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찔레꽃
  • 전주일보
  • 승인 2020.05.2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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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이 용 만/수필가
이 용 만
수필가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

꽃의 화려함에 비추어 탐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에 제 몸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것이다. 그러나 찔레에 붙어있는 가시는 무엇인가. 왜 찔레도 가시를 달고 있어야 하는가.

찔레의 가시. 아무도 그 의미를 모른다. 심지어 논두렁 밭두렁에서 늘 같이 지내온 농부마저도 그 깊은 속마음을 모른다. 다만 밭이랑에 엎드리면 그대로 하나의 찔레꽃이었던 흰옷 입은 우리네 할머니들만이 속뜻을 알고 있었다. 찔레의 가시는 결코 남을 찌르기 위함이 아니라 제 몸의 아픔인 것을.

찔레꽃은 화려한 꽃이 아니다. 우아한 꽃도 아니다. 어느 누가 욕심내어 꺾어 가는 꽃이 아니다. 이른 봄 길가에 피어났다 지는 냉이꽃이나 민들레꽃 만큼이나 소박하고 볼품없는 꽃이다.

무너져 내린 언덕배기나 돌무더기와 덤불이 수북한 작은 개울가, 그리고 산비탈 아래 작은 돌밭 모퉁이가 찔레에게 허용된 자리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찔레를 가만히 놓아두질 않았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 속에서도 이른 봄이 되면 뿌리는 굵은 줄기를 만들어 찔레 순을 밀어 올린다. 새 기둥이 되어 화려하게 꽃피우고 열매 맺어 보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새순은 별다른 군것질감이 없었던 아이들에 의해 이내 꺾이고 말았다. 때로는 덤불 속에 숨겨도 보지만 배고픈 아이들의 손길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크고 통통한 순은 다 그렇게 꺾여 나가고 오로지 작고 가냘픈 것들만 가까스로 줄기를 만들어 뻗어오를 수가 있었다. 크고 굵은 새순이 자꾸만 꺾여나가는 아픔을 안으로 삭이다가 때를 놓치면 부랴부랴 작고 볼품없는 꽃을 그냥 피워내어야 했다.

이것이 수백 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 다른 나무들처럼 굵은 가지로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보려던 소망은 한숨이 되고 원망이 되어 그 아픔은 끝내 가시가 되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밭에 나와 엎드려 김을 매는, 헐벗고 굶주리며 고개 한 번 바로 들지 못했던 흰옷 입은 여인들의 서러운 노랫가락이 찔레의 아픔을 더해 주어 자꾸만 가시를 억세게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수난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농부의 억센 낫에 의해 밑동부터 잘려지고 만다. 몸에 가시가 있어 거치적거리고 밭가에 가시덤불을 만든다는 이유 때문이다. 때로는 찔레 때문에 뱀이 나온다는 낭설이 퍼진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들 몰래 새순을 빨리 키워내려고 힘주어 뽑아 올린 자양분이 거품으로 넘쳐있던 걸 보고 사람들은 뱀이 침을 뱉은 흔적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그렇게 억울한 사연은 자꾸만 쌓여가고 그 때마다 가시도 늘어났다. 결코 남을 찌르기 위한 것이 아니련만 사람들은 가시에 찔려 혼이 나기도 했다. 밟히고 밟혀 뿌리만 남아도 죽지 않고 다시 돋는 야생초처럼 억센 풀을 사람들을 민초라고 한다. 민초라 부를 가장 좋은 본보기가 찔레일 것이다.

찔레는 어떤 어려움에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새순을 꺾는 손이 아무리 많아도 농부의 억센 손이 자꾸만 낫질을 해도 다시 싹을 올려 보낸다. 별로 보아주는 이 없어도 수백의 꽃을 피워낸다. 몇 마리의 산새 외에는 누구도 욕심을 내지 않는 작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다른 나무와 풀이 억센 덤불 속에서는 살아남지 못하나 찔레만은 같이 가시를 내밀며 버티어왔다.

찔레는 결코 좋은 곳에 자리 잡기를 고집하지 않는다. 언덕이고 벼랑이고 돌밭이고 어디에든지 뿌리를 내린다. 외딴 곳에서도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고 하늘과 바람과 구름을 벗 삼을 줄도 안다. 마음에 엉킨 설움을 독으로 내뿜지 않고 안으로 순화시켜 작은 마음들처럼 하얀 꽃을 피운다.

찔레꽃은 고향의 꽃이다. 고향을 떠나 두고 온 산천을 그리는 사람들에게 봄이 익을 무렵에 아련히 떠오르는 꽃이 바로 찔레꽃이다. 하얗게 피어 있는 찔레꽃을 보면 밭두렁에 고무신 벗어놓고 저만치 이랑에 엎드려 김을 매던 우리네 할머니들이 생각난다. 그이들은 하얀 모습 그대로 하나의 찔레꽃이었던 것이다. 언제까지 밭이랑에서 살지 않겠다고 호미자루 내던지고 서울로 달아난 갑순이, 을순이도 그 밭에 엎드려 있던 찔레꽃이었다.

영운기가 윙윙거리며 밭을 가는 지금, 그 서럽던 이들은 가고 없다. 찔레꽃만큼이나 고통 받고 멸시받으면서도 마음은 언제나 하얗게 꽃을 피웠던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들을 이제는 밭에 가도 만날 수 없다. 밭두렁에 벗어놓았던 까만 고무신도, 때 절은 삼베 수건도 볼 수 없다. 목마를 때 목을 축일 주전자 하나 들고 다니지 못했던 우리네 할머니들이 때때로 갈증을 달랬던 찔레는 홀로 남아 여전히 꽃을 피우는데, 흥얼거리며 노랫가락 들려주던 그 사람들은 가고 없다.

찔레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자태와 잔잔한 미소가 머물고 있는 듯하다. 찔레꽃은 그들의 꽃이기 때문이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세월은 흘러도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친숙한 가요다. 어느 지방에 가면 찔레꽃이 붉게도 피는지, 붉은 찔레꽃을 본 적이 없어도 즐겨 부르는 노래다.

언덕 위에 초가 삼 간…….” 찔레꽃이 서 있을 딱 좋은 장소다. 그 집에 끼니 쌀 씻던 순이도 살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그 노래가 잊히지 않고 이어져 불리고 있는 것일 게다.

다시 한 번 찔레꽃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결코 볼품없는 꽃도 연약한 꽃도 아니다. 온갖 고난과 설움 속에서도 약해지지 않고, 불같은 분노도 하얗게 승화시킨 선한 농부 같은 꽃이다. 흰옷 입은 사람들의 꽃이다.

이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무성해진 찔레꽃을 내 책상 위의 화병에 한 움큼 꽂아두면 지금은 볼 수 없는 이들이 내 꿈에 나와 말을 걸어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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