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미, 참된 아름다움은 힘이 있다!”
“예술미, 참된 아름다움은 힘이 있다!”
  • 전주일보
  • 승인 2021.03.22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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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좋은 삶

 

예술미, 참된 아름다움은 힘이 있다!”

감옥 속에는 죄인들이 가득하다.

머리통만 커다랗고

몸들이 형편없이 야위었다.

세계를 불태우려고

 

기회를 엿보는 어릿광대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일생을

감옥에서 보낸다.

-이세룡(1947~ 서울)성냥전문

 

시의 어법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성동격서聲東擊西. 그리고 설명이 필요 없는 시가 가장 좋은 시의 반열에 들어야 한다. 설명이 필요 없다는 말은 쉽다는 뜻만이 아니라, ‘깊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좋은 시는 드러난 정신이 진실할 것이라는 데 저절로 동의하게 하며, ‘재미있을 것이라는 데에도 이의가 없다. 그런 시를 찾으려면 찾게 되는 시, 이 작품은 그런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우선 시는 이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저것을 말한다. 성의 동쪽에서 침략군이 소란을 떤다. 금방이라도 공성전을 벌일 듯이 요란하다. 수비군은 성의 동쪽에 방위군을 집중하며 수성에 안간힘을 쓴다. 수비군뿐이 아니다. 성내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동쪽 공성에 대비한다. 그러느라 싸우기도 전에 성내에서는 초죽음이 된다. 새벽쯤 되어 소란을 떨던 성의 동쪽이 아니라, 뜻밖에도 상대적으로 수비가 소홀하던 성의 서쪽에서 공성이 시작되었다는 전갈이다. 수비군은 아연했다. 이미 주력부대가 동쪽에 집결해 있는 마당에, 서쪽으로 군사를 옮기는 사이 이미 성은 무너지고 적군이 성내에 진입하여 아수라장이 되었다.

시의 전법도 똑 같다. 이때 이 시[]의 동쪽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겉으로는 성냥-이 있을 뿐이다. 성냥갑엔 빨간 머리의 성냥 알갱이들이 가득 들어차 있을 뿐이다. ‘성냥이라는 제재가 없었더라면, 독자들은 감옥을 떠올렸을 법하다. 실재하는 감옥 풍경을 보통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비유로나마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다. 성냥갑 안에 불온한 사상으로 물든 빨간 머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곳이 바로 감옥일 터이다. 사상범일수록, 간악한 적대 세력일수록 그 처형은 더 가혹한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 그 좁아터진 독방에 칼잠아니면 잘 수 없게 몰아넣었을 것이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보았다. 죄수들이 견디기 어려운 계절은 겨울이 아니라 오히려 여름이라는 것을. 겨울에는 죄수들끼리 서로 붙어 잘수록 가혹한 추위를 이길 수 있지만, 여름-그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는 좁아터진 감방에서 서로 살이 붙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원수가 된다는, 지옥도가 된다는 것이다.

겉의 성냥갑이 속의 서쪽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하는 것은 내용진술이다. 제재 성냥이 전제한다는 것을 잠깐 잊고 시의 맥락을 충실히 좇아가다 보면 어느새 성냥은 간데없고, 앞에서 보인 감옥풍경이 등장해 있는 것이다. 독자들은 시끄러운 동쪽[성냥]을 향하여 갔는데, 적군[詩想]은 어느새 서쪽으로 진입해 있는 격이다.

감옥이 그럴 것이다. 경범죄, 날치기, 사기꾼 등 잡범도 있겠지만, 사상범 정치범 등 확신범도 함께 있을 터이다. 이런 범죄자들은 대개 그렇다. ‘머리통만 굵었지, 몸들은 형편없기마련이 아니던가![성냥개비처럼] 자기는 세계 혁명의 투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가둔 자의 입장에서 보면 기회를 엿보는 어릿광대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존재일 것이다. 그런 존재에게 허용된 공간은 좁아터진 감방이 전부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세상은, 세계는 그런 어릿광대들에 의해서 이만큼이라도 사람세상이 되지 않았던가? 타는 목마름에도 물 한 모금 얻어 마실 수 없는 척박한 환경을 몸으로 부대끼면서도 멈추지 않고 세계를 불태우려는, 그렇게 해서 사람세상을 이루려는 어릿광대들에 의해서 이만큼이라도 진보해 오지 않았던가!

멀리는 로마의 견고한 식민통치에 맞서 사람사랑을 외쳤던 나사렛의 예수도 당시 유대인이나 로마병정이 보면 어릿광대일 뿐이고, 왕궁 생활을 스스로 걷어찬 뒤 왕강의 4대문 밖을 돌아보고서[四門遊觀] 비로소 자비행만이 중생 제도의 길임을 발견한 샤카모니 역시 당대로 보면 형편없는 어릿광대일 뿐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죽창뿐인 무기로 왕조를 지키겠다는 백성들도, 그 왕조가 불러들인 외국 군대에 살육당하면서도 인내천人乃天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외쳤던 농민군도, 역사의 어릿광대로 치부될 터이다. 어찌 그 뿐이겠는가? 3.1운동의 민초들도, 4.19혁명의 주체인 학생들도, 그리고 군홧발 세력에 맞서 피의 항쟁을 멈추지 않았던 5.18광주민중항쟁의 영령들도 현대사의 어릿광대로 치부되는 끔찍한 세월을 살아왔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그런 어릿광대들에 의해서 오늘 우리는 이만큼 자유와 평화를 소리높이 외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성냥갑만한 감옥 같은 일생을 갇혀 지낼지라도 그것이 진실[사유]와 재미[예술미]의 맥락에서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있는 한, 시는 문학의 위상으로 우리를 지탱케 하는 뜻있는 힘이 될 것이다. 그래서 참된 아름다움은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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