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령의 달’은 동·서를 두루 비춘다
‘육십령의 달’은 동·서를 두루 비춘다
  • 전주일보
  • 승인 2020.05.20 16: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현재 칼럼
이 현 재/논설위원
이 현 재/논설위원

남덕유산 할미봉 자락을 휘감으며 사행(蛇行)하는 국도 24호선 육십령은 전북 장수군 장계면과 경남 함양군 안의면을 잇는 고개다. 이 고개를 두고 30여 년 전 한 젊은 여행작가는 호남이 영남에게 보내는 비단편지라고 했다. 동서 교통의 최대 관문이자 지역감정의 경계임을 중의적으로 담아내는 은유적 표현이다.

고개 서쪽에 자리한 장계면은 일제강점기 시절 제국주의 전쟁의 전초기지였다. 살상의 열기로 달아오른 총구와 포구의 파열을 막기 위한 합금의 필수 금속인 수연(몰리브덴)의 동양 최대 광산이 고개 자락 왼편에 지금도 백두대간 밑을 수십 킬로미터 파고든 폐광으로 옛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일제가 저지른 태평양 전쟁은 인류에게 큰 재앙을 끼쳤지만, 수연으로 인해 장계면은 일시적이나마 전시특수를 누렸다. 지금은 십 수 호의 조용한 산촌이지만 옛 광산마을은 400여 호에 이르는 큰 촌락을 이뤘고, 그 시절 장수군에는 일찌감치 지역 화폐가 통용됐다. 광물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 철도 부설이 추진되다 종전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세월과 함께 육십령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폐광 옆 도로 건너편엔 한국마사회의 경주마 육성목장이 들어섰고, 광산의 옛 갱도 위로는 익산~포항 간 고속도로가 국내에서 두 번째로 긴 터널을 뚫고 지나가고 있다.

변함없는 것은 육십령 고개에 떠오르는 달이다. 매달 보름이면 할미봉이 집채만 한 달을 토해내 고원(高原)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부질없는 달팽이 뿔위의 싸움

 

그 달을 밟기 위해 소련과 미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마침내 1969년 미국의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을 밟았다. 그리고 미·소의 우주탐사 경쟁은 태양계의 더 먼 곳을 향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태양계 행성들을 관찰할 목적으로 1977년 보이저 1·2호를 쏘아 올렸다. 칼 세이건은 199065km 떨어진 명왕성 부근을 항해하던 보이저 1호의 카메라 렌즈를 반대로 돌려 지구를 향하도록 했다. 점 하나가 찍혔다. 사진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겸손의 침묵이었다. 무한한 우주 공간에서 지구는 너무나 작고 왜소한 먼지 한 톨의 크기로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세이건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인류공동체에 대한 통찰이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속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수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가, 경제 제도가, 위대한 영웅과 겁쟁이들이, 문명을 일으키고 파괴한 사람이, 왕과 소농이, 성자와 죄인들이 저 티끌 같은 저 속에서 살았습니다. 역사 속의 위대한 장군과 황제가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차지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기 위해 흘린 피의 강물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저 작은 픽셀의 한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무수한 만행을 생각해보십시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하더라도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 외부에서 도움의 손길이 올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이건 이전에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장자(莊子)가 찰나의 인생을 하잘것없는 다툼으로 지새우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달팽이 뿔(蝸牛角)의 고사로 풍자했다. ‘달팽이 왼쪽 뿔 위에 촉국(觸國), 오른쪽 뿔 위에 만국(蠻國)이 있었는데 서로 국토를 다투어 편할 날이 없었다.’

당송팔대가는 장자의 고사를 소재로 풍자시를 읊었다.

蝸牛角上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 /石火光中寄此身(석화광중기차신)’

달팽이 뿔 위 다툼이 웬 일인가 /번쩍하는 순간에 몸 붙이고 살면서

-백거이 대주(對酒)’

고려의 문신 김부식도 산사(山寺)에 들어 부귀공명의 덧없음을 탄식했다.

自慙蝸角上(자참와각상) /半世覓功名(반세멱공명)’

부끄럽다, 달팽이 뿔 좁은 세상에 /공명 찾아 헤맨 지난 한평생

-甘露寺次惠素韻(감로사차혜소운)

 

비단편지에 상호 답신을

 

육십령은 현실에서 장자 고사의 상징이다. 고개 일대는 영남 도계(道界)이든, 호남 도계이든 최대 낙후지대를 이루고 있다. 육십령 일대뿐만 아니다. 지역총생산(GRDP), 소득, 노령화, 인구 유출 등 모든 지표는 호남과 영남이 급속히 동반낙후에 빠져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육십령을 경계로 촉국과 만국으로 갈려 반목하며 부질없이 정쟁에 부역하고 있다. 지난 4.15총선에서 마찬가지였다.

혹여 호남이 보낸 비단편지가 도중에 분실됐거나 도착이 지연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영남이 보낸 비단편지를 호남이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가끔은 육십령 보름달을 함께 바라보면 어떨까. 할미봉에 떠오르는 보름달은 영·호남을 가리지 않고 온 누리를 비춘다. 그 빛을 호흡하며 우주의 호연지기를 기르면 어떨까. 영국 노팅엄 대학의 크리스토퍼 콘셀리스 교수가 이끈 연구팀에 따르면 관측 가능한 은하의 숫자는 무려 2조 개가 넘는다. 그 영겁의 시간과 무한의 공간 속에 기적처럼 서로가 만났다.

천년에 한 번씩 바다 위로 나와 바람을 쐬는 눈먼 거북이 있다. 눈이 안 보이니 허우적거리다 도로 물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마침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나무토막 하나가 파도를 타고 떠내려와 몸에 걸린다. 그러자 거북은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됐다. 불가에서 말하는 맹구우목(盲龜遇木)’의 인연이다. 광대 무비 한 우주 속에 지구에서, 대한민국에서, 동과 서로 이웃하며, 인간으로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인연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는다.

그 소중한 인연을 아름답게 가꾸면 또 다른 기적이 기다린다. 좌우의 더듬이가 협력해 균형을 잡고 방향을 찾을 때 느리고 앞을 잘 보지 못하는 달팽이도 바다를 건넌다. 영호남이 비단엽서를 펼쳐보고 답서를 하면 대한민국이 달라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