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마
불가마
  • 전주일보
  • 승인 2021.04.0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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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광 섭/수필가
문 광 섭/수필가

전주 신시가지 서쪽으로 황방산이 병풍처럼 둘러 서있고, 모악산을 향해 흘러내린 산자락에 효자공원묘지와 승화원이 자리하고 있다. 친구 Y는 뭣이 급해 서둘러 떠나 이제 그 육신이 화장(火葬)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마당 쉼터에 쪼그리고 앉아서 차례를 기다렸다. 버스가 다섯 대나 늘어선 걸 보니 천국에 드는 것도 줄을 서야 한다는 사실에 우울해졌다.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다가 높이 솟은 굴뚝에서 희미한 연기가 오르는 데 시선이 머물자 만감이 교차되었다.

 

이곳은 불가마가 있는 곳이 아닌가! 불가마는 성서에도 나온다. ‘네부카드네자르 임금께서 세운 금상에 엎드려 절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타오르는 불가마에 던져버리겠다고 윽박지르는 구절이 있다.(다니엘서 35~6) 죽은 것도 억울할 터인데, 불가마로 들어가고자 줄을 서고 있으니 난센스다. 하긴 나 역시도 사후엔 자녀들에게 화장을 부탁해놓은 처지로서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왜냐면, 2년 전 여름 날 불가마 같은 찜통더위에 혼줄 났던 일 때문이다.

 

201881() 오전이다. 송천성당서 미사를 드리고 나서 11시쯤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다. 집까지는 20여분쯤 소요되는 거리라 무심코 걸었다. 한데, 집 가까이 이르렀을 무렵 어지럼을 동반하는 멀미가 났다. 한 낮 찜통무더위라 숨까지 막혀왔다. 간신히 집에 도착해선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밖에 나갔다 늦게 들어온 아내는 오늘은 일찍 자나 싶어서 깨우질 않았고, 이튼 날도 평소처럼 아침상만 차려 놓고서 형제들과 물놀이를 갔버렸다.

 

아내가 저녁때 돌아와 보니 아직도 자고 있는 걸 보고서야 사달이 났음을 깨닫고 소동이 난 사건이었다. 네 끼를 굶어가며 32시간 동안 잠만 잤던 것이다. 몇 차례 목이 타서 물을 마시려 했으나 얼마나 더위를 먹었는지 일어나질 못했다. 깨어난 다음 날 기력을 차리고서 그날의 일을 돌아보니, 그 날 기온이 111년 관측 사상 최고인 서울 39, 전주지방 38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불과 38도의 폭염에 맥을 못 추고 나가떨어졌는데, 불가마 온도는?

 

초등학교 시절에 참숯을 굽는 가마 골에 간적이 있었다. 우리 동리서 8Km 가량 떨어진 고개 넘어 산골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같은 반 급우가 이틀이나 결석해 찾아갔었다. 굴참나무를 불가마에 쌓고 열흘간 태우고 열흘간 식혀야 질 좋은 참숯이 나온다며, 온도가 1,000도라고 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또한, 시장터 대장간에서 호미를 만들 때 불가마 온도가 700도라고 들었다. 그러면 승화원 불가마 온도는 몇 도나 될까? 500도라고 해도 끔직하다.

 

가톨릭교회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신앙적 전통에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들렀다 가야 하는 연옥(煉獄)’이 있다. 이곳은 첫째 함부로 벗어날 수 없는 곳이고, 둘째 항상 어둠속이라 빛이 없는 고통이 따르며, 셋째 불의 고통을 겪는다.’고 했다. 하느님의 구원은 보장받았지만, 연옥에 머무는 동안 세상의 삶을 되돌아보고 영혼의 정화와 단련과정을 밟는 것이다. 단련이 필요한 영혼에겐 현 세상에서라도 무한한 기도를 보내어 도와줘야 한다.

 

연옥실화(煉獄實話)에 의하면 데레사 마르가리타 제스타(1797~1859)’수녀는 훌륭한 수도자였지만, 수녀들을 잘못 관리한 죄로 죽은 지 12일후 발현했다가 14일 만에 천국으로 올라가는 증표(불에 탄 손자국)가 이태리 폴리뇨시 프란치스코 수녀원에 남아 있다. ‘제스타수녀님 영혼도 수녀원 수녀님들의 열띤 기도와 간구로 뜻을 이뤘다고 전해온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기에 이 밖의 여러 연옥실화를 통해서 나의 영혼도 그러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불가마 같은 찜통 무더위에 혼줄 났던 일을 떠올리며 비몽사몽 하는데, 시간이 되었는지 장의차가 이동하자 상주들이 모두 일어나는 바람에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불과 5분 남짓 지나는 사이 친구 Y는 상주들의 오열 속에 불가마로 들어갔다. 그는 독실한 불자(佛者). 어제 빈소에서 독경하는 스님만도 스무 명이 넘는 걸 보고서 놀랐었다. 평소 그의 성품과 활발한 활동으로 봐서 적선도 크거니와 보시도 넉넉했을 것이라 여겨져 열반(涅槃)에 들었지 싶다. 그의 명복(冥福)을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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