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마사(牛生馬死)
우생마사(牛生馬死)
  • 전주일보
  • 승인 2020.09.1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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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문 광 섭/ 수필가
문 광 섭/ 수필가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장맛비가 그칠 줄 모른다. 방송에선 오늘까지 48일째 내려 타이기록을 세웠다고 했다. 내일 전북과 충청지역에 호우경보가 발령되었다며 기록 경신을 예고했다. 비는 다음 주 초까지 이어질 거라 하니 신기록 작성은 무난할 것 같다. 한데, 코로나로 반년 가까이 홍역을 치르는 와중에 장맛비까지 겹치니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섬진강 제방이 터져 동네와 전답이 물속에 잠기고 산사태로 날벼락을 맞는 등 나라 안이 난리가 났는데, TV만 보고 있자니 안타깝고, 아직도 네 탓만 하는 위정자들을 보자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TV 채널을 돌리니, 소가 지붕 위에 올라가 있거나 마을에서 500m 거리의 산 중턱 사찰 마당에 여덟 마리나 몰려가 있는 모습도 나왔다. 그런가하면 물에 잠긴 축사를 뛰쳐나와 돌아다니거나 헤엄쳐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문득, 어릴 적 홍수가 나서 앞동산으로 피난해 물에 잠긴 동네를 내려다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때가 떠올랐다. 그 때도 하천이 무너지고 범람하니 어디가 제방이고 농경지 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때, 하천에 떠내려가는 황소를 목격하고 소리를 지르며 안타까워했다. 그때 어머니께선 소는 죽지 않는다며 걱정 말라고 나를 다독이셨다. 저 산모퉁이 쯤 돌아가면 강변으로 나와 있을 거라 하셨다. 다음 날 들었는데 그대로였다. 그 당시는 왜 살 수 있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또한 연유를 묻지도 못했다. 힘이 세고 수영을 잘 하는 걸로만 짐작했다. 훗날, 역사를 전공하시는 K교수를 따라 진안군 주천면에 있는 운일암반일암으로 산행 겸 피서를 갔었다. 황소가 깊은 내를 유유히 헤엄쳐 건너는 걸 보고 교수님께 여쭈어 보았다.

 

우생마사(牛生馬死)라고 운을 떼셨다. 홍수가 나서 물살이 가파르면 소는 사는데 말은 죽는다는 것이었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 재차 까닭을 여쭸더니 말씀이 길어졌다. 저수지나 물결이 잔잔한 냇가에서 소와 말을 건너가도록 하면, 말이 두 배나 빠른 걸음으로 먼저 간다는 것이다. 한데, 홍수가 나거나 물살이 거세면 상황이 바뀐다고 했다. 말은 직선방향으로 건너고자 앞으로만 내딛기에 물살에 떠밀리면, 다시 물살을 거슬러가려고 만하기 때문에 얼마 못가서 지쳐서 익사(溺死)한다고 했다. 반면에 소는 물에 떠밀리면서도 물살의 흐름을 타고서 가다가 조금씩 대각선 방향으로 나간다고 했다. 그렇게 1~2Km거리쯤 헤엄치다 보면, 건너편 모래바닥에 닿아 거센 물길도 무사히 건넌다는 것이었다.

 

이 설명엔 내 귀가 번쩍 띄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경험해보았던 떠내려가며 수영했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초등학교 4~5학년 때지 싶다. 여름 날 토요일 오후에 집에서 2Km쯤 떨어진 북실 마을 친척집으로 놀러갔는데, 장대비가 밤새 쏟아졌다. 갑자기 냇물이 엄청나게 불어 섶 다리가 떠내려가는 바람에 사람들이 오갈 수가 없게 되었다. 일요일 오후까진 내를 건너야 학교를 가는데, 다리가 없어 갈 수도 없으니 나로선 처음 겪는 일이라 눈물로 밤을 지새다시피했다. 숙제도 안했지 책가방도 없지, 온갖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일요일 오후에 비가 개서 물이 빠지면 월요일 아침엔 갈수도 있다는 어른들의 격려로 지루한 하룻밤을 또 한 번 보냈다. 하지만, 새벽녘에 어른들의 한숨소리에 겁에 질렸다. 성질 급한 사람이 이른 새벽에 건너가려다 떠내려가는 바람에 난리가 났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아침밥이 모래를 씹는 것 마냥 목에 넘어가질 않았다. 그 시절엔 면소재지 사무소나 공공기관에만 전화기가 있던 시절이다. 연락할 수도 없으니, 건너편에 대고서 손짓과 고함으로 학교를 못 간다고 말을 전했다는 말로 위안을 삼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점심때쯤이었다. 헤엄만 칠 줄 알면 건널 수 있다는 다섯 살 위인 집안 형의 말에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서 따라나섰다. 형은 나를 데리고 높은 언덕으로 가서 물살을 가리켰다. 약간 물살이 센 곳에서 뛰어들어 물결에 따라 대각선 방향으로 헤엄치면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리곤 형이 내 겉옷과 자기 옷을 싸서 머리다 혁대로 고정시키고 뛰어들었다. 원래 그 곳은 가끔 수영도 했던 곳이었다. 다만 물이 깊고 물살이 센 것이 걱정이었지만, 형이 앞장서니 마음이 놓였다. 막상 물에 들어가 보니 물살이 생각보다 세었다. 그래도 물살 따라 조금씩 대각선으로 헤엄치니 어렵사리 건널 수가 있었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여러 차례 어려운 고비가 있었다. ()과 같이 곧바로 건너고자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듯 정공법을 택한 것은 매번 실패했다. 하지만, ()가 물살 따라 흘러가듯 돌아서 간 것은 고생은 심했어도 결과가 좋았다. 우리가 살면서 어려움이 닥치거나 힘든 상황일 때, 고비라는 물결을 거스르지 않고 때로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건너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안타까운 일도 있다. 축사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죽은 소가 많다는 보도가 있었다. 답답한 주인이 물이 축사위로 넘칠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소를 잃어버릴까 염려하여 나가지 못하게 막아놓은 탓일 게다. 우생마사의 이치를 몰라 생목숨을 죽였으니 어이할꼬.

반면에 구례에서 떠내려간 암소가 55Km나 떨어진 남해군의 무인도 난초도서 4일 만에 발견돼 극적으로 구조되었다는 보도엔 탄복을 금치 못한다. 더구나 임신한 몸으로 강과 바다를 헤엄쳐 건넌 끈기와 우직한 집념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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