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대하여
밭에 대하여
  • 전주일보
  • 승인 2020.07.12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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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대밭에서 왕대가 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세요
천지사방을 둘러봐도 인간 왕대밭은 없습니다
밭은 갈고 뒤집고 가꾸면 밭입니다
참깨를 심으면 참깨가 납니다
고구마를 심으면 고구마를 캡니다
배추를 심으면 배추가 납니다
우리가 사는 일 또한
밭과 같아서
누구나 이 세상에 오면 하나의 밭입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밭이 되고
미움을 심으면 미움밭이 됩니다
건강을 심으면 건강밭이 되고
가난을 심으면 가난밭이 됩니다
만남을 심으면 만남밭이 되고
이별을 심으면 이별밭이 됩니다
심는 대로 거두고 거두는 대로 당신의 것 입니다
이제 용이 나는 개천은 없습니다
개천을 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언젠가는 여의주를 물고 승천할 것이라는
꿈을 꿔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삶은
아픈 가슴이고 시린 날들입니다
좌절과 눈물과 후회로 한 세상을 사는 것보다
꿈꾸는 자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마저 포기하면 삶은 캄캄합니다
이 세상 어디에 왕대밭이 없듯이
이 세상 어디에도
당신을 위해
비어 놓은 밭은 없습니다
딱딱거리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딱딱거립니다
징징거리는 사람은 하루의 삶이 지옥입니다
밭은
밭이기 때문에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씨를 뿌리기 때문에 밭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밭을 가꾸면
그것들은 돌아 돌아 결국은 밭으로 옵니다
그 밭은 바로 당신입니다

 

밭은 논처럼 물이 고이지 않는 경지다. 그러나 초지草地나 목야牧野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밭의 기원은 인류가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한 때부터 비롯되었다. 우리나라 밭의 형성과정은 화전火田으로 시작되어 휴한전休閑田을 거쳐 오늘날과 같이 해마다 농사를 짓는 숙전熟田이 되었다.

아버지의 밭은 보리밭, 고구마밭, 고추밭, 양파밭, 담배밭 등 대량으로 가꾸고 대량으로 생산했다. 그것은 가족들의 호구를 위해 아버지의 발들에 떨어진 절실한 불이었다. 이런 밭을 가꾸기 위해 아버지의 등은 늘 소금기로 쪄들었다.

아버지의 몸무게 팔 할은 소금이다. 이에 반하여 어머니의 밭은 채전이었다. 상추 조금, 아욱 조금, 실파 조금, 부추 조금, 조금씩 심어 조석으로 밥상에 올린다. 어머니 밭은 작으나 자식들의 입맛이고 어머니의 사랑이다.

아버지의 밭이 꼿꼿이 선 삽이라면 어머니의 밭은 허리 굽은 호미다. 아버지의 밭이나 어머니의 밭에서는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 밭이라는 말에는 아버지 냄새가 나고 어머니 냄새가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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