 다시 생각해 본다. 내가 한 번 웃어줌으로써 상대방에게 즐거움을 주고 두 사람 사이가 부드러워진다면 웃음을 아낄 게 무엇인가. 내가 웃어주지 않아서 지금까지 서먹서먹하게 지내 온 사람은 없는가.

있을 것이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출근길에서 매일 만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웃어주기로 했다. 새침데기 아가씨와 말이 통하자 다른 사람들은 훨씬 수월하였다. 중학생은 내가 웃어주니 금방 같이 웃어주었다. 중년 신사는 내가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건네자 ? , , 당황하는 빛을 보이더니 다음 날부터는 먼저 인사를 했다. 출근길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니 출근길이 즐거워졌다. 누구하고라도 인사를 나누고 싶어졌다. 출근하자마자 직장 동료들에게도 자연히 인사말이 튀어나왔다.

내일은 아침 인사를 나누었던 새침데기 아가씨에게 그가 좋아한다는 돈가스를 푸짐하게 사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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