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公職)의 무거움을 알아야
공직(公職)의 무거움을 알아야
  • 전주일보
  • 승인 2020.11.2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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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공직은 누가 억지로 맡기지 않는다.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수행할 수 없는 게 공직이다. 선거에서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거나 본인이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해야 공직을 맡을 수 있다. 또는 선출된 공직자의 임명으로 정무직을 맡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도 싫은데 억지로 맡아 공직을 수행하는 경우는 없다. 주인인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는 떳떳해야 한다.

어떤 자리이든 공직에는 수행하는 공적 업무 범위에 해당하는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어 있다. 따라서 공직자가 맡은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는 월권이고 범법행위가 된다. 아울러 부여된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직무를 게을리한 것이 된다. 월권이나 태만 행위 모두 국가나 자치단체, 국민에 해를 끼치는 일이다.

공직은 지역이나 국가의 이익을 위해, 주인인 국민을 위해 일하는 자리다. 그래서 공직을 무겁게 알고 조심스럽게 수행해야 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공직의 권한을 제 주머니 물건 꺼내쓰듯 제멋에 겨워 마구 쓰다가 재선에 실패하고 끝까지 몽니를 부리고 있다. 공직의 의미를 우습게 본 대표적 사례다.

공직자는 자신의 처지를 무겁게 생각하고 직무와 관련이 있든 없든 사적인 일과 연결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트럼프의 몰락도 딸과 사위를 측근 공직에 앉혀 모두를 놀라게 한 일에서부터 출발했는지 모른다. 대통령에 당선된 일을 회사를 접수한 것 정도로 생각하는 한심한 발상이 임기 내내 파격과 기행을 반복하게 하고 끝내 그를 권좌에서 끌어 내렸다.

 

냄새나는 부안군 청원경찰 임용

 

부안뉴스에 따르면, 지난 20일 부안군이 청원경찰 4명을 새로 뽑았다. 그런데 필기와 체력, 면접 등 소정의 경쟁을 거쳐 40명의 응시자 가운데 선발된 4명의 신분이 문제가 되었다. 한 사람은 군수 선거 때 큰 도움을 주었던 현 부안군 체육회장의 아들이다. 또 한 명은 얼마 전에 공로연수에 들어간 모 국장의 아들이고 다른 한 명은 최근에 퇴직한 모 면장의 딸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공무직 공무원의 동생이다.

모두 공직자와 연결되는 사람들이다.이를 두고 지역에서는 합격자들의 배경을 살펴보면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역차별이라는 말이 나올지라도 의심받는 인사는 안 하는 게 좋다. 특히 채용은 의심받지 않도록 꼼꼼히 따질 필요가 있다 라며 경계의 눈초리를 보였다.

옳은 말이다. 옛 고사에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라는 경구(警句)가 있듯이 의심받을 짓은 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공직자다. 부안군은 우연일 뿐, 조금의 의혹도 없다며 합격자들은 정당한 시험을 통해 뽑혔고 어떠한 특혜나 차별도 없었다.”라고 해명했다고 부안뉴스는 전한다.

부안뉴스는 기사 끝에 지난해 12월에 채용한 청원경찰 인사에서도 인사계장 친구를 채용하여 특혜의혹이 있었고 일각에서는 문제 유출 등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어째서 부안군이 채용하는 청원경찰은 모두 공무원들과 끈이 닿아있을까? 이번 청경 채용에 응시해 낙방한 나머지 36명은 과연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관련자들은 생각해보았을까?

어딘지 냄새가 나는, 하지만 이것이라고 근거를 제시할 수는 없는 공직자 관련 사안을 보며 씁쓸한 현실의 벽을 느낀다. 마치 현대판 음서(蔭敍)제도처럼 느껴지는 채용결과에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 생각했다. 그러면서 요즘 공직자들의 두둑한 배짱을 생각했다. 의심을 받든, 주인인 국민이 불편하게 생각하든 거리낌 없는 태도를 어찌할 꼬.

 

가난한 기자를 능멸(凌蔑)한 임실군의원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4일 임실군의회 행정감사특별위원회가 임실군 기획감사실에 대한 행정사무감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특위 위원인 김왕중 의원이 군정홍보비 집행 금액이 언론사마다 다르다는 걸 지적하면서 평등하게 집행할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이어서 군 관계자에게 기자들이 가난하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에 아무 답변이 없자 다시 기자들은 가난한 직업이지 않느냐라고 재차 물어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부자인지 모르지만, 그의 마음은 퍽 가난해 보인다.

김 의원의 질문에 현장에 있던 출입 기자들은 일순, 부끄럽고 화가 났다고 한다. 뭔가 얻으러 다니는 사람,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현실이 부끄러웠다는 말이다. 그리고 기자들을 싸잡아 가난한 직업이라고 단정한 대목에서 화가 났다고 했다. 어려운 지역지 기자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하면서 분노가 일었다고 한다. 기자는 시골 군의원 따위가 능멸할 만큼 하찮은 직업이 아니다.

가난이 죄가 아니던 시절의 기자는 맹물만 먹고도 이빨을 쑤시는 기개로 살았다. 온갖 불의와 부패가 만연하던 시절, 타협하지 않고 그 사실을 지면에 실어 나라의 법과 제도를 고치게 했고 국민 여론을 일으켜 정권을 바꾸기도 했다. 오늘도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을 비롯한 모든 세상사에 기자의 눈이 있다.

지역신문 지사를 운영하랴, 기사를 찾으랴 애쓰는 그들을 가난이라는 불편한 이름으로 싸잡은 군의원이 얼마나 대단한 자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인물이라면 오래지 않아 부끄러운 이름으로 지면에 오르내리지 않을까 짐작한다. 기자는 가난해야 기사를 자주 쓸 수 있다. 상인이 가난한 건 부끄러울 수 있지만, 기자는 가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군의원이라는 공직을 맡은 자가 행정감사 석상에서 공공연히 기자를 얻으러 다니는 거지쯤으로 몰아가려 한 짓은 용납할 수 없는 폭언이고 능멸이다. 아직도 뭔가를 쓰고 싶어서 세상을 들여다보고 이런저런 시비와 대안을 구하는 필자도 그의 말대로 가난하다. 그러나 내 이익을 위해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가난해도 그냥 기자로 살다가 죽는 게 기자의 본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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