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떠난 강가에서
그대 떠난 강가에서
  • 전주일보
  • 승인 2021.04.0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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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강가에서 서성일 때
나는 강나루였기에
그대의 발자국소리를 들었다

그대가 강을 건너 갈 때
나는 그대를 가슴에 담은
한 척의 배였기에
그대를 위하여 조용히 흔들렸다

강을 건너간 그대는 
손조차 흔들어 주지 않고 길을 가고
빈 배인 나는
강둑에 온 몸을 꽁꽁 묶인 채
언젠가 돌아 올 것이라는
기약조차 없는 슬픈 생각을 했다

지금은 한 순간
강물에 스쳐간 작은 배가 아니라
사소한 떨림에서 시작하여
운명의 파장을 일으키는
영원한 물결이기를 오래토록 소망한다

밤이 되면 강은 달을 삼켰다. 뱃속으로 들어간 달은 강에게 포만감을 주었다. 물결이 출렁일 때마다 강은 은빛이었다. 제법 쌀쌀한 바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랫동안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은 찾아 갈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물에서 풍기는 물비린내에 취해 한동안 넋을 잃었다. 강은 속삭이며 물속으로 등을 떠밀었다. 나는 알몸으로 강에 뛰어 들어 물과 하나가 되었다. 강물이 몸을 더듬자 온몸이 간지러웠다. 한참 동안을 웃다가 한기를 느끼고 물 밖으로 나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강둑에 앉은 나는 강을 바라보았다. 잔잔하게 밀려오는 강물을 눈으로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은빛 강에 녹아들었다. 외롭고 슬플 때 마음속에 간직한 강을 꺼내 본다. 그때마다 코끝이 찡하다. 강을 그리워하는 나는 마음의 강에 못다 채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강을 위해 휘파람을 불었다. 잔잔하고 평화롭고 어머님의 품처럼 아늑한 강은 나룻배 한 척을 띄우고 어서 오라며 손짓을 한다. 배는 작았다. 몇 명만 타도 중량을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배 속으로 물이 스며들었다. 나는 강물을 바가지로 퍼냈다. 황토 빛으로 몸을 바꾼 강은 성난 용과 같았다.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거대한 몸을 뒤틀며 요란하게 물소리를 내고 있었다. 놀라 눈을 떠보니 먼동이 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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