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빌어먹을 세상’을 견디며
‘참 빌어먹을 세상’을 견디며
  • 전주일보
  • 승인 2020.09.1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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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 고 운/수필가
김 고 운/수필가

잦아들만하면 다시 고개를 드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숫자에 진절머리를 흔들지만, 이 또한 내 삶의 한 과정이라고 치부하며 오늘도 마음을 다독인다. 우주를 지배할 듯 덤비던 잘난 인간들이 어쩌다가 눈에 뵈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겁먹었을까? 잘난 놈이나 못난 놈이나, 권력을 가진 놈이나 약자나, 부자나 가난한자나 모두 바이러스에는 한 수 접어주고 꼬리를 만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처음 퍼져갈 때, 지구촌 건달 두목 같던 미국의 트럼프가 유행성 독감 정도에 겁먹지 않는다고 뱃심을 부렸다. 그러다가 915일 현재 세계에서 2,900만 명 넘는 확진자가 나오고 사망자는 93만 명을 넘어섰다. 미국은 확진자가 660만 명을 넘고 사망자는20만 명 이상으로 치솟았다. 50개주가 재난지역으로 선포되는 이변이 진행형이다.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세계를 쥐락펴락하던 미국이 하찮은 바이러스를 어찌하지 못해 허둥댈 줄 누가 알았던가?

바이러스를 옮기는 침방울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니 너도나도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리고 다니는 풍경이 이제 정상이다. 외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얼굴을 보면 불쾌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보인다. 오독한 콧날, 앵두 같은 입술의 단순호치(丹脣皓齒)도 마스크에 가려 보이지 않으니 나처럼 늙어 못나고 쭈그러든 얼굴도 살만하다. 나름 제 딴에는 예쁘다고 뽐내며 살던 여자들은 요즘 덕지덕지 바르지 못하고 그 예쁜 자랑을 하지 못해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모두 조심하고 슬기롭게 대처하면 좋으련만, 아직도 설마를 믿고 설치는 인간들이 있으니 바이러스 감염자 수가 줄지 않는다. 나만 괜찮으면 된다거나, 나는 젊고 건강하니 걸려도 쉽게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마스크도 벗고 좁은 공간에서 까부는 인간이야 말로 이 시대의 적이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로 인해 수십 수백 명이 감염될 수 있음을 생각지 않는 이기적 인간,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격이 없는 자들을 단번에 쓰러트릴 바이러스라도 등장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런 시련을 겪는 이유도 우리 스스로 자연을 파괴하면서 동물들의 개체를 줄여서 바이러스가 깃들 숙주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동물 사이를 넘나들며 동물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역할을 해 온 바이러스가 동물이 줄자 인간에게 넘어와 인간의 개체를 줄이기 위해 점차 강하게 변이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인간이 최상위포식자가 되어 자연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데 대한 자연의 응징이라는 것이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 세계에서 가장 춥다는 벨호얀스크의 기온이 38를 넘는 사례가 나오고 폭우가 무섭게 쏟아져 인명이 희생되는 자연재해도 잇따르고 있다. 바다에는 비닐과 프라스틱이 점점 불어나 바다생물들이 죽고 오염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바닷물 수위가 높아져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점점 물속으로 들어가 인류의 유산이 훼손되고 있는 것도 인간의 잘못 때문이다.

최근에 이런 자연 현상을 자각하고 자연을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과 설득하는 운동을 벌이는 사람이 늘고 있다. 비로소 자연에 대한 경외와 인간이라는 존재가 함부로 파괴하고 주무를 대상이 아니라는 걸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돈 있고 힘이 있는데 자연에 겁먹을 거 없다는 인식을 하는 인간들이 문제다.

다시 그의 이야기를 들먹이는 게 화가 나지만, 그런 인간들 때문에 우리가 고생하고 있으니 어쩌랴.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기후협약에서 탈퇴하고 환태평양 동반자 협정(TPP)도 말 한 마디로 탈퇴해 일본을 비롯한 협정국들은 뻘쭘하다. 지난번에는 세계보건기구(WHO) 탈퇴를 정식으로 유엔에 통보했다. 장삿속으로 계산해서 실익이 없거나, 비위에 맞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결정해 국제간 협의를 휴지 쪽으로 만드는 이기주의 덩어리가 트럼프다. 힘이 있으니 그런 행동에도 나서서 말하는 나라가 없다.

조금 우월한 지위나 형편을 이용하여 낮은 쪽의 사람들을 어렵게 하고 그들로부터 뭔가를 뺏으려하는 동네깡패 같은 자들 덕분에 자연이 파괴되어 시련을 당한다. 낮은 자리에서 허덕이며 고통당하는 자들이 죽는 일이야 관심 밖이다. 내 배가 부르고 내가 즐거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그들이 달라져야 인류가 산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남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이치를 깨우쳐야 인류멸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 가까이 오는 게 겁나는 세상에서 남을 생각하고 남에게 좋은 일을 생각한다는 말이 우습다.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고약한 바이러스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다. 더는 바이러스가 두렵지 않아야 타인과 가까이 할 수 있을 터이지만, 백신이라는 것도 효과가 미지수이다. 우리나라 완치자 가운데 항체가 생긴 사람이 단 한사람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에 모골이 송연(悚然)하다. 병을 앓아도 항체가 생기지 않는데 백신에 항체가 만들어지겠는가 싶으니 걱정인 것이다.

집안에 가만히 있는 사람 외에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사람은 없다. 헬스장에서 직접 접촉하지 않았어도 한 공간에서 운동만 했는데 감염되었다는 사례, 엘리베이터에 몇 초 동안 같이 있었는데도 감염되는 무서운 바이러스를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더구나 요즘 새로 변이한 바이러스는 빠르게 번식하고 침투하는 능력이 탁월하여 앞으로 더 많은 감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추석을 앞두고 또 얼마나 많은 확진자가 나올지 미리 걱정이 되고 기껏 밤에 걷기운동으로 이 지루한 코로나블루를 견디려니 죽을 맛이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는 지옥이라도 좋으니 아프지 않고 견디는 나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늦은 저녁밥을 먹고 운동화를 조르며 집을 나서 본다. 세상살이의 의미가 자꾸만 시시해져서 이러다가 아주 끈을 놓아버리고 싶어질까 두렵기도 하다.

참 빌어먹을 세상이다.

 

김고운/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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