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떠난 강가에서
그대 떠난 강가에서
  • 전주일보
  • 승인 2021.05.0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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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강가에서 서성일 때
나는 강나루였기에
그대의 발자국소리를 들었다

그대가 강을 건너 갈 때
나는 그대를 가슴에 담은
한 척의 배였기에
그대를 위하여 조용히 흔들렸다

강을 건너간 그대는 
손조차 흔들어 주지 않고 길을 가고
빈 배인 나는
강둑에 온 몸을 꽁꽁 묶인 채
언젠가 돌아 올 것이라는
기약조차 없는 슬픈 생각을 했다

지금은 한 순간
강물에 스쳐간 작은 배가 아니라
사소한 떨림에서 시작하여
운명의 파장을 일으키는
영원한 물결이기를 오래토록 소망한다

 

강은 물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 바람을 거느리고 있었다. 바람이 강을 건너오면 모래밭에는 회오리가 일었다. 강둑을 휘덮고 있던 시퍼런 풀들도 몸을 흔들어대었다. 먼 곳에서 물이 흘러오고 또 흘러가고, 꽃들은 제 몸을 흔들고 있다. 낮달은 낮게 뜨고 강기슭에 목을 맨 빈 배의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것들에 한없이 좋았다. 세월이 흘렀다고 생각하자 강이 그리웠다. 삶이 바쁘고 분주했다고 변명한다. 추억에 매달릴 시간도 없었다. 물론 찾아가고 싶은 욕망도 만나보고 싶은 소망도 없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외로움이 밀려왔다. 절대 고독과 절망이었다. 이런 기분을 떨쳐 버리기 위해 창문의 커튼을 닫기도 하고 흰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아 보기도 했다. 옛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연어처럼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따뜻하고 충만한 기쁨이 몸을 감싼다. 강으로 가는 길과 강물의 흐름이 다가온다. 강가에서 맞이하던 봄 아지랑이 속에 발목을 파묻던 게으른 날이 생각난다. 오후의 햇살에 젖은 강이 금빛으로 반짝인다. 가을날의 오후는 짧다. 짧음의 의미를 희석시키듯 강물의 끝을 오래 바라본다. 강물을 만진다. 손끝을 타고 전해 오는 물의 감촉이 심장 가까이 닿는다. 손으로 물을 움켜쥔다. 주먹 안에 갇혀있던 물이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새 물이 흘러오고 다시 물을 붙잡고 또 달아난다. 희롱이 희롱을 희롱하고 있었다. 어둠이 오고 있다. 야윈 손을 강물 깊숙이 밀어 넣었다. 강물에서 비린내가 났다. 그것은 물고기가 살기 때문이 아니라 굽이 쳐 흐른 세월이 비릿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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