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호의 독후감 –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오구라 기조 지음)
최영호의 독후감 –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오구라 기조 지음)
  • 전주일보
  • 승인 2020.10.0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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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번영에도 불구‘하나’의 철학에 사로잡혀 스스로 불행하다 여기고 있다는 점을 돌아봐야
최영호 변호사 -법무법인 모악
최영호 변호사 -법무법인 모악

한국에서 한국 철학을 공부한 일본인인 저자가 현대 한국과 한국인을 성리학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한국에 관한 ‘책’임에도 1998년에 일본에서 출간했지만, 2017년이 되어서야 한국에서 번역본을 볼 수 있게 됐다.

이 책이 한국인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한일관계를 다루고 있기에, 역자는 수많은 일본어 문서 번역 중에 이 책처럼 조심스러웠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저자는 한국을 ‘도덕 지향성 국가’라고 설명한다. 드라마를 보면 일본은 헤어지며 ‘왠지 당신하고 더 이상 안 될 것 같아’라고 하지만, 한국은 ‘당신은 이런 이유로 잘못됐고, 그래서 나는 당신과 헤어지지 않을 수 없어’라고 설명한다고 한다. 사랑에서 도덕적 당위를 찾는 것이 한국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도덕은 낡고 봉건적인 반면, 한국은 도덕이 투쟁의 도구로 청춘의 폭발력의 원천이 되어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체제를 수립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보았다.

그 보편적인 도덕이 성리학의 ‘리’가 되고, ‘리’라는 보편의 운동을 거머쥔 자가 양반이 되어 도덕과 권력과 부를 거머쥔다.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다를 바 없다.

저자는 이렇게 성리학의 ‘리기론’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외교 및 한국인의 생활까지, 한국과 한국인을 해부한다.

여기에 저자는 한일관계를 덧붙인다. 한일관계는 한국은 역사에 당위를 불어넣어 가상의 도덕적 역사를 만들고 법의 원리를 위반하더라도 도덕적 역사관에 합치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한국은 한일합방 조약 자체가 무효라며 법률적 논의보다 식민지배는 잘못된 역사고 이를 바로잡으면 안된다며 이상적 역사를 바로세우려 한다. 이러한 한국인의 반일 감정은 ‘리’며, ‘리’를 거머쥔 반일감정에 대해 다양한 언설은 결여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20년이 넘은 저자의 전망처럼, 2019년 한일무역분쟁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갈등에서 시작됐다.

한국의 강력한 ‘리’를 이루는 ‘반일’에 관한 독후감을 쓰려 하니 필자 역시 조심스러워진다.

2019년 7월 한일무역분쟁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양국의 해석 차이가 불러왔다. 자세한 양국의 입장과 견해는 있지만 필자가 간단히 보기엔 우리는 협약의 문언을 ‘불법적 식민지배’라는 도덕으로 뒤집으려 했다. 그러한 우리의 방식이 옳고 그른지,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등의 판단은 유보한다.

이러한 우리의 방식은 당연히 일본의 반발을 부른다. 일본은 국내산업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핵심 소재의 수출을 규제했다. 일본은 종전의 한국, 미국, 일본을 묶은 동북아 안보, 경제 협력 체제에서 더 이상 한국과 함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우리와 일본이 얼마든지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이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는 행보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대통령은 충무공의 12척의 배를 말하고, 민정수석은 죽창가를 불렀으며, 여당은 한일관계 악화가 총선에 긍정적이라고 전망했다. 권력은 국민에게 내재된 반일 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자신의 일제 차를 부수었고, 유니클로 매장에 손님이 들어가는지 확인했으며, 일식집 출입과 일본여행을 막았다. 심지어 국립공원의 나무가 일본 종이라고 비판했다.

위안부를 민족의 순결한 딸이라는 상징을 벗어나 다른 해석을 한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는 형사재판을 받았고, 그 책은 일부가 삭제됐다. 일본과 역사라면 학문적 해석마저 불허하듯이 한일무역분쟁 이후 이견을 불허한 광기의 1년이 지나갔지만, 일본과 과연 전쟁을 하긴 한 것인지, 협력과 발전이란 과제를 져버린 우리에게 남은 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 주는 시사점은 한일관계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한국이라는 사회가 왜 이토록 살기 힘든가, 왜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 한국은 중앙과 도덕, 권력이 ‘하나’의 지향점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향은, 학력은, 직업은, 우리는 계속 서열을 나누고, 이를 ‘님’과 ‘놈’으로 분류한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님’을 향한 상승의 경쟁과 ‘놈’으로의 전락에 대한 압력이 가혹한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분명 성장과 번영을 했지만, ‘하나’의 철학에 사로잡혀 스스로 불행하다 여기는 출산율 0.9명의 나라가 되었다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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