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전북인의 심성
우리가 몰랐던 전북인의 심성
  • 전주일보
  • 승인 2021.01.1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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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지난 14일 전주 오거리에 설치된 전북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실적을 알리는 온도계가 100도를 넘어 114도를 기록했다. 모금을 시작한 지 45일 만에 목표를 훌쩍 넘어 조기 달성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모금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던 예상을 깨고 목표치를 넘어선 것이다.

사랑의 온도탑은 지난 2018100.5, 2019103.4, 지난해 107도를 달성한 바 있다. 2018년부터 작년까지는 캠페인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어렵게 100도를 달성했다. 그런 경험으로 목표를 약간 줄이기는 했지만, 이처럼 캠페인이 시작된 지 45일 만에 조기 초과 달성한 일은 마치 기적인 듯 믿기지 않는 일이다.

지난 16(토요일) 오후 현재 전북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홈페이지 사랑의 온도탑에는 120767,000만원의 모금실적이 기록되어 있었다. 16일 오후 현재 실적으로는 울산광역시가 130%1, 전북과 인천광역시가 120%로 다음이었지만, 그 밑 단위까지 계산하면 전북이 2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각 광역 시도별 모금실적을 들여다보다가 필자는 전북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경제 규모를 보면 세종시와 제주도를 제외하고 강원도보다 조금 많은 수준인데 모금액이 상당히 많다는 걸 발견하고 지역별 총생산 대비 모금액을 비교해 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랄 데이터를 찾아냈다. 지나치게 인색한 지역이 있고 전북은 가난하지만, 이웃을 생각할 줄 아는 진정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걸 발견한 것이다.

 

전라북도가 시도 가운데 두 번째

 

이번 모금액을 비교한 기준은 2021116일 오후 6시현재 지역 공동모금회 홈페이지에 올려진 사랑의 온도탑에 기록된 수치이고, 대비한 통계는 통계청 발표 2019년 지역별 총생산 액수였다. 지역별 총생산액과 16일 오후 6시 현재 모금액을 대비하여 100분율로 계산했다. 총생산 액수의 몇 %를 모금했는지 시도별로 비교했다. 총생산금액은 명목 총생산액을 기준 삼았다.

목표 대 실적을 비교하는 건 시도별로 목표 설정액이 들쑥날쑥해서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실제 지역 총생산과 모금액을 비교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모금액을 지역 총생산액으로 나눈 결과 대구광역시가 0.0156%로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당연한 결과였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리고 부를 축적한 부자들의 동네인 점을 생각하면 외려 적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혜를 누린 경상북도도 0.0122%를 기록하여 부자들이 사는 동네이니 당연하다고 보았다. 대구광역시의 총생산은 577,557억 원이고 모금액은 902,000만 원이었다.

그런데 대구광역시 다음에 두 번째 높은 0.0148%를 기록한 지역이 놀랍게도 가장 가난한 우리 전라북도였다. 전라북도의 총생산은 518,260억 원이고 모금액은 767,000만 원이다. 사실 통계상의 총생산이 광주나 대전광역시보다 조금 많지만, 농업 관련 소득 이 대부분인 전북의 가처분소득 수준은 강원도와 비교해서 결코 우위에 있지 않다. 전북은 20191인당 민간소득 지출액이 1,6022,000원으로 전국에서 충북 다음으로 적다.

반면 인구도 많고 총생산액이 1128,485억 원인 경상남도는 공동모금 목표액을 77억원만 설정하고도 모금액이 656,000만원에 불과하여 목표대 실적은 85%, 총생산액 대 모금액 비율은 0.0058%에 그쳤다. 전북의 39%에 불과한 비율을 보이고 있다. 잘사는 사람들이 너 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경남은 1인당 은행 예금액이 전남의 2배일 만큼 넉넉한 지역이다.

 

세덤의 마음을 이어온 전북

 

지난날 화폐 이상의 거래 수단이던 쌀을 넉넉하게 생산하던 전북 사람들은 조급하지 않았고 남을 위해 베풀기를 좋아했다. 밥을 지을 때 식구들 밥 외에 세 그릇을 더 지어 아랫목에 묻어두고 배고픈 사람이 찾아오면 선뜻 밥상을 차려주던 전주 인심이다. 밥 세 그릇을 덤으로 더 지었다 해서 세덤이라 부르던 아름다운 풍습을 지닌 전북인이다.

박정희의 영남 중심 공업화 정책에 소외를 겪으면서도 전북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척박한 땅에 기대어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외지에 정착하고 근면하여 나름 성공하면 고향을 잊지 않았다. 이번 모금에 거액을 낸 고액 기부자들 가운데는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출향 인사들도 있었다.

적은 돈을 내도 금액을 적어 앞에 세우고 기념촬영을 해서 신문 지면에 실리는 게 일반화된 일인데, 그들은 수억 원을 내면서도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전북에는 코로나19에 어려워진 사람들을 위해 어렵게 번 돈을 선뜻 낼 수 있는 마음의 부자들이 있어서 이번 모금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 글을 쓰면서 통계청의 경제 분야 통계를 찾아보았다. 전북이 과연 그런 능력이 있어서 모금에 탁월한 성과를 낸 것인지 궁금해서다. 통계청이 내놓은 통계를 보며 우리 전북인이 정말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적게 벌지만 알뜰하게 소비하고 저축도 많이 하는 전북 사람, 술도 적게 마시고 담배도 덜 피우는 사람들이 전북인이다.

소비는 두 번째로 적게 하면서 1인당 은행 예금액은 도 단위에서 경기도와 경남 다음이었다. 술을 마시는 인구 비율인 음주율이 2019년 현재 56.9%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담배를 피우는 흡연 인구도 18.9%로 서울과 세종시 다음으로 낮았다. 종합해보면 적게 버는 대신 적게 쓰고 저축하고 허투루 살지 않으며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들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전주시에서 착한 임대료 운동, 착한 캠페인, 고용유지 정책 등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성실하게 사는 시민들의 협조였다. 바른생활 시민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밑바탕을 이루어 남을 돕는 이타행(利他行)으로 이어져 하나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전북인은 돈에 집착하듯 애바르지 않고 내가 어려우면 더 어려운 이들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전통과 심성을 지녔다. 주역 곤위지(坤爲地)괘 풀이에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는 말이 있다. 각박한 세상이지만, 오래지 않아 전북에도 포근한 볕이 드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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