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호의 독후감 – 한국, 한국인(마이클 브린 지음)
최영호의 독후감 – 한국, 한국인(마이클 브린 지음)
  • 전주일보
  • 승인 2020.05.1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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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민 정치와 관치경제, 극한 경쟁에서 벗어나
개인과 자율을 회복해야, 행복을 찾을수 있다."
최용호 변호사
최용호 변호사

비만이 사회 문제가 되고, 음식물 쓰레기가 과잉인 시대지만 우리는 여전히 “진지 드셨습니까”, “식사하셨습니까”, “밥 먹었니”라고 묻는다. 남들이 ‘좋은 아침’, ‘어떻게 지냈어’라고 인사하는 대신 우리는 아직도 당신의 밥을 묻고 있다.

밥에 관한 인사의 그 정확한 기원을 연구하진 않았지만, 어쩌면 개인적 경험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80년대 우리는 밥을 굶지 않았음에도, 한 끼라도 안 먹으면 큰일 날 것 같았다. 살이 찐 아이라도 더 먹으라고 했다. 쌀 한톨이라도 남기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 우리의 부모는 배가 고파 먹을 것이 없었다는 지독한 가난에 관해 들려줬다. 전쟁 후 너무나 공평한 가난은 모두를 배고프게 했고, 어린 나이에도 산과 들, 강과 바다로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녔다고 한다.

1930년대 말 식민지 국민의 일원으로 세계대전을 겪었고, 전 세계에 불어닥친 냉전의 시대에 이념으로 갈라진 동족 국가는 국가 대 국가를 넘어 마을 내에서도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치렀다. 그사이 우리는 빈부를 따질 틈 없이 대부분 죽었고, 또 배고팠다.

우리는 지금 70년 전 가난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경제 규모, 수출 규모, 대학입학률, 선박, 가전, 반도체, 철강, 자동차 등 따로 강조할 필요 없이 이미 우린 경제 대국의 일원으로서 절대적 빈곤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독재와 빈곤 속에 해외 원조로 겨우 배고픔을 허덕이던 우리는 불과 수십 년 만에 경제 선진국으로 평화적으로 정권교체가 반복되는 민주국가의 국민이 됐다.

민주주의와 선진 경제가 숨 쉬듯 자연스럽지만, 막 배고픔을 면하고 어느 정도 산업의 기반을 닦은 1980년에도 우리가 지금과 같이 발전을 예측하지 못했다. 한강의 기적이라 자랑했지만, 한국이 앞으로 더 발전할지에 대한 전망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회의적이었다. 5천 년간의 전제군주 통치 역사로 독재는 계속될 것 같았고, 중앙집중식 계획과 권위주의적 국가 권력에 의존한 경제는 배고픔은 면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서구와 같은 반열에 오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1980년, 갓 배고픔을 면한 한국의 거리는 최루탄 가스로 가득했다. 저자는 1980년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한국으로 온 영국 출신의 외신 기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전쟁을 겪은 한국이 어떻게 절대 빈곤을 극복했고, 간신히 빈곤을 면한 한국이 어떻게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는지, 앞으로 한국은 또 어떻게 될지에 대한 질문과 답을 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을 ‘역동적이고 대단’하다고 하며, 지금의 한국이 되기까지 한국인의 이야기는 ‘기적을 창조한 이야기’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한국의 이야기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낙후되었던 나라가 두 세대 만에 이와 같은 성취를 이룰 수 있다면, 그 어떤 나라든지 단기간에 민주화를 이루고 국민의 생활 수준을 높여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으로 어느 나라든 한국과 같이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기에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필자가 읽는 책의 제목만 본 필자의 아내는 필자에게 ‘당신도 국뽕이야’라고 놀렸다. 하지만 한국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이뤄낸 성과에 대한 이야기다. 과한 집단 지향성으로 우울한 한국인, 위계적 관계 속에 극한 경쟁 체제, 국민 정서에 기반한 폭민정치.

저자는 근대 한국을 분석하며 근대를 40년 단위로 나누었다. 첫 40년은 1905년부터 1948년까지로 일제와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한 민족이 광야를 헤매는 기간이었다. 다음 40년은 1948년부터 1988년까지로 대통령 직선제, 88올림픽, 한국은 낙후된 경제에서 신흥경제국으로 올라서며 근대국가의 건설을 위한 기반을 닦았다. 그다음 40년은 2028년까지로 선진 경제, 민주주의 역량 강화, 한류의 세계화 등 성숙의 기간으로 보았다.

3만 불이 넘는 개인 소득과 평화적 정권교체가 반복됨에도 아직 한국은 좀 더 성숙해야 한다고 보았다. 권력 상호 간의 견제와 균형이 아닌 집단적 의사표시로 법을 뛰어넘으려 하는 폭민 정치. 국가가 계획하는 관치와 재벌 위주의 경제, 집단 중심의 사고로 자리 위주의 서열에 집착한 극한 경쟁.

저자는 한국인이 좀 더 행복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충분히 위대하지만, 한국인은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다. 한국이란 집단적 성취를 위해 한국인이란 개인의 행복을 무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한국인에게 필요한 건 행복이고, 이는 ‘국가’ 중심에서 벗어나 ‘개인’과 ‘자율’을 회복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최영호 <법무법인 모악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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