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방언사전에서 본 용역의 허실
전북 방언사전에서 본 용역의 허실
  • 전주일보
  • 승인 2020.11.1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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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가 야심차게 제작한 방언사전이 부실하게 제작되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11일 열린 전북도의회 문화체육관광국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 이병도 의원은 전북도가 전국 최초로 추진한 방언사전 편찬 및 발간사업이 상식 이하의 부실용역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방언사전에 실린 단어가운데 벤또, 구루마, 공고리, 빵꾸 등 일제 잔재 용어를 전라도 사투리라고 올려놓았는가 하면, 멀쩡한 표준어를 지역사투리라고 했고, 통용하는 한자용어까지 모두 지역 사투리라고 사전에 올렸다고 지적했다.

설마 그랬으랴 싶어서 문제의 방언사전을 찾아 확인해보니 이 의원의 지적은 틀림이 없었다. 훌륭한 사전용지에 멋지게 만들어놓은 사전이다. 3억 원을 들여 만들었다는 그 두툼한 책이 없느니만 못한 쓰레기로 밝혀진 것이다. 전북도는 문제의 사전을 모두 수거하여 폐기처분한다고 발표했다.

사전을 만드는 용역을 누가 맡아서 제작했는지 정확한 계약사항은 알 수 없었지만, 책임 감수를 담당한 대학교수와 국립국어원 담당자의 이름이 나와 있고 전북대와 전주대 교수와 연구원 보조원의 이름이 책머리에 모두 나와 있었다. 전북도와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용역 계약을 하고 사전을 제작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책임을 지고 사전을 만들어 책이 나올 때까지 용역 결과에 대해 알 수 없었고 그것이 부실한지 여부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는 데 있다. 뒤늦게 사전이 부실하게 만들어진 사실이 밝혀졌지만, 용역 당사자가 그 잘못을 책임질 어떠한 안전핀이 없다.

요즘 행정의 특징은 이미 법제화된 사업을 집행하면서도 판단이 까다로우면 용역을 맡겨서 공무원이 그 책임을 지지 않는다. 상당수 용역은 그처럼 면피용으로 시행되고 있다. 잘하면 단체장의 공로이고 잘못되면 용역의 부실이다.

대개 용역은 대학의 연구소나 전문기관들이 맡아 진행하기 때문에 그 결과가 잘 되었는지 여부를 판정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그저 용역 결과에 따라 행정의 방향이 정해지거나, 사업의 타당성 판단을 하게 되므로 용역 결과물에 대한 책임은 막중하다.

그럼에도 자치단체에서 용역을 맡기면서 결과를 사전에 제사하여 결론을 내도록 용역을 맡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책임을 면하기 위해 예산을 들여 용역을 맡기고 사업이 잘못되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 만연하는 것이다.

용역비는 그럭저럭 비용 지불 근거만 만들어내면 결산이 되므로 과소 여부를 알 길도 없다. 눈 먼 용역비와 책임질 사람이 없는 용역 결과라는 야릇한 상관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걸핏하면 용역을 맡겨 책임을 회피하는 일은 없어야 하고, 용역에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계약조항이 반드시 들어있도록 하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

3억 원을 날린 전라북도 방언사전의 결과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애먼 담당 공무원에 눈을 부라리지 말고 책임자와 계약 당사자들이 분명한 책임한계를 가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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