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모악산
겨울 모악산
  • 전주일보
  • 승인 2021.01.1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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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에 오른다
밤새 허공을 건너와 침묵이 된 눈을 밟으며
모악산에 오르면
불만과 탄식으로 얼룩진 육신이 백옥처럼 윤이 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굽은 나뭇가지에 몸을 의지하고
발바닥에 힘을 주면서
산을 오른다
엄동설한에 어머니의 품속으로 들어가면
출세에 발버둥 치던 날이
이재에 눈멀었던 순간들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겨울 모악산에서는 가난의 눈물도 종주먹을 쥐던 핏발선 투쟁도
눈 내린 골짜기에 묻히고 만다
빈 나뭇가지에 앉았던 새 한 마리가
허공에 점 하나를 찍으면
오르는 것은 결국 내려가기 위한 것이라고
겨울 모악산의 한 말씀 눈꽃으로 핀다

 

ㆍ 모악산母岳山 : 전북 완주군 구이면

겨울 산을 올려다본다. 능선과 구릉으로 이루어진 산이 희미하다. 시야에 펼쳐지는 풍경은 내면의 공간으로 쏟아져 울컥한다. 옷 벗은 나무들은 엄혹한 겨울을 참아내려고 손을 맞잡거나 어깨를 걸고 있다.

그러면서도 하늘을 향해 솟구치려는 자세를 흩뜨리지 않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잉잉거리는 소리는 아무리 추워도 꺾이지 말자는 결의와 다짐이다.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는 것이 겨울 산이다.

특히 자연의 섭리에 순응해야 한다는 값진 선물이다. 그러나 겨울산은 냉랭한 모습 그대로 선험적 지식을 젖은 눈으로 바라본다. 봄이 올 것이라는 기대와 여름 산에 대한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지켜보고 있는 겨울 산은 말이 없다.

사람들은 참 많은 말을 한다. 떠다니는 소문도, 믿을 수 없는 얘기도 구별하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 해가 저물어 갈수록 따스해지는 것이 겨울 산이다. 산 그림자는 마을을 품고 잠들고 먹이를 찾아서 허공을 맴돌던 새들은 돌아와 깃을 내린다.

잔솔가지는 솜털 같은 눈을 덮고 긴 잠에 빠진다. 동면을 하면서 꿈도 길게 꾼다. 거기다가 침묵이 되고 진실과 깨달음이 된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우주의 섭리를 스스로 깨닫는다.

겨울산은 묵상의 얼굴로 침묵의 정수리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신의 뼈가 드러나지 않는다. 눈보라 속에 얼어붙은 겨울 산을 바라보는 나와 너는 겨울 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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