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들머리의 생각
5월 들머리의 생각
  • 전주일보
  • 승인 2020.04.2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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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오늘이 427, 며칠 후면 5월이 열린다. 계절의 여왕이니, 모란의 달이니 들먹이지 않아도 5월은 푸르름이 익어가는 달이어서 저절로 들썽이는 달이다. 430일 부처님 오신 날부터 시작하여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 어버이날까지 5월 들머리는 가정과 자녀와 부모를 생각하고 챙기는 좋은 때다. 당연히 나들이가 많고 찾아보고 돌아볼 일도 많은 시절이다.

그런데,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와 버티고 앉아 떠날 줄을 모르니 문제다. 지난 4개월 동안 우리는 이 지겨운 불청객에 지독히 시달리고 240여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다행히 크게 퍼지는 건 막아서 요즈음은 새로운 감염자가 10명 안팎으로 줄었어도 안심할 정도는 아니다. 정부와 방역 당국은 5월 연휴 기간에 사람들 사이에 접촉이 많아지면 바이러스가 다시 확산할 수 있다며 자제하고 주의할 것을 간곡하게 권한다.

며칠 전에 지인과 안부를 묻느라 통화하면서 세상이 너무 각박해진 거 같아 사는 재미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손자가 와도 안아볼 수 없고 그저 먼발치에 두고 바라만 보아야 하니, 이게 사는 거냐?”라고 하소연한다. 가까운 친구하고 점심이라도 나누고 싶지만, 혹시 그러다가 운이 없어서 바이러스라도 만나면 어찌하나 싶어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믿음이 무너진 세상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퍼지면서 우리는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상대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났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도 지난 2주간의 행적 속에 바이러스를 퍼뜨릴 가능성이 있는 사람과 직간접으로 접촉한 일이 있는지는 당사자조차 모르는 일이다. 누구도 안전한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는 세상이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 인격이나 품위를 말하기 전에 바이러스를 전파할 가능성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지저분한 사회로 변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놓고 서로를 탐색하는 인간관계, 직장 동료 사이에도 얼굴을 다 드러내고 정면을 보며 말하기가 부담스러운 불행한 시간을 보낸 게 벌써 4개월이다. 집에 돌아와 옷을 벗어 털고 손을 씻거나 샤워한 다음에야 일상이 시작된다. 하루가 다 끝나고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 내가 누구와 접촉했는지, 그들 가운데 바이러스를 옮길 사람은 없기를 바라며 잠든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나날이다.

이런 참담한 시간을 겪으면서 우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상의 고통을 겪었다. 거기에 서로 만나지 못하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머뭇거리고 불안이 증폭되어 마음의 병이 깊어간다. 불신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 경계 심리가 날을 세워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말은 까칠하게 변하고 잘 지내던 사이도 서먹해져 점점 멀어진다.

 

동행하며 견디고 이겨내자

 

모두의 노력으로 감염자가 줄어들어도 정부는 계속 거리 두기를 권장한다. 그러나 이렇게 언제까지 서로 멀리 서서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사람이 움직이지 않아서 재화가 이동하지 않고 경제가 흐트러져 조금 더 가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마음이 병들고 경제가 무너지고 난 뒤에는 추스르고 회복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든다. 조심스럽게 바이러스와 동행하는 삶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지구상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없어지는 걸 기대할 수는 없다. 퍼지지 않도록 눌러가며 조심스럽게 동행하는 방법 이외에 수단이 없다. 그렇게 동행하려면 그에 맞는 생활요령을 만들고 적응할 수 있는 적절한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바이러스의 위험을 모두가 실감하고 경계하며 견디다 보면 백신과 치료제가 만들어질 것이다. 인류는 지금껏 그렇게 적응하며 진화하고 발전해 왔다. 피할 수 없으면 함께 가면서 견디자는 말이다.

백신이나 치료제를 만들 때까지 피하고 도망만 갈게 아니라 현명하게 대처하면서 면역력을 기르고 대응하는 지혜를 길러야 할 때다. 전염경로에서 중증과 경증환자가 구분되듯이 전염력도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그에 대한 대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위험 군을 사전에 분류하여 중점 관리하는 방법도 동행의 한 수단이 될 것이다.

 

근본을 위한 노력

 

어쭙잖게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얇은 지식과 기술을 찾아냈지만, 인류는 아직 자연의 힘을 기길 능력이 전혀 없다. 태풍 · 폭우 · 가뭄 · 기온변화 등 가장 기본적인 변화에도 쩔쩔매는 인간들이 자연을 거스르며 지배하고 조절하려 드는 건 어처구니없다. 우주변화나 자연현상에 순응하고 보존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최근 뉴스에서 재활용품 처리 공장에 산처럼 쌓인 일회용품 쓰레기를 보았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급증한 배달음식 쓰레기가 미처 처리할 수 없을 만큼 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를 괴롭히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동물을 숙주로 살던 것들이 인간을 숙주로 삼도록 진화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자연을 파괴하고 동물의 서식지를 침범하여 그 개체가 크게 줄어들어 생긴 질병인 것이다.

죽은 고래의 위장 속에 한국산 플라스틱과 비닐봉지가 가장 많이 들어있었다는 부끄러운 기사도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버린 쓰레기와 비닐 등이 우리에게 재앙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체하며 살아온 죄값을 호되게 치르는 셈이다. 화석연료를 무제한으로 태우고 다른 종을 마구 잡아먹어 씨를 말리는 일을 서슴지 않는 호모 사피엔스의 겁 없는 행동이 오늘의 재앙을 불렀다.

지구 온난화를 불러온 화석연료 과다사용, 개발과 오염으로 다른 종이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든 것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지금이라도 지구를 되돌리는 노력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우주를 넘나드는 기술이 있어도 하찮은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인류의 허술함을 깨달았다면 지구를 살리고 생태계를 되돌려 놓아야 한다. 우주의 거대한 흐름을 인간이 겁 없이 흔드는 일은 멸망을 불러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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