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고라니의 눈망울
새끼고라니의 눈망울
  • 전주일보
  • 승인 2020.03.1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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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문 광 섭/ 수필가
문 광 섭/ 수필가

정월 대보름이 지난 한낮이 되니 봄기운이 완연하고 담벼락에 내려앉은 햇살이 포근하다. 봄볕은 내 시든 가슴에 슬그머니 바람을 불어넣어 밖으로 나가자고 꾄다. 못 이기는 척 간단한 채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작년 11월 중순쯤, 산책을 나섰다가 된바람 맞고서 이내 그만두었으니 3개월 만이지 싶다. ‘코로나 19’ 영향인지 산책 나온 사람이 많지 않았다. 두꺼운 방한복 차림의 초, 중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몰려다니는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큰길 건너서 추천교 아래 전주천 산책로에 들어서니 아지랑이가 너울너울 춤추는 가운데, 추천대 위쪽에 자리한 황방산이 나를 반기는 듯이 다가왔다.

올겨울엔 눈 한 번 제대로 내린 적도 없었고, 혹한기도 길지 않아서 겨울이 오긴 했는지, 지나가고 있는지 계절 감각조차 무디어진 듯싶다. 걷다 보니 몸이 아직 풀리지 않아선지 집을 나설 때의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멍한 느낌이 되었다. 그때, 까치 한 쌍이 깍 깍, 깍 깍울어대며 머리 위를 지나 벚나무에 앉더니 연신 나무를 쪼며 서로 뭔가 이야기하는 듯 시끄럽다. 봄에 짝짓기하고 둥지를 마련하려는 녀석들이 서로 좋은 자리를 의논하는 듯하다.

그래, 봄은 이런 맛이지.’ 돋아나고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의 계절을 실감하며 어딘지 푸른 빛이 도는 천변길을 걷다가 길섶에서 반가운 녀석들을 만났다. 얼핏 지나치면 있는지조차 모르게 아주 작은 보라색에 흰 줄무늬로 치장한 봄까치꽃이 반짝거렸다. 앙증맞은 모양을 스마트 폰에 담아 보았지만,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실물에 만족해야 했다.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섰던 요 며칠 사이 핀 모양이다. 제 때에 봄 마중을 잘 왔다 싶었다. 봄 처녀 심정 같은 설렘이 소록소록 다시 피어났다.

반가운 봄까치꽃에 활력을 찾은 발걸음은 추천대 보()까지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올겨울엔 눈이나 비가 적었기에 보에 넘치는 물이 없어서 조용하기만 했다. 백로와 왜가리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물오리 몇 마리만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물가 하상에는 지난가을 멋진 갈꽃을 자랑하던 갈대들이 꺾이고 시들어 처량하다. 모든 것은 한때가 지나면 시들고 스러지는 것, 마치 내 나이 든 모습을 보는 듯 마음이 아리다. 순간, 활주로를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물오리가 물을 박차고 힘차게 날아오른다.

날갯짓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발길을 재촉하여 전주천 두물머리를 지나니 섶다리가 나왔다. 섶다리, 나무를 엮어 물에 세우고 그 위에 나무 섶을 얹고 흙을 덮은 자연의 다리다. 어릴 적 내 고향 북실마을 냇가엔 섶다리가 해마다 놓였다. 금강의 상류요, 물이 많아서 학교 가는 아이들을 위해 섶다리를 만들어 놓아도 홍수가 나면 휩쓸려 떠내려가는 바람에 그때마다 새로 만들었다. 도심에서 섶다리를 보니 정월 대보름 때 달구지와 불놀이를 즐기던 그 시절로 돌아가 불 깡통을 돌리며 고함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귀에 아련하다.

섶다리 추억에 폭 빠진 감정을 추스르며 돌아서는데, 왼편 물가 잡초 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작년 여름밤에 보았던 너구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덩치가 그보다 커 보여 뭔가 다른 동물인 듯하다. 나를 의식했는지 한참 동안 그 녀석도 꼼짝 않고 그대로 있었다. 나와의 숨죽인 싸움이 한참 지나자 그 녀석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아뿔싸, 사슴? 노루? 아니다, 새끼 고라니였다. 아니 이 길을 30년 가까이 다녔지만, 웬 새끼 고라니가 여기까지 왔을까? 가까운 곳에 산이 있으니 어쩌다가 어미를 잃고서 방황하는지 안타까웠다.

내 나이 팔십이 목전에 있어도 어머니 이름만 떠올리면 목이 메는데, 저 녀석은 도대체 어미 품을 떠나 어찌 헤매고 있나 싶어 발길을 옮기지 못하고 엎드려 눈싸움을 계속했다. 한데, 이 녀석이 벌떡 일어나더니 물속으로 몸을 던져 유유히 헤엄쳐 폭 10m 가까운 내를 건너더니 내 쪽을 한참 바라보고선 모래섬 풀숲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조그만 녀석이 언제 헤엄치는 걸 배워서 냇물을 쉽게 건너는지 신기하다. 지난해 가을부터 가뭄이 계속되니까 오가던 어미가 모래섬에 둥지를 틀었지 않나 싶었다.

오묘한 자연의 섭리에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작년 여름밤, 가련산 남쪽 전주천에서 눈을 마주쳤던 수달의 검은 눈동자가 문득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전주천이 살아난 덕분에 수달, 너구리에 이어 고라니까지 본 것이다. 오늘 봄맞이 나들이는 또 한 번 색다른 경험을 해보는 행복한 날이 되었다. 하지만, 산골에 살아야 할 고라니가 도시 주변까지 온 일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인간들이 그들의 터전과 먹을 것을 빼앗아 살 수가 없으니 위험을 무릅쓰고 왔을 터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돌아오는 길, 자꾸만 새끼 고라니 눈망울이 어른거려 발걸음이 무거웠다. 건너편에 어미가 있는지, 혹시 어미가 죽어 고아가 된 고라니는 아닐지, 걱정이 자꾸만 가슴에 걸렸다. 하지만, 유유히 헤엄쳐 건너가는 녀석의 태도를 보면 어미가 있어 배웠을 것이라는 짐작으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올해 새봄맞이 나들이는 갑자기 나선 것이지만, 우연치곤 잘했지 싶다. 생명의 계절을 피부로 느끼며 그 부활과 소생의 기운을 몸 가득히 받았으니 이보다 더한 축복이 있으랴. 이 봄, 내 묵은 등걸에도 새싹이 돋고 꽃이 피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본다.

(2020.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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