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웃음꽃이 활짝 피던 아이
살구꽃 웃음꽃이 활짝 피던 아이
  • 전주일보
  • 승인 2021.04.0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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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이 용 만/수필가
이 용 만/수필가

매화꽃이 지고 진달래가 피었다. 이제 살구꽃이 필 때가 된 것이다. 살구꽃은 고향마을의 꽃이다. 살구꽃이 피어 있는 집은 영락없이 고향집인 것이다.

살구꽃이 환하게 피어 있는 외딴집에 미옥이라는 아이가 살고 있었다. 40년도 더 지난 저 먼 날에, 박사고을 임실 삼계 뒷고개 너머 재실에서 살던 작은 소녀였다. 낯꽃 좋고 심성 좋았던 아이인지라 사람을 보면 활짝 웃으며 꾸벅꾸벅 인사를 잘도 하였다. 먼 곳에서도 나를 보면 '선생님!' 소리치면서 달려오던 아이였다. 매일 아침 내가 출근을 하면 복도 저쪽 끝에서 달려와 나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때에 인사를 공손히 했음은 물론이고 정말 환하고 밝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가 웃을 때에는 얼굴 가득히 웃음꽃이 활짝 피어올랐다.

그 아이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이제는 반백을 넘겼을 그는 지금도 고운 얼굴에 웃음꽃 가득하게 사람을 반기고 있을까. 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어려서부터 그토록 웃기를 잘하고 사람을 반겼으니 그 심성, 그 버릇 어디로 갈까. 지금도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갑게 웃어주어 기쁨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설령 어떤 일로 살기가 어렵고 힘들다 해도 그 웃음만은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늘 웃음을 띠우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순간순간 띠워주는 웃음은 여전히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해주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집안이 환하고 동네가 환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녀에게 그 웃음을 물려주었다면 그 자녀는 별 힘 안 들이고 세상을 아름답게, 인류를 복되게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야말로 부모 복을 잘 타고난 것이다. 나 는 왜 그런 웃음을 간직하지 못하는가. 그처럼 만나는 사람들에게 환하게 웃어주지 못하는가. 그처럼 웃어 줄 수만 있다면 나를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을 텐데. 부끄럽다. 그 아이처럼 웃음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못했던 내가 부끄럽다. 그동안 미옥이의 웃음을 까마득 잊고 살았다. 그의 웃음을 진즉 생각해 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웃음을 흉내 냈어야 했다. 그랬다면 내 얼굴에 주름살이 조금은 덜 생겼을지도 모른다.

 

지난 휴일에 고향을 다녀오면서 박사고을 삼계 소재지의 탑정이 고개를 넘어오면서 그 재실이 눈에 들어왔고 그때에 문득 그 아이가 생각났다. 재실에 살았으니 그리 넉넉하게 살지는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마을에서 떨어진 산 아래 외딴집이었으니 외롭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늘 웃음을 띠고 살았고 사람을 좋아하고 반가워하였다. 세월이 흘러 수많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나와 만나고 헤어졌지만 그가 유독 오래 남아 있는 것은 그의 웃음 때문이었다. 그의 웃음은 한 송이 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무 가득 피어 있는 살구꽃이 제격이다. 그때에는 집집마다 살구나무가 한두 그루씩 있었고 봄이면 살구꽃이 환하게 피어 세상을 밝혔다. 어쩌면 그도 마당 앞에 피어 있는 살구꽃에게서 웃음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그도 이제는 5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을 터이다. 어쩌면 얼굴에 주름도 생기고 머리에 새치도 생겼을 것이다. 어쩌면 그때의 웃음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가 웃음을 잃었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 세상의 잘못이다. 그에게서 웃음을 빼앗아갈 어떤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의 웃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 세상에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누군가 한 사람쯤은 있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여왔다. 그래야 주변 사람들도 힘이 나고 살맛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찾기 위하여 애를 썼다. 몇 사람을 찾았는데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다들 힘들고 어려운 사연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 생각하니 미옥이, 그 아이가 바로 그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저리 가라 할 그의 고운 웃음.

그가 어떻게 변하였든 한 번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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