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봐, 해봤어?
이 봐, 해봤어?
  • 전주일보
  • 승인 2020.10.2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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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문 광 섭/ 수필가
문 광 섭/ 수필가

정주영 전)현대그룹회장의 어록 가운데 이 봐, 해봤어?’는 정 회장의 대명사로 회자되어 쓰이는 말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 어렵다고 주장하는 부하들에게 이 한마디가 부하들의 도전정신을 자극하여 성공하는 활력소로 작용하였다.

최근에 어느 기관에서 기업인의 최고 어록을 경영자 78명에게 조사했더니 이 어귀가 1위로 선정되었다는 보도를 접하고, 문득 40여년의 스카우트 생활을 통해 실천했던 가 봤어요?’를 소개하고자 붓을 들었다.

 

내가 젊었던 시절, ‘정주영 회장(1915~2001)’의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읽고 어려운 문제에 부닥트릴 때마다 떠올리며 용기를 냈었다. 1984, 서산 간척지 270m 물막이 공사가 초속 8m의 급류 때문에 난관에 부닥치자, ‘그러면 거센 물살을 잠재우는 방법을 쓰면 되겠네.’ 라며 332m 길이의 폐 유조선을 끌어오라고 지시하고, 유조선에 바닷물을 채워서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물막이 공사를 마무리한 탁월한 착상에 세계가 주목했었다.

 

정주영 회장을 꼭 닮은 분이 1970~ 80년대 보이스카우트전북연맹의 최도철 훈육위원장(1920~1990)’이시다. 이 분께 지도자기본훈련을 받으며 언행에서 오는 무게와 리더십, 정신력, 실력 등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한마디로 고양이 앞에 생쥐처럼 함부로 운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엄격하셨다. 이후, 서울에서 상급과정을 수료하고 내려와 각 종 훈련에 봉사할 때다. 이분이 훈련 코스대장이면 언제나 강사들에게 가 봤어요?’라는 질문을 자주하는 걸 보았다.

1982, 우드배지 상급훈련의 시설강사로 봉사할 때다. 점심시간에 문 강사님, 가 봤어요?” 라고 물으셨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몰라서 어리둥절하다가 야간에 수영장에서 선서식에 사용할 고무 튜브를 구하러 타이어 수리 점에 다녀왔냐는 확인임을 알아차렸다. 오후에 가려던 참인데, 벌써 확인에 들어간 것이었다. 더구나 내가 유일하게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던 시절이라 내게 임무를 부여했었다. 밥이고 뭐고 쏜살같이 뛰쳐나가 구해 와서 위기를 넘겼다.

1983년 여름이다. 이 땐 소년대 상급훈련의 도반장으로 봉사할 때다. 코스대장은 지도와 나침반을 담당한 W강사에게 1박 야영코스를 답사하고, 지도에 포인트를 찍도록 했다. 한데, 작년에 갔었던 기억만 믿고, 포인트를 머리로 굴려서 찍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중요한 지점에서 돌발사고가 났다. 더구나 A급 지도자가 담당한데다, 엄격한 훈육위원장의 성격상 그냥 넘어갈 리가 없어 난리가 났었다. 그 뒤부터 나는 현지 사전답사를 반드시 실천하고 있다.

청소년들을 데리고 소풍을 가거나 1박 야영행사를 할 때면, 먹고 놀고 자고 싸는 것까지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지도자는 가는 곳의 사전답사와 현장을 세심하게 돌아봐야하고, 물놀이도 포함 된다면 깊이와 수질 등 꼼꼼히 살펴서 안전과 위생까지를 생각해야 한다. 설령 자주 갔었던 곳이나 잘 아는 장소라도 반드시 사전에 다녀오고 확인해야 하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세밀한 것까지 챙기고 살핀다는 점이다.

 

새만금에서 20238월에 제25회 세계 잼버리가 열릴 예정이다. 5만 명의 대원과 지도자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청소년들의 축제다. 지금 천혜의 여건을 갖춘 새만금의 광활한 부지에 영지를 조성하고 있다. 접근하는 도로를 비롯한 기반 시설도 함께 이루어 질 것이다. 문제는 이 행사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이 일시에 자고 먹고 활동 장으로 이동하며, 프로그램을 통하여 배우고 즐기면서 세계 청소년들이 우정을 나누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세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지난 40여 년간 스카우트 지도자로서 대단위 야영행사나 국제행사를 치르면서도 항상 최도철 훈육위원장을 떠올리며 기획하고 준비했다. 이분 생전에 상급훈련 때마다 도반장(진행)이나 야영반장으로 봉사를 많이 한 까닭은, 항상 현장을 가보는 철저함에서 비롯되었기에 코스대장의 신임과 동료 지도자들로부터 부러움을 받기일쑤였다. 나의 고집스런 철저함은 뒷날 전북연맹 훈육위원장자리에 올라 야영행사시 안전사고가 없었던 것도 모두 이분의 덕이다.

 

행사장소를 사전에 답사하는 습관은 복지관 꽃밭수필문학회문학기행이나 성당의 노인친목단체인 요셉회나들이 행사에도 여전히 지켜진다. 그러니 행사 일정도 세밀하게 짜여 지고, 진행도 빈틈없이 이루어진다. 회원들이 탄복하는 건, 두 시간도 더 걸리는 곳까지 사전답사를 가는 일이고, 식사예약과 볼거리, 휴식장소 등을 꼼꼼히 챙기는 수고로움이다. 비용도 드는데다 하루 품을 허비하는 번거로움을 봉사로 치부하는 것에 대해서도 미안해하는 듯했다.

요즘 각종 안전사고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것이거나 책임자의 불감증에서 발생하고 있다. 사전에 대비해도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는데, 현지를 가보지도 않고 탁상행정으로 사고를 방관하는 것이다.

오늘날 자동차, 조선, 건설기계 등 현대의 눈부신 발전은 정주영 회장의 경험철학에서 나온 신념과 도전정신, 창의력으로 이뤄졌기에 되새겨 보았고, 또한 최도철 훈육위원장의 가 봤어요?’도 떠올려 보았다.

 

두 분 모두 자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했고, 큰 족적도 남겼다. 또한 기본 원칙에 충실했으며, 솔선하는 지도자의 공통점을 깨닫는다. 우리 모두가 기본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사회가 되었으면 싶은데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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