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연민의 시선으로 자아를 응시하다.”
“시, 연민의 시선으로 자아를 응시하다.”
  • 전주일보
  • 승인 2021.05.1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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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민의 시선으로 자아를 응시하다.”

 

새벽녘

현관을 지키던 낡은 구두가

퀭한 눈망울로 날 바라본다

 

정갈치 못한 성격 탓에

십삼 년 동안

광 한번 못내 주고

 

긁히고 부딪히며

만신창이가 된 내 구두

 

뒤축이 반쯤이나 닳아빠진 낡은 구두는

신산의 세월이 나이테처럼 박혀

밭은기침 콜록거린다

 

-이내빈(1945~ 전북 군산)낡은 구두부분

이 시를 읽으니 다음의 시가 떠오른다.

지상에는/ 아홉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박목월가정전문)

목월은 현관에 놓인 신발을 통해서 어버이로서 연민을 드러낸다. 아버지로서의 사랑과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십구문반이라는 신발의 크기로 상징하면서 가족을 끌어안는다. 가정을 지켜야 하는 가장은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야하는 존재다. 그 가혹한 시련을 온전히 감당하는 실체가 바로 십구문반이라는 신발에 응축되어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신발은 아버지의 사랑이자, 가족이라는 사랑공동체를 감당하는 연민의 실체가 된다.

그러나 시련과 연민의 끝에 가장으로서의 자긍심이 빛난다.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고 자기 비하인 듯, 책임 방기인 듯, 허무한 진술에 이어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며 앞의 허무를 일거에 무너뜨린 뒤 가장으로서 티끌 한 점 없는 무한 자긍심을 당당히 내보인다. 그러니 섣불리 십구문반이라는 협애한 신발 크기로, 무력한 아버지상을 떠올릴 일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은 바로 가정을 지키는 가장임을 과시하는 듯하다.

시의 눈길[詩眼]은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봉오리에 기울기보다는 비바람에 떨어져 흩어지는 낙화에 닿기 마련이다. 시의 느낌[情緖]이 향하는 곳도 마찬가지다. 즐겁고 행복해서 아름다운 인생보다는 시련과 고통을 겪는 인생에 닿아 맑은 샘물 같은 기쁨을 찾아내기를 즐겨한다. 시의 태생이 그러하며, 시심의 본성이 그러한 곳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낡은 구두에 깔려 있는 시적 정서도 그냥 구두가 아니라는 점에서 상징의 무게가 무겁게 눈길을 끈다. 목월이 불러낸 시적 화자는 저녁 귀갓길 현관에 놓인 신발을 통해서 가족애를 실감하는 경우라면, ‘낡은 구두를 진술하는 시적 화자는 새벽 출근길이라는 점에서 대비된다. 새벽은 만족한 인생에게는 평안한 잠자리의 시간이어야 마땅하지만, 노동자[근로자]는 생활 전선으로 출전해야 하는, 불편한 시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낡은 구두 주인은 퀭한 눈망울바라본다. 우선 퀭한 눈망울의 주체가 겪은 어제의 노동 강도라든지, 혹은 현실을 경영해야 하는 생활인의 버거운 피로도가 응축된 상태를 보여준다. 누적된 피로마저 다 풀지 못한 채 다시 새벽녘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응시하는 낡은 구두의 눈망울이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하여 자기연민의 정서를 아닌 보살처럼, 정서적 자아가 겪는 생존의 버거움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진술에서도 가정과 자연스럽게 비교된다. ‘십구문반아버지라는 어설픈 존재라고 시적 자아를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듯이, ‘낡은 구두에서도 삼십년 동안/ 광 한번 못내준 것을 측은하게 여긴다. ‘밭은기침 콜록거리는구두의 형상이 곧 정서적 자아의 그것과 중첩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시적 대상인 구두를 향하는 시적 화자의 시안은 시적 변용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시적 자아를 향한 자기 고백이 된다.

결구 역시 매우 유사한 효과를 거둔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라고 자기 긍정의 메시지를 던지는 가장처럼, ‘밤마다 외롭게/ 속울음으로 가슴을 달래고 있음을 토로한다. 역시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지상을 갈 수밖에 없는 낡은 구두를 향한 자기 긍정의 메시지를 잊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다. 좋은 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 시처럼, 우리 인생이 비록 상갓집이나 물 범벅 생선전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속울음으로 나를 달래면서 중단 없이 가야 하는 길임을 깨닫게 한다면, 그것 또한 좋은 시의 반열에 들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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