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호세력으로 정착한 기득권 신문
토호세력으로 정착한 기득권 신문
  • 신영배
  • 승인 2020.12.1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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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대표
신영배 대표

인터넷신문 전북의 소리에 따르면 전북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선정하는 8회 전북민주언론상에 김제 시민의 신문이 취재 보도한 '송하진 지사 가문 우상화 사업인가?’KBS 전주총국 다큐멘터리 할미넴이 선택됐다.

김제 시민의 신문은 지역 인터넷신문으로 전북일보 기준으로 본다면 신문도 아니다.’라고 평가할 만큼 작은 신문이다. 이 신문은 도내 어느 언론도 지적하지 않은 김제서예문화전시관건축과 향토문화유산 등재 사실을 제대로 파헤친 기사를 섰다.어느 언론사보다 훌륭한 언론사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최근 필자는 김제 시민의 신문에서 지난 5월에 보도한 기사를 찾아보고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 기사에는 전주에 강암서예관이 있음에도 김제에 또 다른 서예 문화 전시관을 신축하는 계획과 함께 선조의 재각(齋閣)이라고 밖에 용도가 없는 요교정사라는 작은 한옥 건물과 조부의 무덤까지 향토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사실을 밝혔다.

아울러 송하진 지사 휘하에 있던 박준배 김제시장과 정무부지사를 역임한 후 21대 국회에 입성한 이원택 의원의 힘이 합쳐져 송하진 지사 가문의 우상화가 막힘없이 진행될 것을 우려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누구도 말하지 못했던 기사가 작은 인터넷 신문에 실려 부끄러운 언론 현실을 대변하고  있었다.

발행 · 유가 부수가 좋은 신문의 기준인가?

전북도와 김제시를 출입하는 기자들과 본지를 포함한 도내 모든 신문과 방송이 전혀 지적하지 않았던 기사를 보며 얼마 전에 전북일보가 시군의 홍보비 예산 집행기준을 발행 부수와 유가 부수를 기준으로 정하는 조례를 제정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사설이 떠올랐다. 

사설을 요약하면 발행부수가 많아야 바른 신문이며 신생 후발 신문에 홍보예산을 주는 것을 차단해야 신문 질서가 바로잡힌다는 주장이었다. 전북일보는 26,000부를 발행해 도내 1위의 신문이라고 으스댔다. 그렇다면 121만2000여부를 발행하는 조선일보의 눈으로 전북일보를 재단하면 아마 신문도 아닐 것이다.

전북일보가 발행 부수를 기준으로 홍보비를 받아야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배경은 지난 칼럼에서도 지적한 대로 전두환 독재 시대에 유일한 지역신문으로 군림하면서 지역의 토호(土豪) 세력으로 자리를 잡은 텃세라고 말하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권력에 비판의 날을 세운 기자들이 해직되고 숱한 신문들이 강제 폐간될 때, 권력에 영합해 살아남은 일을 자랑하는 뻔뻔함과 이 밝고 달라진 세상에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배짱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지난 시절의 논리를 끌어와 소소한 신문은 다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하고 참혹하다.

지난 2일 전북도의회 세미나실에서 민언련을 앞세워 시군의 홍보예산 지급기준을 무엇으로 정해야 하는가라는 토론회를 열게 한 주체가 누구일까 생각해 보았다. 토론회를 마친 다음 날 전북일보는 1면 기사와 사설을 통해 시군 홍보예산 지급기준을 조례로 지정하라고 윽박질렀다.

지난 독재 시절을 그리워하는 심경은 이해하지만, 변하는 세상을 되돌리려는 짓은 어리석다. 그런 일에 도의원과 대학교수가 동원되었다는 건 더욱 서글픈 일이다.

조례는 주민대표들이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자치 사무에 관하여 정하는 하위 법이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조건을 설정하는 건 조례로 정할 범위가 아니다. 민주화 된 세상에서 발행 부수가 많은 신문에 홍보비를 더 주어야 한다는 조례를 정하라니, 참으로 방자하고 황당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참언론은 예나 지금이나 사실에 근거한 견제와 비판이다좋은 기사를 신문에 보도하면 발행부수와 관계없이 인터넷을 통해 국내는 물론 전 지구촌으로 알려지는 시대다. 그럼에도 기사의 질은 차치하고 오로지 발행부수만을 강조하는 그런 언론사야말로 퇴출 되어야 할 것이다.

언론 황폐화의 주범 기자단

세상사의 옳고 그름을 말과 글로 따지고 밝히는 언론의 필요성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정치집단이나 기관 단체들은 자신들의 일을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시시비비, 즉 언론을 꺼리기 마련이다. 꺼리는 자를 줄기차게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밝히기 위해 잘못을 따지는 이들이 다름아닌 기자다.

오래전에 어떤 정치인이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기자만 없으면 정치도 해 먹을 만하다.”라고 했던가? 기자는 바로 모든 잘못을 파헤쳐 낱낱이 알리는 사람들이다. 그 대상이 누구이든 잘못을 보면 속속들이 끄집어내서 말과 글로 세상에 알리는 사명을 진 사람들이 기자다.

그런데 독재 시대를 지나오면서 대부분 기자가 입을 닫고 펜을 놓았다. 그렇게 침묵하는 대가는 직간접으로 나타나 생활이 나아지고 글을 쓰지 않아도 꼬박꼬박 보수가 나왔다. 언론재단을 통해 해외여행도 갈 수 있었고 기업인과 골프도 치며 머리 아프게 취재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기사를 만들어 주는 보도자료가 넘치니 메일만 열면 꼭지를 채울 수 있었다. 데스크는 각 분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기사를 찾지 않았고 출입처에서는 상전 대우를 해주었다. 기자실에 가서 차를 마시고 한담이나 하다 회사에 들어가 정보를 교환하고 자료를 찾아 기사를 내놓으면 일과 끝이다.

출입처마다 기자단이나 기자실을 운영하며 기자들을 묶음으로 상대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간사와 협의해 보도의 범위를 합의하고 웬만하면 덮어버리는 묘수(?)를 썼다. 특히 단체장이나 기관장의 문제를 보도하는 건 금기시했다.

최근에는 기자 출신들이 홍보담당으로 앉아 출입하는 기자들을 컨트롤하고 동료의식을 전파해 쉽게 합의를 이루기 일쑤다. 물론 기자실에는 신생 신문이나 군소 언론 기자는 출입을 하지 못하게 차단했다. 협회 가입이나 등록 사항 따위를 따지며 자격요건을 만들어 그들만의 성을 쌓았다. 행동 통일이나 몫이 줄어드는 걸 참지 못해서다.

알릴 것을 알리고 감출 것은 감추는 언론 풍토가 굳어버린 근본이 바로 이런 기자단과 기자실 운영에 있다. 좋은 일만 알리는 보도 자세가 굳어버린 지금의 언론 풍토 아래서 언론은 죽어버린 지 오래다.

그저 아프지 않을 정도만 건드리는 피상적 보도만 남은 언론 현실에서 종이를 몇 장이나 허비하는지 셈하는 일은 무의미를 넘어 낭비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의 모든 언론과 기자들은 본디 자세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다. 독재 시대의 언론을 그리워하는 망상은 이제 집어치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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