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가 쏘아 올린 담론
전주시가 쏘아 올린 담론
  • 전주일보
  • 승인 2020.03.1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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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칼럼
이 현 재/논설위원
이 현 재/논설위원

전주시가 한국 사회에 담론 하나를 쏘아 올렸다. ‘코로나 19’로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시급한 생계를 위한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키로 결정하고 관련 예산 260억 원을 추가경정예산에 반영했다.

전주시의 재난기본소득은 전국 226개 기초단체는 물론 17개 광역단체를 망라해서 전국 최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 등이 정부에 같은 지원책을 건의했지만 실천으로 옮긴 것은 전주시가 처음이다.

그러다보니 전주시 재난기본소득은 당연히 발표 직후 즉각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전주시의 신속한 정책 추진이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 다른 지자체들로 확산될지 주목을 받았다.

남은 관심사는 두 가지다. 정책의 효율성을 극대화 하는 것은 당연한 과제다. 전주시의 재난기본소득을 기점으로 기본소득이 한국사회의 본격적인 담론으로 떠오를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퍼스트 무버가능성 주목

 

정책 추진 절차로만 보면 전주시의 재난기본소득은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WHO(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데서 보듯이 코로나 19’는 세계적 대재앙이다. 그 중심에 한국이 놓여 있다. 국가적 재난인 만큼 정부, 광역단체, 지자체 순으로 구체적인 구제 정책을 내놓는 것이 순리이고 효율적이다. 광역단체 대책은 정부 정책을 보완하고, 그 뒤에 기초단체들이 다시 그 틈새를 메우는 것이 중복지원 등 혼란을 막고 퍼주기 논란을 불식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돌아가는 상황도 이런 아쉬움을 남긴다. 전주시의 추경이 시의회를 통과한지 4일 만에 정부와 전북도의 코로나 19’ 종합대책안을 담은 추경이 통과됐다. 전주시가 지원 대상을 한창 선별 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집행 과정에서 겹치기 지원을 방지하기 위한 일부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상황의 심각성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국민 모두가 체감하듯이 현 상황은 일종의 국가비상사태다. 전주시가 앞서 나간 것이 아니라 정부가 늑장을 부렸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포퓰리즘 시비도 마찬가지다. 보수 언론과 정치인 등 일각에서는 현금과 현금성 상품권을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할 인기영합 정책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다가오는 4.15총선을 위한 정략적 산물로 보는 시선도 없지 않다. 그러나 효과 이전에 서민들의 삶의 문제라는 점에 인식이 미치면 그들의 면면은 공동체 정신을 해치는 어지러운 군상으로 전락한다.

 

분배와 분리될 수 없는 정의

 

전주시의 재난기본소득은 보다 근본적인 담론을 떠올리게 한다.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라는 상념이다. 전주시는 이번 서민생계 지원책에 재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을 붙였지만 이는 엄밀하게 말해 진정한 기본소득과는 거리가 있다.

기본소득이란 사회구성원에게 국가가 대가 없이 일정한 현금을 제공하는 제도이다. 그리고 그 특질은 주기적, 현금, 개인, 모두, 무조건5가지다. 반면 코로나 19’ 국면에서 전주시 등 지자체와 정부가 제공키로 한 현금은 일부 계층에게 일시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기본소득이라기보다 현금 수당에 가깝다.

정책 목표도 확연하게 다르다. 기본소득의 근저에는 정의로운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라는 명제가 깔려 있다. ‘보다 평등하게 분배되는 사회가 보다 정의로운 사회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시장의 정의에 대한 세계시민주의자들의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분배의 의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세계시민주의자들이 전 세계가 분배의 의무를 진다고 보는 이유는 개발도상국에서 가난 때문에 빚어지는 인간 존엄성의 위기가 단지 그 국가들 내부문재에서 생겨난 것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선진국들은 워싱턴 컨센서스로 불리는 단일한 세계경제질서로부터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고, 이런 질서가 후진국 빈곤의 주요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실제로 통계는 지구적 불평등으로 인한 참담한 현실을 증언한다. 2015년 국제사회가 설정한 빈곤선은 1인당 하루에 1달러90센트다. 그 이전에는 1달러25센트였다. 1998년의 상황을 보면 대략 588,000명이 전쟁, 736,000명이 살인이나 폭력으로 죽은 반면 무려 1,800만 명이 극빈 상태에서 기아와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사망했다.

그렇다고 선진국의 국민들이 모두 잘 사는 것도 아니다. 2011917일 미국 청년들의 내가 99퍼센트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벌인 월 스트리트 점령운동은 세계 최고의 풍요를 자랑하는 미국의 어두운 민낯을 상징한다.

한국사회도 별반 다름없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한국의 부의 집중도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2010년과 2013년 사이에 상위 1%에게 25.9%, 5%에게 50.3%, 10%에게 66%의 부가 집중된 반면 하위 50%는 단지 1.7%의 자산만을 소유한 것으로 분석됐다.

 

기본소득 담론의 진전을

 

이런 상황에서 지구적 빈부 격차를 부분적으로나마 완화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은 선진국들의 후진국 후원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세계시민주의들은 보다 근본적인 처방을 주창하고 있다. 토마스 포기(Thomas Pogge)지구적 자원세(Global Resources Tax)’ 신설 주장이 대표적이다.

국제적으로는 선진국들 내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간단없이 추진되고 있다. 부결됐지만 스위스는 1인당 월 30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붙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록 수당성이지만 기본소득 실험이 나타나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 당시 신설했던 청년수당이 지사 당선 후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으로 확대됐다.

이런 추세 속에 비록 코로나 19’의 특수상황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전주시의 재난기본소득이 우리 사회 기본소득 담론을 한층 높이 쏘아 올리는 기대를 해보는 것은 즐거운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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