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하지 못한 시대의 아픔
청산하지 못한 시대의 아픔
  • 전주일보
  • 승인 2020.05.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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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 편집고문
김 규 원/ 편집고문

오늘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다. 1980515일 서울역에 모였던 전국의 대학생 10만 명이 신군부의 새로운 독재에 항거하는 시위를 벌일 예정이었으나 지도부가 학생들의 안전을 빙자하여 해산을 결정했다. 이른바 서울역 회군이다. 이에 놀란 전두환이 517일 비상계엄령을 전국에 확대하면서 국회를 해산하고 모든 대학의 문을 닫았다.

그러나 전남대학교 학생들은 518일 계엄철폐를 주장하며 광주에서 군사독재를 성토하는 시위를 벌였다. 전두환은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시위를 진압하려는 과정에서 무자비한 살상을 거듭하여 대학생뿐 아니라, 일반 시민과 심지어 임신부까지 죽였다. 이에 분개한 시민들은 예비군 무기고에서 무기를 꺼내 시민군을 조직하여 공수부대를 몰아내고 한때 시민자치를 맛보기도 했다.

이에 신군부는 탱크와 헬기 사격까지 감행하며 광주에 재진입하여 숱한 시민을 죽이고 다치게 하였고 잡아 가두었다. 사망자와 수상자, 행불자까지 3천여 명이 사상하였고 아직도 뼈조차 찾지 못한 행불자가 여럿 있다. 신군부의 책임자 전두환에 대한 재판은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그는 모든 것을 부인하며 치매 상태라고 회피하고 있다. 그는 이미 반역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김영삼 정부 말기에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치적인 합의로 사면되었다.

 

왜 우리는 청산에 취약한가?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우리가 해방되었을 때, 남쪽에는 일본을 추종하는 친일파가 너무 많았다. 친일파들은 일본의 식민정책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충성하다가 갑자기 그들이 패망하자 자신들의 목숨을 진주한 미군에 빌붙어 보존했다. 미군정은 기왕에 행정조직의 이름만 바꿔서 쉽게 남한을 장악할 수 있었기에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

미국은 공산주의자가 포함된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친일파들을 기용하여 남한만의 정부를 세우기로 하고 미국에 있던 이승만에 도움을 주어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그 과정에서 김구 임정 주석과 여운형 등이 암살됐다. 그리하여 남한에서는 여전히 친일파가 득세하여 잘 먹고 잘사는 사회지도층으로 둔갑했다.

삼국시대에 신라가 당나라에 대동강 이북을 모두 내주고 작은 나라로 웅크리면서 권력을 쟁취한 이후 우리 역사에서 그들은 항상 지배계층이었고 권력을 쥐고 놀았다. 고려와 조선왕조에서도 신라의 후예들은 나라를 쥐고 흔들었고 왕은 얼굴마담이었다. 일본이 이 나라를 강점할 때도 그들은 나라를 파는 데 앞장섰고 강점기 내내 일본의 앞잡이 노릇에 충실했다.

오랜 역사 속에서 그들은 언제나 나라의 중요문제를 다루는 집단이었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일본 왕에 혈서로 충성을 바쳐 만주군 장교로 군대에 들어갔던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는다. 반공을 내세워 미국을 설득한 박정희 독재는 신라의 후손과 군대 출신들이 권력과 돈을 모두 차지하게 했다. 그들의 독점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까지 이어지면서 고착화하였다. 기회주의자,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자들의 천국이 되었다.

박정희가 죽고 독재 시대가 청산되어야 했으나, 전두환이 다시 군사쿠데타로 나라를 훔쳐 청산되지 못했고, 1980518일 광주민주화운동에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숱한 시민을 죽이고 총칼로 위협해서 대통령 자리를 차지했다. 그후,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김영삼 정권이 탄생했지만, 그 주역은 독재에 빌붙어 단 꿀을 빨거나 떡고물을 주워 먹던 자들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등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기는 했으나, 나라의 중요 포스트는 여전히 신라의 후손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명박근혜를 지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어도 그 구도는 변하지 않았다. 1,500년 동안 권력의 중심을 줄기차게 붙들고 있는 그들이 있는 한 시대의 청산은 이루어질 수 없다. 전두환이 추징금을 안 내고 버티고 광주 학살을 부인하며 치매인 척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그들의 보이지 않는 비호가 있기에 가능했다.

 

달라진 시대를 위한 청산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려면 지난 시대를 깨끗이 정리해야 개운한 출발이 가능하다. 우리는 지난 총선에서 아직도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거나 북한군의 작전이었다고 우기는 자들을 국회에서 상당수 몰아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1/3 이상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21대 국회가 출범하면 그들은 곳곳에서 암초로 불거져 배를 좌초시키려 할 것이다.

온 국민이 같은 생각, 같은 방향을 보고 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른 생각을 무조건 배척한다면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한 시대를 청산하는 일은 지난 시대의 잘못을 저지른 자들이 진심으로 잘못을 반성하고 다시는 같은 짓을 하지 않겠다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가 지금도 감정의 혼란 속에 사는 까닭은 바로 잘 못 된 시대를 청산 ·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를 겪으면서 세계가 우리를 칭찬하고 부러워한 것은 정부의 적절한 대응보다 그러한 방향에 충실하게 따라 준 국민의 자세였다. 불편을 감수하며 당장보다 내일을 생각하는 현명한 국민이다. 일부 몰지각한 자들의 행동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사태를 바로 이해하고 가족이 만나는 일조차 삼가면서 슬기롭게 행동하는 국민이 있었기에 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현명한 국민 가운데 아직도 1%가 나머지 국민을 농락하며 갑질하는 시대로 아는 일부 철딱서니 정치인이나 고리타분한 언론은 그만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친일파와 군사독재에서 배 불린 자들, 이념 팔이 정치꾼, 권력의 뒤에 숨어 갖가지 이익을 취한 자들은 스스로 물러나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광주 학살의 책임자 전두환은 이제라도 오리발을 거두고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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