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말을 걸어오는 삼천에서
물이 말을 걸어오는 삼천에서
  • 전주일보
  • 승인 2021.02.0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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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백 금 종/수필가
백 금 종/수필가

물은 흘러야 한다. 흐르는 물에는 생명력이 있다. 폭포를 만나면 떨어지고 여울목도 흐르면서 요동쳐야 생동감이 있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보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웅장하게 굽이칠 때 힘과 멋을 느낄 수 있다.

흐르는 물은 지향점이 있다.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 상선약수(上善若水)라던가? 노자(老子)의 가르침은 아직도 진행형이니 그래도 내 삶이 끝나기 전에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내 종착역이 어디인지 모르고 여기까지 흘러왔지만……

깊은 골짜기에서 세차게 흐르는 물을 보라, 그 물에는 청량감이 있고 오묘한 삼라만상의 기운까지 느끼게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라도 물이 없으면 절경이라고 할 수 없다. 산과 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경치에 넉넉히 적시며 흐르는 물이 조화를 이룰 때 자연의 아름다움이 완성된다. 물이 흐르는 곳에 인심이 풀리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촌락을 이루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내가 사는 곳에서 물을 찾아가면 삼천(三川)에 이른다. 삼천은 구이저수지와 광곡저수지의 물과 모악산 아래 중인 천의 물이 모여드는 작은 하천이다. 멀리 보면 노령산맥에서 발원한 물이 논밭의 곡식을 기르고 서해로 흐르는 간이역 같은 존재이다. 장마가 지속되거나 소나기가 내리면 유량이 많아 장관을 이루지만, 갈수기 때는 미미한 수량으로 갈증을 느끼기도 한다.

만경강 상류인 삼천에는 오리들이 텃새처럼 살고 있고 수달도 산다. 모두 흐르는 물 옆 모래 둔덕에 보금자리를 꾸민 삼천의 가족들이다. 이들이 있기에 삼천은 외롭지 않고 생명력을 자랑하다. 아니 삼천이 그들을 엄마의 품처럼 안아주었으려니 싶다.

오늘도 집에 있기가 답답하다. 리모컨을 누르는 것도,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도 따분하다. 카톡을 통해서 지인들의 안부를 전하는 것이 고작이다.

친구들과 만나서 차 한 잔 나누기도 부담스럽다. 친구와 나 사이는 서로 믿는다고 해도 스치는 누구도 미덥지 않고 숱한 사람이 드나들고 만나는 카페 또한 불안하다. 오라는 데도, 갈 데도 없을 때는 모든 일 다 제쳐두고 홀로 삼천으로 향한다. 본연의 나를 만나기 위해서다.

물이 흐르다가 고이고 고여 있는가 하면 흐른다. 흐르는 물은 징검다리 돌 틈이나 좁은 수로에서는 콸콸 소리를 낸다. 평평하고 얕은 곳에서는 속삭이듯 서서히 흐르기도 한다. 물은 흐르면서 말을 한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어보면 아기의 상태 알 수 있듯이 물의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물의 색깔을 알 수 있다.

흘러가는 물을 보면서 요즘 나의 일상과 견주어 본다. 신나게 흐르는 물은 코로나 이전의 나의 생활 모습이요, 한곳에 고여 있는 물은 코로나 이후의 나의 모습이려니 싶다.

흐른다는 것은 움직인다는 것이고 그만큼 힘이 있다는 것 아닌가. 물은 흐르면서 산소를 끌어들이고 불순물을 걸러 스스로 정화한다. 맑은 물에 얼굴을 비추어보면 주름 가득한 얼굴이 보이고, 내가 좋아했던 순희의 얼굴도 보이다가 물결에 흩어진다.

나의 청년 시절도 보인다. 물이 굽이치며 흐르듯 변화의 물결에 부대끼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이리 부딪치고 저리 치이며 험난한 세파를 헤쳐왔다. 그러나 물처럼 돌을 만나면 돌아가고 둑이 막아서면 넘어가는 지혜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차츰 발길을 옮기다 보면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도 만난다. 고여 있는 물은 맑을 수가 없다. 악취가 나고 이끼도 낀다. 까맣게 탄 숯덩이 같은 사연들을 안고 살아가는 내 가슴속 심연과 같다. 막혀 있으니 새로운 변화는 꿈도 못 꿀일. 썩어가는 물로 머물다가 남은 시간을 모두 소진한 후 씁쓸하게 웃는 내 모습이 그 속에 있다.

고인다는 것은 정체된다는 뜻이다. 정체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 않은가? 나무가 있으나 가지를 뻗지 못하고 꽃은 피었으나 향기가 없는 꼴이다. 날개 없는 바람개비일 수도 있다.

걷다 보니 어느덧 신평교다. 하천을 잘 가꾸어서인지 흐르는 물소리가 힘이 있고 리드미컬하다. 윤기 있는 햇살과 바람 그 낭랑한 물소리가 어우러져 미진한 내 삶의 찌꺼기들을 씻어준다. 역시 물은 흘러야 제멋이다. 활기 있게 흐르는 저 물처럼 상쾌한 하루하루가 이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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