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좋은 삶 6회
좋은 시, 좋은 삶 6회
  • 전주일보
  • 승인 2021.02.2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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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서두르는 모란 나무

삭정이 가슴으로

한겨울을 어찌 보냈을까

 

봄이오나 실눈 뜨고 내다보다가

무슨 사연처럼 잎새도 피우고

꽃을 맞이하느라 분주했을까

 

꽃망울 활짝 열리면

솟을대문집 소녀,

활짝 피어 잊힌, 그녀 생각나겠지

-양연길(1941 ~전주)모란꽃 소녀전문

 

노자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이라 말했다. ‘있음없음을 낳고, ‘없음있음을 낳는다. 가을[있음]은 겨울[없음]을 낳고, 겨울[없음]은 봄[있음]을 낳는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요, 이것을 노자는 상도常道라 했다. 그러므로 상도란 항상 변화하지 않는 그 무엇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 같지만 변하지 않는 고갱이를 지녔으며, 변화하지 않는 것 같지만 변하는 유장한 흐름을 보인다. 이를 노자는 상도라 했다.

무사태평할 것 같던 인류에게 뜻밖의 불청객이 찾아왔다. 코로나19는 마치 노자의 상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유무상생이라는 자연의 상도를 증명하는 듯하다. 코로나19[있음]은 수많은 인류를 죽음[없음]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뒤늦은 후회지만 인류는 자연에 오만했던 점을 비로소 반성[있음]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본다면 코로나19로 인하여 비록 희생은 컸으나 소득 없는 희생만은 아니었다.

혹한의 겨울이 꼬리를 감추려 한다. 이제 봄이 우리의 문턱까지 찾아왔다. 자연의 상도는 어김없이, 주저하지 않고 제 길을 찾아올 것이다. 참혹한 코로나19라고 해서 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목련꽃의 개화를 저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봄을 희망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삭막한 겨울의 무[없음]에서 생명력 넘치는 새싹[있음]은 희망의 상징이 되기에 분명하다. 인생을 사계에 비유한다. 봄은 청소년의 약동기로, 여름은 장년들의 활력 넘치는 생산성으로, 가을은 원숙한 장년들의 결실로, 그리고 겨울은 귀소를 준비해야 할 노년으로 비유해왔다.

그래서 청소년들을 봄의 새싹처럼 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자연의 상도에 의하면 노년이라 해서 희망을 가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봄맞이 서두르는 모란 나무/ 삭정이 가슴으로/ 한겨울 어찌 보냈을까삭정이 가슴인 노년이 모란 나무 개화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 바로 상도다. 노년[겨울]은 비록 귀소를 준비할 때이지만 봄맞이 서두르는 모란의 개화를 마중하는 것 또한 노년의 몫이다. 오히려 노년이기 때문에 더욱 새봄에 개화를 고대하는, 이것이 바로 유무상생이다.

삭정이처럼 말라비틀어진 겨울나무는 그대로 노년의 모습이다. 그래도 자연의 상도는 이를 외면하지 않는다. 삭정이 같은 가슴에도 생명의 봄을 맞이하느라, 겨울은 겨울도 아니다. 이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시의 화자처럼 시심을 간직한 사람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삭정이 나뭇가지에 피는 꽃은 바로 노년의 시심에 피는 소녀상이 된다.

봄이 오나 실눈 뜨고 내다보다/ 무슨 사연처럼 잎새도 피우고이것이 바로 노년의 시심이요, 노인의 시안이다. 없음에 이르게 될 자신의 존재감을 자포자기하는 것은 유무상생하는 상도가 아니다. 그래서 이 시의 화자[노년]은 더욱 치열한 시안으로 실눈 뜨고 내다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부푼 희망으로 푸른 사연을 쓰는 새잎이 돋아나는 것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누가 있어 이 노년의 희망을 헛되다 할 것인가.

그래서 그렇다. 소멸은 유기체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자와 서서 삶의 희망을 피우기 위해 분주한사람에겐 운명마저 함부로 간섭할 수 없는 법. 앉아서 봄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실눈 뜨고 내다보는사람, 삭정이 나뭇가지마다 생명을 사랑하는 사연을 쓰는 사람, 이런 이들이 지향하는 공통성은 바쁨에 있다. 그 바쁨의 원동력이 바로 시정신이다. 시정신으로 무장한 사람에겐 유무상생의 상도에 정통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노년의 시심은 소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꽃망울 활짝 열리면/ 솟을대문집 소녀를 만나게 된 것이다. 모란꽃이 전하는 새 희망의 메시지가 활짝 개화한 것이다. 마침내 시적화자인 노년[]는 비로소 시적 대상인 소녀[]를 만나 유무상생하는 자연의 이치를 형상화해낸 것이다. 비로소 없음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있음으로 되살려내는 시의 힘을 그려낸 것이다.

활짝 피어 잊힌, 그녀 생각나겠지화자는 계절의 계단을 밟아 내려간 게 아니었다. 그 숱한 연치의 층계마다, 그 많은 세월의 구비마다 잊힌소녀를 모란꽃으로 개화시키며, 시심만이 가능한 서정의 꽃을 피웠던 것이다. 이런 노년에게 소멸의 두려움이 무엇이며, 나태의 절망이 끼어들 수 있겠는가. 유무상생하는 상도의 힘만이 충만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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