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 하얗게 핀 길
개망초 하얗게 핀 길
  • 전주일보
  • 승인 2020.06.18 16: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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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 영 숙/ 수필가
김 영 숙/ 수필가

관촌에서 임실까지 출퇴근하는 10분 남짓한 길에서 매일 만나는 들꽃이 있다. 물론 들꽃이야 수없이 많지만 유독 살갑게 다가오는 꽃이다. 안개처럼 들녘을 하얗게 수놓은 꽃,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지만 잡초라고 부르기엔 너무 미안하리만치 정겨운 들꽃, 바로 개망초꽃이다.

오늘 출근길에 보니 불현듯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생과 함께 부푼 꿈을 안고 언덕배기를 뛰어 내려가던 공길이의 뒷모습이 자꾸 기억나는 건 아마도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가 공길의 삶을 대변하는 것처럼 아련한 아픔이 느껴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남사당패의 광대 장생과 공길이 연산군과 그의 애첩인 녹수를 풍자하는 놀이판을 벌이던 중, 왕을 희롱한 죄로 의금부로 끌려갔다가 공길의 재기로 연산을 박장대소하게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들은 죄를 면하는 것은 물론이요, 왕의 연희를 담당하는 궁중 광대가 된다. 그러나 궁궐 안의 세력다툼에 휘말려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내용인데 이 영화를 본 후로 개망초꽃만 보면 공길이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개망초꽃이 그 시대에 존재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개망초꽃 흐드러진 들판을 배경으로 촬영한 것은 나의 견해로는 신의 한 수다.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흔들리며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발길에 채이고 밟히며 피고 지는 한 많은 민초의 눈물 같은 꽃이기 때문이다.

굳이 개망초와 망초로 구분하는 건 의미 없을 듯하다. 개망초꽃이 좀 더 크고 망초보다 한 달 정도 늦게 꽃이 핀다는 것 외에는 크게 다를 바 없다. 개망초가 망초보다 꽃이 더 크고 분홍색이 돌며 예쁜 편인데 왜 하필 개망초라고 했을까? 개란 접두사가 붙었을 때는 일반적으로 "무엇보다 못한" 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말이다. 망초든 개망초든 내게는 이래저래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꽃이다. 한때는 옥수수밭에서, 한때는 콩밭에서, 한때는 감자밭에서 5남매 자식들을 키워 내고 학비를 조달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던 비탈진 밭에서 한평생 김을 매시던 나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꽃이기도 하다.

망초는 해마다 김을 매도 이듬해면 어김없이 불청객처럼 돋아나는 끈질긴 생명령을 가졌다. 그런 망초를 어머니는 징글징글하다고 하셨다. 어릴 적 앙증맞은 꽃이 왜 하필 망초라는 이름을 가졌을까요? 라고 여쭈면 어머니는 농사를 망치니 망초지!” 한 움큼 망초를 뽑아 밭 가장자리에 던져놔도 여전히 환한 미소로 어김없이 일어난다며 그들의 생명력은 인정하셨다.

망초가 북미에서 들어온 두해살이풀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언제 들어온 것인지 정확한 기록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철도가 건설될 때 사용되는 철도 침목을 따라서 왔다고 하고 철길 따라 흰색 꽃이 핀 것을 보고 일본이 조선을 망하게 하려고 씨를 뿌렸다 하여 망국 초라고 부르다가 망초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망초는 망할 망()자가 아니라 우거질 망()자의 망초다. 잡초의 대명사다. 요즘은 휴 농경지가 늘면서 묵정밭 어디를 봐도 망초꽃은 걱정 없이 번식하고 꽃을 피우며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곡식들이 자라나야 할 옥토에 잡초들만 무성한 농촌의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허나 워낙 번식력이 좋아서 농부들의 골칫덩어리이긴 하지만, 추억을 떠올리고 향수를 느끼게 하는 정겨운 꽃이기도 하니 나는 눈치 없이 그냥 좋아한다.

그러나 꽃이냐? 잡초냐를 구분 짓는 것 또한 의미 없는 일 같다. 돌이켜보면, 망초가 한낱 잡초에 불과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봄에는 망초 어린잎을 뜯어 소금 한 수저 넣고 데친 후 숭덩숭덩 썰어 들기름과 된장 그리고 매실즙을 약간 넣어 무치고 마지막에 깨소금 솔솔 뿌려서 식탁에 올리면 그만한 밥도둑이 없었다. 배앓이 하면 어머니는 단방약으로 달여서 우리에게 먹이기도 했다. 또한, 어릴 적 소꿉놀이에서 망초꽃은 밥상 위의 단골 메뉴였다. 개망초꽃을 따서 납작한 돌 접시에 올려놓으면 먹음직한 계란 후라이가 완성되었다. 노란 통꽃은 노른자위요, 하얀 혀 꽃은 흰자위 같아서 어릴 때는 망초라는 이름보다는 계란 꽃으로 더 익숙했다.

산비탈의 망초처럼 잠시 나그네 눈길을 받을 뿐인 꽃, 그렇게 한 계절을 피워 내는 풀꽃들이 어디 망초뿐이겠냐 만, 온갖 정성을 다해 인위적으로 가꾸어 화려하게 피는 뜰 안의 꽃보다 소중하고 웅숭깊은 멋이 있다. 자연이 키우고 자연이 가꾸는 그 순수함에 눈길이 한 번 더 가고 더 애착이 가는 건 나이 탓만은 아니리라. 그 모진 생명력으로 번식하고 피워내는 야생화의 습성을 닮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면 어떠랴. 새끼손톱만 한 꽃송이한테 끌려서 날마다 기분 좋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 아닌가?

이름답지 않게 화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는 망초꽃이다. 뒤안길에서 조용히 피어도 온갖 핍박을 피할 길 없었던 잡초, 그래서 후미진 도랑에서부터 피어나던 꽃이 이제는 곡식이 자라야 할 밭에서도, 벼가 무럭무럭 자라야 할 논배미에도 군락을 이루고 당당하게 피어난다. 인간과도 오랜 다툼 끝에 화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서 아니면 제값 받지 못하는 작물 때문에 농사를 포기하든 잡초에 농토를 내줄 수밖에 없는 농촌의 이런저런 현실의 단면이라 여기니 마냥 좋다고 속내를 드러내기에는 착잡함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사는 것이 첩첩산중을 걷는 것만 같다가도, 희망 없는 척박한 땅에서 돋아나 하얀 웃음 짓는 개망초를 생각하면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런 용기를 얻는 나 같은 이가 많았으면 좋겠다. 아직은 활짝 꽃망울을 터트리고 그 자태를 뽐낸들 관심 두는 이보다는 눈총을 주는 쪽이 더 많지만, 그래도 무서리 내리는 초겨울까지 황량한 들판을 지키는 개망초,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나는 아직도 너를 좋아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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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초좋아 2020-06-29 14:01:02
요즘 핫한 꽃이던걸요 어디서나 만날수있는요. 매일봐도 글로 옮기지못하는 평민을 대신해주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