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 돌아오다.
백로, 돌아오다.
  • 전주일보
  • 승인 2021.03.2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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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금 종 /수필가
백 금 종 /수필가

봄이 왔다고는 하나 아직도 차가운 바람이 독수리 발톱처럼 날카롭다. 그 날카로운 바람 속에서도 봄의 씨앗은 잉태하고 있으려나? 이 봄은 자연에서 오던 예전과 달리 내 마음에서부터 왔다. 답답한 요즈음의 일상에서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에서 일게다. 아니 긴 시간 동안 화려한 귀환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마음도 한몫했으려니 싶다.

아직은 겨울옷을 벗어 던지기 어설픈 날, 봄을 찾아 가까이에 있는 백로 공원에 올랐다. 봄의 징조가 여기저기 느껴지는 가운데 어디에 봄 향기를 잉태하고 있는지 두리번거렸다. 산수유 노란 망울이 실눈을 뜨고 맞아준다. 복사꽃은 분홍빛 봉오리를 내밀 채비를 하는지 제법 부풀었다. 봄까치 꽃이 드문드문 푸른 별로 피어 삭막한 봄 언덕을 꾸몄다.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깊은 골에 이르렀다. 백로들이 날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감무소식이다 싶었는데 어느새 돌아왔다. 지난가을 너무 일찍 떠나가서 아쉬웠고, 겨우내 가슴 조이며 기다렸던 그들이 돌아온 것이다. 날 두고 떠났던 옛 친구가 찾아오면 이처럼 반가울까.

백로들이 떠난 것은 푸르던 잎이 곱게 물들기 시작하던 때였다. 새끼를 기르며 알콩달콩 사랑의 가정을 꾸몄던 백로 가족이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수런수런 생기 넘치던 공원에 을씨년스러운 정적만 흘렀다. 떠나려는 기척도 없다가 너무 일찍 떠난 것이 아닌가 했다.

백로가 철새라고 하지만 일찍 떠난 것은 왜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환경의 오염이 주범일 거라고. 그 이유는 이곳 백로 공원 인접한 곳에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고 수많은 주민이 입주하면서 환경에 변화가 생겼다. 소음과 먼지가 하늘을 덮고, 하천이 몸살을 앓았다. 푸른 숲이 시름시름 앓자 이런 현실에 더는 버티어내지 못하고 떠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이듬해 봄이 오면 다시 돌아오려나 했다. 기다리던 마음은 폭풍이 몰아치며 싸락눈 내리던 겨울을 지나 화사한 봄을 찾아 나선 이 순간까지 이어졌다.

 

한동안 숲속에 앉아 그들을 벗 삼아 삶의 모습을 엿보았다. 언제 그랬는지 벌써 둥지 안에는 알들이 보인다. 보금자리는 지난해 지었던 것 그대로이다. 잎도 피지 않은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지어진 허름한 누옥이어도 그들은 좋았던가 보다. 하기야 사랑을 나누는 데 헌 집이든 새집이든 대수이겠는가? 초라한 둥지는 어미 새가 알을 품고 있는 곳도 있고, 주인들이 출타한 듯 빈 채로 있는 곳도 있다.

잠시 후 돌아온 백로. 녀석은 둥지 서너 발치 떨어진 곳에 사뿐 내려앉는다. 바로 둥지 위에 내려앉지 않고 조심스럽게 주변에 내려 살핀다. 제 둥지를 유심히 살펴보며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는 경계 태세로 들어간다. 다리와 목을 곧추세우고 미동 없이 서서 먼데 한곳을 바라본다. 사방을 두리번거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쪽을 집중적으로 살피는 것은 아닌지?

그의 긴 목에는 빳빳한 긴장감이 돈다. 적으로부터 사랑의 결실인 알을 보호하려는 결연한 의지다. 오로지 위험에서 둥지와 알을 지키겠다는 심성이 돋보인다. 나의 생명, 내 가족이 소중하다면 타인의 생명과 가족도 소중함을 백로는 행동으로 나에게 암시한다. 한편의 약 한자의 비애를 보이는 것 같아 안쓰러운 생각도 든다. 약한 것이 강할 수도 있다. 강하다고 자만하다가 오히려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그것을 백로는 아는 듯하다. 인간 세상사에서도 많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보호 본능은 모두 생명체에 존재한다. 백로의 보호 본능도 여타 동물에 비해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 가정을 지키기 위한 나름대로 지혜를 발휘하는 광경은 우리 인간의 삶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가 아무래도 둥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내가 그들에게는 불편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앉아 있으니 슬그머니 찬 기운이 스미기도 한다.

조심스럽게 일어나자 백로가 다시 날개를 펄럭이며 긴장하여 경계하는 소리를 낸다. 기척을 최대한 줄여 골짜기를 빠져나왔다. 오늘 봄 마실은 나름 성공한 셈이다. 걱정하던 백로들도 보고 잠시 답답한 코로나를 잊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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