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逸脫)과 방종(放縱) 사이
일탈(逸脫)과 방종(放縱) 사이
  • 전주일보
  • 승인 2020.06.1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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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 편집고문
김 규 원/ 편집고문

코로나바이러스에 등골을 잡혀 허둥대는 지구촌 풍경이 한심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 인간을 숙주로 삼아 번식하겠다고 중국 우환에서 처음 나섰을 때, 힘깨나 쓴다는 미국의 트럼프는 까짓것정도로 치부하고 감기 같은 것이라고 우습게 여겼다. 그러다가 지금 미국은 세계 최대의 확진자와 사망자를 자랑(?)하는 넘버 원국가로 우뚝 섰다. 어쩌면 트럼프는 속으로 미국은 바이러스도 당연히 1등이지라고 흐뭇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라나 지역의 리더라는 자리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는 위치이므로 움직임 하나하나에 몇 번씩 생각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시선만 아니라 자칫 잘못 판단하거나 내뱉은 말이 영향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공인(公人)이라는 칭호를 붙인다. 보통 사람은 그런 시선과 책임이 싫어서 공인의 신분을 기피한다.

선출직 공직에 나서는 사람은 그런 시선과 책임이라는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로 선거에 나선다. 그런 각오가 없다면 아예 나서지 말아야 한다. 흔히 선출직 공직에 당선되면 차지한 자리 이상의 대우를 받으려는 이들을 본다. 그러면서 자신의 본분을 잊고 샛길로 들어서는 일탈(逸脫)과 한술 더 떠서 따낸 지위를 악용하여 제멋대로 하려는 방종(放縱)으로 치닫기도 한다.

 

지방의회 무용론을 부르는 의원들

 

지방의회가 부활한 지 29년이 지났다. 이립(而立)이 코앞인데도 도대체 철딱서니 없는 행동은 여전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직업으로 삼을 만큼 넉넉한 수당과 각종 지원 등 영예에 혜택이 더해졌다는 것뿐이다. 묵은 정치꾼들에게서 배운 권모와 술수가 능하게 되었고 재선 정도에 이르면 나름의 부엉이 구멍을 찾아내게 된다. 오래오래 자리를 지키는데 필요한 기반을 만드는 기술도 늘고 힘을 유지하기 위한 이합집산도 서슴지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숨을 죽일 듯하더니 여전히 하루 30-50의 확진자를 만들며 호시탐탐 우리의 몸을 노리는 가운데 다시 불쾌하고 철딱서니 없는 의원님의 방종 소식이 들렸다. 김제시의회 한 남성의원이 현충일 행사장에서 동료 의원에게 폭언과 성적희롱을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어서 그 의원은 지난 12일 해당 동료의원과 부적절한 관계였다고 말하면서 책임지기 위해 의원직을 사퇴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의미든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었든 의원직을 사퇴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자리에서 동료의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확인하면서 상대의원의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사퇴압력을 받았다며 자신을 피해자라고 말한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다. 폭행과 압력에 의원직을 사퇴하는 피해자라는 인식은 한심하다. 피해자라면 경찰에 피해 내용을 고발해야 할 일이다.

최근 지방의원들의 일탈과 방종이 연달아 뉴스에 올랐다. 전주시의회 의장단과 일부 상임위원장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사회적거리두기가 진행 중인 가운데 제주도에 몰려가 단합행사를 가져 물의를 빚었다. 또 정읍시의회 모 의원은 지난해 10월 회식 장소에서 동료 여성의원을 껴안는 등 성추행으로 경찰에 고발되어 재판을 받을 형편에 놓였다. 지난 9일에는 정읍시 일부 의원이 평일에 군산에서 낮술을 즐기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의원의 자질이 문제

 

지방의회 의원은 지역문제에 관심이 많고 지역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격이다. 지역 정가를 기웃거리다가 유력한 인사에 접근하여 얼굴을 익히고 작은 직책을 맡아 드나들다가 지방의원 선거에 공천을 받아 의원이 되는 우리 지방정치 문화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 정치 졸병이 아니면 지역에서 돈 푼이나 만지는 인물이 자잘한 감투를 몇 개 차지하다가 지역의 유력인사에 줄을 대서 공천을 받아 의회로 진출한다.

지역민의 신망을 얻어 의원후보로 추천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과연 그들이 지역민의 대표로 주민의 뜻을 대변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아닌 듯하다. 의원들의 면면을 보면 열심히 의정생활에 매진하는 인물은 가물에 콩 나 듯 뜨일 뿐이다. 상당수는 지역에서 개인 사업이나 영업을 하는 인물이고 일부는 의원이라는 직분을 사업에 활용하기도 한다.

물론 나라의 입법기관인 국회에도 파락호 같은 인물이 섞여 있는 판에 지방의회 의원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어디 어떤 조직에도 예외의 인물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함량미달의 인물이 돈이나 개인적인 수완으로 지방의회에 진출하여 물을 흐리고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더는 있어서 안 된다. 이제는 지방자치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 지방의회가 지금처럼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국민을 실망하게 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정당 공천제이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방조직을 든든하게 하기위해 지방의원까지 정당이 공천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지방의회에서 정당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국회의원과 지구당 위원장이 지방자치를 간섭하기위해 공천 제도를 만들었다.

지방의회는 말 그대로 주민자치의 한 축이 되어 단체장의 독단을 막고 주민의 의사로 주민자치를 실현하는 도구이다. 오늘날의 지방의회 운영을 보면 마치 소규모 국회를 운용하듯 하지만, 그런 거창한 형식이나 흉내는 비용만 들 뿐 의미 없다. 전국공통의 문제를 따로 논의하고 규정하는 일 자체가 형식이다.

순수한 지역 중요문제만 1년에 몇 차례 회의를 소집하여 결정하고 매년 철저한 행정사무감사로 확인하면 된다. 거창한 사무실과 기구가 필요하지도 않다. 주민의 손으로 선출한 단체장이 있고 시시각각으로 제공되는 데이터가 행정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드러내는 오늘이다. 거들먹거리는 의원보다 지역 일에 밝고 일을 아는 인물들로 의회를 구성하여 행정을 감시하면 된다. 국회가 지방자치까지 감시 감독하려고 만든 정당공천제는 폐지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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