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복구만으론 또 당한다.
수해, 복구만으론 또 당한다.
  • 전주일보
  • 승인 2020.08.1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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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물려 짓던 문전옥답을 누런 황톳물이 쓸어버린 앞에서 지겹도록 퍼붓는 빗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촌로(村老)의 마음이 되어 오늘의 치수(治水)를 생각한다. 평생 처음 만난 이 엄청난 장마,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를 지나도록 장마가 계속되더니 이번에는 태풍이 비를 몰고 와 하늘이 뚫린 것처럼 퍼붓고 있다.

여름 초입에 장마가 시작되면 간혹 된 비를 퍼붓기도 하지만, 한두 차례 휩쓸고 지나가면 장마가 끝나고 잠시 물에 잠겼던 벼이삭도 흙만 씻어주면 다시 활기를 찾았었다. 낮은 지역에 농토를 둔 이들은 이판사판으로 모내기를 하지만, 대개는 몰에 잠기다 말다 하여 가을에 추수를 할 수 있었다. 오늘처럼 끝없이 퍼붓고 개일 듯하다 다시 쏟아 붓는 비는 없었다.

더구나 문전옥답은 평생 한 번도 물에 잠긴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 알토란같던 논에 물이 차올라 벼 끄트머리도 보이지 않는다. 집 마당에도 물이 그득하고 댓돌 중단까지 물이 차올라 넘실거린다. 물이 더 불어날 수 있다며 급한 살림을 챙겨 대피하라고 이장이 찾아왔지만, 노인은 집 앞 논과 마을 앞을 덮어버린 흙탕물만 바라볼 뿐이다.

전국 곳곳에, 도내 곳곳에 이런 마음으로 망연자실한 이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 아픈 이들 앞에 국회의원이니 도지사, 군수가 나타나 위로한답시고 노란 점퍼차림으로 생색만 내고 다닌다. 아픈 마음을 위무(慰撫)하겠다는 뜻은 좋지만, 지금 피해를 당한 이들의 마음은 누가 뭐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재난지역으로 지정되어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이런 일이 앞으로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가시지 않으면 노인들의 말년에서 불안과 슬픔을 걷어내지 못한다. 수해복구랍시고 물 빠진 농토에서 작물을 일으켜 세우고 무너진 제방을 다시 쌓는 것으로 농토와 주민의 안전을 지킬 수는 없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지구기상 변화에 견딜 항구적이고 굳건한 치수 대책이 필요한 지금이다. 온실가스 배출로 지구 기온이 높아져 빙하가 녹고 대기의 순환 경로가 변했다. 장마전선이 북쪽의 고온에 막혀 온대지역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자꾸만 수증기가 유입되어 비를 쏟아 붓는 것이다.

지난날로 되돌려 복구해서는 얼마든지 다시 비슷한 양상의 수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엄청난 양의 물을 견딜 수 있도록 하천의 흐름을 빠르게 하고 모든 우수(雨水)관로를 넓히고, 곳곳에 인공 배수장치를 만들어 물이 고이지 않게 해야 한다. 저지대의 농토는 돋우거나 물이 차오르지 않을 시설을 해야 한다.

주거지역의 높이 기준도 바꾸어 침수피해를 당하지 않을 곳에만 건축허가가 되어야 한다. 해마다 수해가 나서 국가 재정이 허비되는 일이 없도록 모든 기준을 바꾸고 재연재해를 견딜 대책을 차분하게 마련할 때다. 다시 말하지만 원상복구는 의미 없는 낭비가 될 뿐이다. 더 높고 튼튼하게 고쳐나가지 않으면 우리가 자초한 자연 재앙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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