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전북, 누가 깨우나? (2)
잠든 전북, 누가 깨우나? (2)
  • 신영배
  • 승인 2020.11.2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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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대표
신영배 대표

지난주 깊은 잠에 빠진 전라북도를 깨우기 위해서는 유권자가 먼저 깨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한 말이었는데, 독자 여러분께서 크게 공감하시고 관심을 가져주셨다. 많은 시민이 전북의 오늘을 걱정하고 새로운 일꾼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 퍽 흐뭇했다. 

아직 우리에게도 희망이라는 작은 불씨가 있다는 반증으로 생각된다. 마침 새만금 내 동서를 연결하는 도로가 개통됐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전북은 '녹두밭 윗머리'여서 척박하고 무얼 심어도 안 되는 땅으로 버려진 채 60년을 견뎠다. 이제라도 가득히 자란 잡초들을 베어내 퇴비로 넣고 땀을 흘려 비옥한 땅으로 만들어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새롭게 인식한다. 자포자기 속에 안일한 나날을 보내던 지난 세월은 잊고 모두가 깨어나 치열하게 땀흘리며 옥토(沃土)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깨어나야 한다. 누가 일꾼이고 누가 제 속만 챙기는 모리배인지를 가려내는 지혜와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자. 습관처럼 특정정당에 몰아주던 표를 아까워할 줄 알아야, 좋은 일꾼을 찾는다. ‘남이 갓 쓰고 장에 가니 나도 뚝배기 쓰고 따라가는그런 투표행위가 오늘의 전북을 황폐한 땅으로 만들었다.

우연히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 피어>를 읽었다. 나 하나 꽃 피어/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말하지 말아라/네가 꽃피고 내가 꽃피면/결국 풀밭이 온통/꽃밭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후략~

나 혼자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고 지레 포기하지 않아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나 한 사람이 바뀌면 너도 바뀌고 그도 바뀌어 모두 바뀔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세상임을 새롭게 인식하고 나 먼저 달라지는 노력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지방자치를 말려 죽이는 정당공천제

지역주의가 만연한 우리 정치풍토에 국회와 정당의 이기주의가 야합(野合)해 낳은 사생아가 기초자치단체와 의회에 대한 정당의 공천이다.  정치의 기초가 튼실해야 유능한 인재가 길러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초를 허물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불쏘시개로 삼은 악법이 바로 정당의 공천 제도다.

지난 시절, 할 일 없이 정당 주변에서 흘끔거리며 눈치를 보다가 은근슬쩍 끼어들어 당원이 된 후 중심인물의 눈에 들면 기초의원이나 단체장 후보로 공천을 받던 하향식 공천제도가 있었다. 선거 때마다 하향식 공천제도의 모순과 후휴증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그 하향식 공천제도가 세월이 흘러 상향식 공천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상향식 공천 또한 지역위원장의 의중에 따라 가장 큰 패거리의 지지를 확보한 인물이 공천을 받았다. 개인의 능력이나 적합성 여부를 생각하지 않고 당원의 머릿수를 많이 확보하면, 지역 위원장 지지 세력의 지원을 받으면 공천은 떼놓은 당상이다상향식 공천의 꼼수는 갈수록 특화 및 진화를 거듭했다. 결국 지방자치는 지역의 패거리 정치꾼들이 쥐락펴락하는 뒷골목 정치로 전락했다.

자연스럽게 정당의 지역위원장 중심으로 지방정치가 흘러가면서 지역마다 토호(土豪)세력이 자리를 잡았다. 그들끼리 나눠 먹다가 가끔 치고받는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그들은 늘 지역의 제반사에 간섭하며 타인의 개입을 용납하지 않았다. 당연히 유능한 인재가 키워질 수 없는 정치풍토와 선거 때마다 얼굴을 파는 그들끼리 돌아가며 해 먹는못 된 풍토가 조성됐다. 

상향식이든 하향식이든 기초자치단체와 기초의회에 정당이 개입하는 정당공천이 존속하는 한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살아남을 수 없다. 입으로만 풀뿌리 민주주의이고 실제는 주민자치에서부터 정당이 개입해 좌지우지하는 정당 독재와 다름없다정당이 공천제를 고수하는 한, 지방자치는 완성될 수 없는 구조다.

주인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연일 300명을 넘어서는 요즘이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눈만 내놓고 있으니 누가 누구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눈만 보여도 우리는 알아볼 사람은 다 알아본다. 얼굴 대부분을 감추어도 윤곽이나 체형, 뒷모습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갖가지 위장으로 본성을 감추어도 냉정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과연 그가 우리와 전북을 위해 일할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랜 선거의 흐름대로 특정정당 깃발만 꽂아 놓아도 그 깃발에 표를 주었다. 그 깃발을 든 자가 누구인지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묻지마 투표가 우리에게 준 건 전국 최하위의 경제 점유율과 부끄러움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가 달라지지 않으면 전북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찍는 한 표, 한 표가 모여 열표, 백표, 천표가 된다. 앞에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 피어>가 말하듯 나 한 사람이 달라져야 네가 달라지고 그가 달라질 수 있다. 달라지는 건 결코 나 하나가 아니다. 내가 달라져야 남도 달라진다.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을 알아보듯 가려진 뒤쪽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면 언제 어떻게 보이스 피싱처럼 교묘한 꾐에 속아 넘어갈지 모른다. 세력이 흔드는 깃발만 볼 게 아니라 그 깃발을 흔드는 자의 얼굴과 본바탕을 보아야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하찮은 사기 수법에 넘어가 내 통장의 재산을 선뜻 내주는 어리석은 투표는 이제 그만하자.

최근에 도내 여러 기초의회에서 차마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일들이 연이어 터졌다. 후반기 의장단과 원 구성을 둘러싼 특정정당 지역위원회의 개입으로 여러 시군 의회가 파탄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지방자치를 뿌리째 흔드는 이런 사태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오늘의 책임은 표를 일방적으로 특정정당에 몰아준 우리에게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정당이 어떤 짓을 해도 표가 몰려드니 아무 거리낌 없이 지방자치 독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잘못하면 혼난다는 두려움이 없으니 제멋대로 흔들고 부수는 행패를 거듭한다.

우리가 달라져야 잠든 전북을 깨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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