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문화관광재단 ‘新 축객령’ 유감
전북문화관광재단 ‘新 축객령’ 유감
  • 전주일보
  • 승인 2020.06.1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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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칼럼
이 현 재 /논설위원
이 현 재 /논설위원

전북문화관광재단 새 대표에 이기전 전주현대미술관장이 취임함으로써 온갖 잡음을 빚었던 재단 대표 장기 공백 사태가 일단락됐다. 이병천 전 대표의 후임 인선을 둘러싸고 무려 반년 가까이 진행됐던 혼선이다.

오랜 진통 끝에 출범한 전북문화관광 재단의 새 대표 체제가 문화로 싹트고 관광으로 꽃피는 전라북도를 내세우는 재단의 모토대로 얼마나 지역 문화 창달과 관광 진흥에 기여할 지는 앞으로 성과를 보고 평가할 일이다. 하지만 새 대표 선임 과정은 몇 가지 심각한 병리현상을 돌아보게 한다.

먼저 떠오르는 상념은 심화되고 있는 전북의 () 사회화현상이다. 재단 및 임원추천위원회의 핵심 관계자들이 사적 친분을 내세워 공적 대표를 선임하려는 태도는 개발경제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낙후사회에서 도드라진 연성화의 극치였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세칭 지역의 문화엘리트들이 인재의 기준을 지역인물로 한정하는 편협한 시각이다. 다수의 임원추천위원들이 적임자이며 일 할 사람이라고 평가했던 초기 추천 인물들이 전북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재단 이사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는 비단 문화계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전북사회에 만연된 폐단을 성찰하게 만든다. 전북도와 14개 시군을 통틀어 수많은 개방직 인사가 사적 친분을 고리로 이뤄지다보니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부유국으로 부상했지만 전북도민은 낙후지대에서 부유(浮游)하고 있다.

세계 각국과 도시들의 두뇌유치 경쟁은 전북의 폐쇄적인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한층 치열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인재가 한 나라와 지역, 도시의 흥망성쇠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인재들을 개방적으로 포용하는 곳은 번영을 구가하며 문화의 꽃을 피운 반면 그렇지 못한 곳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출신 지역 기준으로 재단한 인재

 

카렌 암스트롱은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까지 700년을 인류의 정신에 자양분이 된 위대한 철학적·종교적 전통이 태어났다며 그 시기를 <축의 시대>란 저서에 담아냈다. 눈여겨 볼 대목은 인류 정신과 문명을 가꾼 인물들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는 탈레스와 아리스토텔레스 등 주변 도시국가들의 철학자를 수용하고 여기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등 자신들이 배출한 천재들을 더해 사상을 꽃피웠고, 고대 중국 또한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이 이 국경을 넘나들며 온갖 사상과 부국의 기틀을 잉태했다.

출생 국적을 초월한 인재들이 꽃 피운 것은 사상과 철학, 종교뿐이 아니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편은 타국의 인재 기용에 여부에 따라 흥망을 달리한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이야기로 넘쳐난다.

오나라 부차를 도와 와신(臥薪) 끝에 월나라 부차에게 선친의 복수를 하고 패자로 우뚝 서게 한 주역들은 초나라 출신 오자서와 제나라 출신 손자였다. 부차가 상담(嘗膽)의 인고를 겪으며 되갚음하고 패업을 일굴 수 있게 한 것도 자국이 아니라 초나라 출신의 명재상 범려였다.

중원의 변경에 자리한 진나라가 중국 최초의 통일왕국을 이뤘던 근저에도 위앙, 범저, 채택, 소진, 여불위 등 타국 출신 인재들이 있었다. 그 진을 멸하고 두 번째 통일왕국 패권 싸움에서 한고조가 패왕 항우에게 승기를 잡은 것은 항우가 홀대한 명장 한신을 대장군에 임명한 데서 출발했다.

그러니 군주들은 출생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인재 영입에 열을 올렸다. ‘춘추 5중 최초의 패자인 제나라 환공은 집무실 앞뜰에 횃불을 24시간 내내 밝혀두고 누구든지 찾아와 능력을 증명하면 등용했다. 이른바 정료지광(庭燎之光이다.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는 공명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를 마다하지 않았고, 그 조조 또한 오로지 능력만 보는 '유재시거(惟才是擧)’의 정책으로 천하의 인재를 모았다.

오늘날 인재 유치 경쟁은 국가뿐만 아니라 도시 사이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는 인재 유치를 국가 프로젝트 과제로 설정한 중국이다. 1980년대 등샤오핑의 백인(百人)계획이래 후진타오의 천인(千人)계획과 시진핑의 만인(滿人)계획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청두시와 상하이 등 도시들이 가세해 중국을 세계의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만들고 있다.

글로벌 인재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초강국 미국도 마찬가지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3년 연두교서에서 두뇌유치를 이민 정책의 목표로 제시했다. 미국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실리콘밸리 기업의 절반 이상은 이민 온 외국 두뇌가 창업했고, 국제 특허도 1/4은 귀화한 이민자의 몫이다. 외국 두뇌 유입 효과는 미국에서 태어난 고졸 이상 시민 90% 이상이 임금 인상 혜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은 갈수록 두뇌 유출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두뇌유출지수199637개국 중 6, 201460개국 중 37, 201661개국 중 46위로 곤두박질 쳤다. 2017년엔 63개국 중 54위로 러시아 52, 루마니아 55, 그리스 57위와 비슷한 순위로 더 떨어졌다.

 

태산이 높고 바다가 깊은 이유

 

2010년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2020년 대한민국 전라북도. 한때 인구 170만 명으로 미국의 ‘4대 도시였던 디트로이트 인구의 58%가 줄어들어 100만 명을 잃었다. 중심가인 엘름허스트를 따라가면 11채의 단층 주택 중 4곳이 비어 있고, 아파트 2동 가운데 한 동은 입주자가 1/3도 안 되고 다른 한 동은 텅텅 비어 폐허 분위기를 낳고 있다. 그 모습 위에 전북 최고의 중심지였던 전주 관통로 사거리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네 곳의 코너 중 3곳에 임대 표지가 붙었다. 도시의 영고성쇠는 디트로이트뿐만 아니다. 미국의 10대 도시였던 곳들 중 8곳의 인구가 1950년도 이후 최소한 1/6 줄었다. 16대 도시 중 6곳의 인구는 절반 이상 줄었다.

<도시의 승리> 저자인 미국 하버드대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쇠퇴하는 도시를 부흥시키는 혁신의 관건으로 인재를 들고 있다. 도시의 재건 여부는 30년 전 구축한 인프라에 달렸는데 그 결정적인 요소가 인적 자원이라는 충고다.

글레이저의 조언에 2300년 전 진시황의 재상 이사의 목소리가 배음으로 증폭된다. 진시황이 축객령(逐客令)’을 내리려 하자 이사는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올렸다. ‘태산(太山)은 흙 한 줌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었고, 하해(河海)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으므로 그렇게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동서와 고금을 초월한 명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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