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직한 위로
나직한 위로
  • 전주일보
  • 승인 2021.01.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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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정 선/수필가
최 정 선/수필가

 새해 첫날 친구에게 문자와 전화로 안부를 물었습니다해마다 친구가 먼저 내 안부를 걱정했습니다만, 어찌 된 일인지 올해는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에도 내가 보낸 안부에 답이 없었습니다.

거꾸로 걱정되었습니다. 다시 전화했습니다. 겨우 몇 마디, 그마저도 아주 힘없이 잦아드는 목소리였습니다. 많이 아파서 병원에 있었고 큰 수술을 받고 오늘에야 집에 왔으며, 내내 전화를 받을 수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부디 몸조심하고 몸조리 잘하라고 서둘러 말하고 전화를 놓았습니다. 어디가 어떻게 아파서 수술했는지 친구도 나도 말하지도, 묻지도 못했습니다. 나보다 훨씬 활기차고 건강하게 삶을 지탱하고 있던 친구였습니다.

- 사는 일은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서울에 가서 아이들하고 새해를 보내고 내려오는 길입니다. 우리와 같은 객실에 겨우 승객 서너 명이 더 있습니다. 여느 날 같으면 남쪽으로 향하는 겨울 열차에 이렇게 빈자리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천지가 숨을 죽인 듯 고속도로를 달리던 그 많던 차들도 하나, 둘 셀 듯합니다. 날이 워낙 추워서 산과 들에 아직껏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강물도 시냇물도 작은 개울까지 꽁꽁 얼었습니다. 길옆 남향한 낮은 산기슭 무덤 위에도 흰 눈이 녹지 않고 덮여있습니다.

하지만 햇볕은 여전히 따뜻합니다. 차차 눈 녹으며 주검도 저 안에서 평안하고 따뜻할 것입니다일상 같으면 저만치 들길을 오가던 사람들도 오늘은 하나 둘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마을 뒷산 기슭에 외롭게 앉아있는 집 한 채, 눈 쌓인 지붕 위에도 햇볕이 따뜻합니다. 홀로 지내시는 늙으신 어머니가 볕 자리에 나앉아 몸을 덥히고 있을까요.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온 산천이 흰 눈 세상입니다. 옷 벗고 맨몸인 나무들도, 그 아래 그늘진 자리까지 골고루 흰 눈옷을 입고 있습니다. 눈옷을 입고 눈 이불을 덮은 천지에 빛나는 햇빛이 눈부시게 환합니다. 들판에 즐비한 비닐하우스 위에 내리는 햇빛은 더욱 싱싱합니다. 하우스 안에서 숨 쉬는 생명들이 모처럼 어깨를 펴고 기운을 차리겠지요. 꽃과 나무들도 점점이 피어날 차례를 준비할 것입니다.

한겨울 살을 에는 추위 속, 눈 덮인 천지에 햇빛 찬란한 저 풍경보다 더 평온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있을까요. 한껏 웅크린 가슴을 펴고 떨리는 마음을 달래며 자칫 무너지려는 우리를 손잡아 위로하는 다른 무엇이 있을까요.

 해는 더욱 높이 떠서 어디쯤 산그늘에 웅크리고 있는 추위마저 따뜻하게 위로할   것입니다.

 기차는 또 - 아주 천천히 조심조심 기적을 삼가고 간이역을 통과하는 것으로 -

 매운 추위와 병마에 시달리는 세상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를 대신합니다.

 고향 역참에 들어서자 여기로부터는 이미 눈 녹은 벌판에 햇빛이 만연합니다.

 마침내 내 마음에도 나직한 위로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한 해는 새해 첫날부터 해가 다 가도록 어려운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 내일이면, 내일이면가라앉겠지, 끝이 나겠지손꼽으며 한 해를 다 여의고 말았습니다그러나 우리는 또다시 나직한 목소리로 서로를 위로하며 희망을 가꿀 것입니다.

- 새해가 돌아왔습니다.

- 새봄이 오면겨울 햇볕에 몸을 녹이며 푸르게 숨 쉬는 들풀처럼 우리도 큰 한숨 쉬며 일어설 것입니다. 북극한파가 밀어닥쳐 날이 더욱 차고 어둡습니다. 우리 몸과 마음은 그로 하여 한정 없이 여리고 가늘어졌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을 뒤로하며 함께 손잡고 걸어갈 것입니다. 다시 만나서 못다 한 이야기들 맘껏 풀어낼 것입니다. 몹쓸 전염병이 지칠 줄 모르고 날뛰는 세상을 햇볕 다정한 풍경으로 가꾸는 뜨거운 눈물이 될 것입니다.

- 함께 모여 춤추고 큰소리로 노래하며 기쁘게 울고 웃을 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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