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초를 베어내듯, 욕망을 베다!”
“무명초를 베어내듯, 욕망을 베다!”
  • 전주일보
  • 승인 2021.04.2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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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초를 베어내듯, 욕망을 베다!”

 

잘 자란 잡초들

설득할 수 없는 사랑이 버려지듯

문전옥답에서 베어지다

 

질기게 살아가는 욕망사이로

풀이 다시 돋아나 바람에 맞서다

또 베어지는 초록빛 제물

세상인심이 귀찮은 눈초리로 기울면

귀한 황금풀인들 배기랴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베어지는 풀이다.

 

-황정현(1946~ 전북 정읍)풀을 베다부분

 

이 시에서 엉뚱하게도 수계受戒의식을 치르며 삭발하는 스님을 생각했다. 불가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라 해서 수행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본다. 무명초無名草는 이름 없는 풀을 가리키지만, 이 세상에 이름 없는 풀이 없다면, 이는 이름 모를 풀이다. 머리카락[無明草] 무명無明을 더욱 키워 출가의지를 흐리게 하는, 수행에 거치적거리는 것으로 여긴다. 잡초[無名草]가 베어내도 줄기차게 자라나 농부를 힘들게 하는 것처럼, 머리카락[無明草] 역시 잘라도 줄기차게 자라서 수행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무명無明은 일반적으로는 일체 사물에 대한 도리를 밝게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거나 진리에 대한 무지로 통용된다. 그러나 불교에서 무명은 인간 생사의 근원을 밝히는 12연기의 첫머리에 등장하여 모든 번뇌의 근본이요, 일체 악업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12연기[緣起. 因緣, 有支]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무명(無明-4성제, 고집멸도를 알지 못함) (-신행, 구행, 의행) (-식별하는 마음 작용) 명색(名色-명은 수, , , 식의 작용이고, 색은 4, 지수화풍) 6(-눈 귀 코 혀 몸 의식 기능의 작용) (-눈 귀 코 혀 몸 의식 기능의 접촉) (-즐거운, 괴로운, 무덤덤한 느낌) (-탐하여 그칠 줄 모르는 갈애) (-집착하는 번뇌) (-중생의 생존 상태) (-태어나는 괴로움) 노사(老死-늙고 죽는 괴로움)

12연기는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번뇌와 악업의 과정이다. 세존께서는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涅槃에 이르기 위해서는 사성제四聖諦(苦諦-괴로움이라는 진리, 集諦-괴로움의 발생이라는 진리, 滅諦-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 道諦-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진리)와 팔정도八正道(正見-바르게 알기, 正思惟-바르게 사유하기, 正語-바르게 말하기, 正業-바르게 행하기, 正命-바르게 생활하기, 正精進-바르게 노력하기, 正念-바르게 알아차리기, 正定-바르게 집중하기)를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 가르쳤다. 그럴 때 비로소 무명에서 벗어나 12연기의 괴로움에서 해탈할 수 있다고 한다.

풀을 베다'는 이 작품의 제목이자 제재이지만, 한편의 시를 끌고 가는 구체적 행위이기도 하다. 시적 자아를 농부이거나, 귀농하여 농사를 짓는 사람으로 본다면 그저 잡초를 베는 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진술에 담긴 시적 정서는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함축성과 은유적 맥락을 거느리고 있다. 풀을 베는 일은 불교에 귀의한 수행자가 머리카락[無明草]를 베어내는 행위일 수 있다. 그도 아니면 재가수행자라 할지라도 현실적으로 욕망의 그늘, 번뇌와 악업의 과정에서 헤어나지 못해 고뇌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럴 때 이 작품의 문학적 진실은 한층 더 깊고 오묘한 울림을 준다.

앞에서 무명초 때문에 석가세존의 가르침을 거론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작품의 함축적 의미와 문학적 진실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세존의 가르침을 건너뛸 수는 없을 것이다.

잘 자란 잡초들/ 설득할 수 없는 사랑이 버려지듯/ 문전옥답에서 베어지다라고 했다. ‘잡초는 시적 자아의 문전옥답[自尊]을 훼손한다. 그것을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사랑으로 설득할 수 없음에 있다. 문전옥답을 묵정밭으로 만들자고 설치는 잡초를 어떻게 사랑(구도의 순수성)만으로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수행자가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오로지 진리에 이르고자 하는 의지를 실행할 때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베어지는 것이다. 인생의 결실을 가꾸어야 할 문전옥답을 황무지로 바꾸려는 잡초를 벨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잡초를 베어야 하는 당위성은 질기게 살아나는 욕망사이로/ 풀이 다시 돋아나 바람에 맞서기때문이며, 그럴 때 귀한 황금풀[慾望]인들 배길 수 없다고 했다. 무명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욕망에 있다. 탐진치貪嗔痴 삼독三毒은 인간을 어둡게 하는 무명의 원인이다. 욕망에서 비롯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지우지 않고서는 누구도 거듭날 수 없음이다.

욕망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하는 근본 이유는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베어지는 풀에 불과한 존재라는 깨달음[시적진실] 때문이다. 그래서 깨달음은 비로소 시적 자아가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그의 길은 세존의 가르침처럼 고집멸도의 진리를 깨닫고 팔정도를 수행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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