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를 놓치다
막차를 놓치다
  • 전주일보
  • 승인 2021.03.2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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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시간이 한참 남았다 
한 사내가 이리역 광장 구석 포장마차 목의자 끝에
엉덩이를 걸친 채
소피보고 거시기를 털듯이
소주병을 움켜쥐고 마지막 잔을 툴툴툴 흔들어 따른다

옆에 앉은 빨간 바지가 몸을 지긋이 붙여온다. 케겔운동을 얼마나 했는지 엉덩이 근육이 옴죽옴죽 빵빵하다. 사내가 진저리를 치자, 화덕에 올라앉자 반쯤 입을 벌린 피조개가 발끈 성질性膣을 낸다. 

수작이 농익자 여자가 커다란 눈 속에
깊은 호수 하나 만든다
자정이 넘은 이리역은 이제 물이 올랐다

벌레 먹은 꽃과 몇 달 굶은 늑대가 골목 안 쪽방 벽에 음화 한 장, 완벽하게 그리는 동안  서울행 막차는
매몰차게 떠나버렸다. 생은 한 눈을 팔아도 어쩔 수 없이 트는 저 먼동.

ㆍ 이리역 : 이리시 철인동에 있었던 역 현재 익산시 창인동으로 개명되어 익산역으로 부름.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 전라북도 이리 역에서 열차가 폭발했다. 당시 열차에는 다이너마이트 상자 22톤(914개)을 비롯해서 초산암모니아 상자 5톤 (200개), 초안(硝安) 폭약 상자 2톤 (100개), 뇌관상자 1톤(36개) 등 총 30톤 1,250상자 분이 실려 있었다. 다이너마이트가 터지자 역 구내에는 직경 30m, 깊이 15m가 되는 대형 웅덩이가 팼다. 이때 역 구내에 있던 객차·화물열차·기관차 등 30여 량이 파손되었고 철로가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전라북도가 집계한 바에 의하면 인명피해는 사망자 59명, 중상자 185명, 경상자 1,158명 등으로 총 1,402명에 달한다. 인근 피해 가옥은 전파가 811동, 반파가 780동, 소파가 6,042동, 공공시설물을 포함한 재산피해 총액이 당시 61억 원에 달했다. 이재민 수만도 1,674세대 7,873명이나 되었다. 사고 일지를 보면 11월 9일 인천을 출발하여 광주로 가던 한국화약주식회사 소속 화약열차는 10일 11시 31분에 다른 열차와 함께 이리 역에 도착했다. 1605호 화물열차에 중계되어 목적지인 광주로 출발하기 위해 사고지점인 4번 입환대기선에 머물러 있었다. 호송원은 화약류 등 위험물은 역 내에 대기시키지 않고 곧바로 통과시켜야 하는 원칙을 무시하고 수송을 늦추고 있는 이리 역 측에 항의를 제기했으나 묵살되자 역 앞 식당에서 음주를 한 후 화약열차에 들어갔다. 캄캄한 화물열차 속을 밝히고자 논산역에서 구입한 양초에 불을 붙여 화약상자에 세워 놓고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잤다고 한다. 이때 촛불이 화약상자에 옮겨 붙었다. 한순간의 방심이 대규모 폭발 사고를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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