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내장산 둘레길과 황토현 전적지
정읍 내장산 둘레길과 황토현 전적지
  • 전주일보
  • 승인 2021.04.27 18:14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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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승 찬 / 중소기업중앙회 전북지역본부장
박승찬 / 중소기업중앙회 전북지역본부장

여행은 익숙함에서 낯설음으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늘 그렇듯 설렘과 기대가 있어 좋다. 

전주에서 40여분을 달려 내장산 조각공원에 도착했다. 내장산 서래봉 자락 아래 조성된 공원은 걷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앝으막한 산자락, 여기저기 조각상이 있고 그 앞으로 내장호수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우선 공원 중앙 전면 입구에 서있는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장군 동상에 두손 모아 인사하고 발길 가는데로 걸어보자 마음먹었다. 

여기저기 조각들을 감상하며 채 5분을 걸었을까 길 안내 표지판이 무심히 행선지를 묻는다.  

왼쪽은 내장산조각공원(내장생태탐방마루길), 오른쪽은 솔티숲 옛길 입구(솔티마을). 망설임 없이 오른쪽으로 향했다.

솔(소나무), 티(고개), 숲, 옛길. 글자 하나하나가 그 길로 이끌었다.  숲 초입엔 어깨넓이 정도 길 양 옆으로 메타쉐콰이어가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초입부터 메타쉐콰이어가 만든 어스름한 침침함에 긴장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2~30미터 걸으니 햇살이 비추는 익숙한 숲길이다. 동면에서 이제 막 기지개 켜듯 부풀어 오른 흙 위로 수북히 솔잎이 쌓여 있었다. 솔잎 쌓인 부푼 흙길을 걸어가니 내 마음도 부풀어 오른다.

숲길 따라 여기 저기 곧게 뻗은 소나무, 바람에 누운 이름모를 나무, 그 옆에 진달래. 서거나 눕거나 피거나 스스로 그리된 자연(自然)이 스스로 그리는 풍경은 人爲가 없어 보기에 편안했다. 

이름 모를 나무들 앞에 세워진 거칠고 서툰 이름판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또렷이 나무들의   이름들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어나무, 국수나무, 층층나무...

얼마를 걸었을 까 졸졸졸 계곡물을 만났다. 소리치지 않고 속삭이며 흘러 더더욱 귀기울이게 한다. 며칠 전 신문에서 ‘ASMR 아티스트’란 기사를 보고 ‘참 희한한 것도 있다. 무슨 심리적 안정감까지’라고 생각했는데 졸졸졸 소리를 들으니 바로 알겠다.

한 참을 쪼그리고 앉아 계곡물 소리를 들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님이 물소리를 표현하려고 하룻밤을 물가에서   보내고 나서 썼다는 ‘소살소살’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졸졸졸로만...

* ASMR(자율감각쾌감반응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 시각?청각 등의  자극을 통해 느껴지는 정서적 안정감이나 감각적 경험을 의미하는 신조어 

다음 행선지는 황토현 전적지. 산행 후라 피곤했지만 네비가 알려준 길을 따라 꾸역꾸역 나아갔다. 

황토현은 운동에서 혁명으로의 전환점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若無井邑 是無民主, 정읍에 가면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조병갑의 수탈로 시작된 동학농민운동이 전주 감영의 군대를 맞아 승리를 거둔 황토현을 기점으로 반봉건, 반외세까지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은 전복이므로 좀 더 치밀한 계획이 선행되었어야 했다. 지도부는 농민군의 분노을 하나로 모으되 냉철한 계획을 세웠어야 했다.

공주 우금치를 넘기에 분노의 열정은 넘쳤 으나 치밀한 냉정은 부족하지 않았나 아쉬움이 져민다. 우금치만 넘었다면 우리에게 민주의 꽃은 좀 더 일찍 피었을 텐데..

변화와 혁신은 저변의 에너지를 모아 동력은 만들 수 있느나 치밀한 계획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듯 혁명도 열정과 냉정의 조화가 필요한 것  같다. 네비가 알려준 황토현전적지는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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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 2021-05-03 23:50:38
재밌게 봤습니다.

박인숙 2021-05-03 16:23:09
내장산은 내장사만 둘러보고 나오는 것이 다반사였는데 이제는 걷고 싶어요.
솔티고개 가고 싶네.

고사리 2021-05-03 16:14:23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지니 2021-05-03 15:11:54
내장산 둘레길이 가고 싶어집니당~~

씨즈 2021-05-03 00:03:59
저도 같은 길을 따라 걷고 싶어지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