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를 넘으며
상실의 시대를 넘으며
  • 전주일보
  • 승인 2021.01.1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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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북극한파가 며칠째 계속되며 세상이 온통 얼어붙었다. 하얗게 내려 온갖 더러움을 덮어버린 눈조차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추위에 갈 곳 없는 이들의 모습이 TV 화면에 비치면서 답답한 우리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아직도 며칠 더 견디면 한파가 누그러진다지만, 겨울은 늘 가난한 자의 편에 서지 않는다.

거기다 지긋지긋한 코로나-19는 사흘째 600여 명의 확진자를 내고 있다. 길거리든 건물 안에든 TV 속에서도 얼굴을 감춘 사람들의 눈만 볼 수 있다. 본 모습을 마스크로 감추고 가면으로 산 지 1, 모든 관계가 희미해지고 정()이 멀어져 삭막한 마음이 세상을 휘젓는다. 1년이라는 기간에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유다르게 정이 많고 정에 끌려 살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오랜 독재 시대를 건너면서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너를 밟고 올라가야 내가 산다는 승자독식이 사회정의로 둔갑하여 부딪히는 감정마다 외나무다리에서 둘 중 하나가 떨어지는 결말이 당연시되었다. 세상을 바꿔보려는 인간적인 리더가 나왔지만, 각다귀들을 견디지 못했다.

어둠의 세력이 점차 힘을 키워 국민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참담한 현실을 보며 돌고 도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원망하기도 한다. 미국이 트럼프라는 장사꾼을 대통령으로 뽑아 4년이 지난 오늘에야 후회하듯 이 나라도 괴물 언론의 꾐에 빠져 모든 것을 그르친 뒤에 지난 시간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고구마 몇 개를 한꺼번에 먹은 듯하다.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가 5,1829,023명이었다고 한다. 지지난해 말에 비해 2만명이 줄어든 셈이다.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보다 많아지는 인구 데드 크로스(dead cross), 소멸의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이렇게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점점 그 폭이 커져서 오래지 않아 노동력 부족 사태가 오고 국방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관계자들은 주민등록 인구수는 실제 인구보다 많으므로 어쩌면 5,100만 명 선도 무너졌을 것이라고 한다.

우리 전북도 2015187만 명이던 인구가 2016년에 1865,000, 2017년에 1855,000, 2018년에 1837,000, 2019년에 1819,000명으로 5년 사이에 5만명 넘게 인구가 줄었다. 도내 5개 시군 정도는 지역 소멸을 걱정하는 단계이고 오래지 않아 행정구역이 통폐합을 거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최근에 초광역화라는 이름으로 종래의 광역범위를 통폐합하자는 움직임이 시도되는 것도 인구 감소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통폐합이 불가피하게 되면 인구와 경제력이 작은 지역은 큰 지역에 흡수 통합될 수밖에 없다. 지역 명칭이 사라지는 문제를 넘어 누군가의 고향이던 마을과 행정단위가 통째로 사라지는 진짜 소멸이 다가오는 게 현실이다.

그런 소멸을 피하려는 시도가 인근 지역과 서로 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경제권을 형성하고 특색을 만들어 살아남자는 구상이다. 최근에 전주시와 완주군 통합 이야기가 나오자 완주군 일부 인사가 발끈하고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인식은 당장 코앞만 생각하는 단견이다. 몸집을 불려놓아 덩치를 키우고 지역 특색을 살리지 못하면 흡수당하여 소멸한다.

인구를 늘리겠다고 임산부 지원책을 너도나도 내놓고 있지만,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이를 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워주고 교육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실효를 거둘 수 없다. 아이를 낳아 가족이라는 단위를 이루어야 행복해지는 사회를 만들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이다. 그동안 수조 원을 퍼부은 인구정책은 헛짓이었다.

 

1%가 독점하는 세상

 

일부 의견은 여성의 가사노동 가중으로 아이를 회피한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여성들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아울러 대부분 가정은 여성이 주도권을 쥐고 남편들이 가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대다. 아이를 낳으면 행동 범위가 좁아지고 아이 뒷바라지에 삶을 바쳐도 바라는 만큼 키워낼 수 없다는 걸 인식하기 때문에 출산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런 인식의 바탕에는 1%가 독점하고 지배하는 세상, 그들 1%와 주변의 무리가 힘으로 밀어붙이는 사회가 싫다는 반감이 숨어있다. 자식을 낳아 뼈 빠지게 가르쳐 세상에 내놓으면 기껏 상위 1%를 받드는 졸개이거나 하수인 정도로 살아야 하는 숙명을 거부하는 것이다. 나 하나가 당한 것도 서러운데, 자식에게까지 그 수모를 물려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런 바탕에서 자식을 낳아 온갖 어려움을 당하느니 그저 혼자 편하게, 자유롭게 살겠다는 생각이 오늘의 인구 감소 시대를 불러왔다. 불공정이 일상화하고 힘의 차이가 공공연히 드러나는 사회에서 내 능력치에 절망하는 이런 사회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꼬드기는 일은 무의미하다.

반면 1% 세력은 아이를 여럿 낳아 점차 세력을 불려간다. 사업도 맡기고 정치도 시키며 검사와 판사를 만들고 신문이나 방송도 사들여 지배한다. 그렇게 점점 불려간 세력은 나라 전체의 모든 중요 부서에 포진하여 정보를 생산하고 재빨리 공격에 대응한다. 서민 계층에서 나온 대통령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다.

군사독재시대에 정부의 막대한 지원으로 족벌화한 신문은 자전거를 주고 무료구독의 미끼를 던져 수백만 독자를 만들었다. 그들의 신문을 오래 읽다 보면 저절로 그들에 동조하게 되는 최면 기술로 세력을 구축했다. 그들 언론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대통령도 정당도 힘을 쓰지 못한다. 그들이 1%를 리드하고 조종한다.

검찰도 사법부도 그들과 이어져 동조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바로 그들이 1%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멋도 모르고 그들의 조종에 꼭두각시 깨춤을 추는 수가 점점 늘고 있다. 나라가 어디로 가려는지 인구소멸과 1%의 준동이 상승효과를 내다가 보면 어느 시점에선가 그들의 종주국인 일본에 다시 나라를 바치는 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끔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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