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두기에 무너진 마음
거리 두기에 무너진 마음
  • 전주일보
  • 승인 2020.03.1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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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 /편집고문
김 규 원 /편집고문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정지시키고 무너뜨린 한 주일이었다. 확진자 수가 한국에서는 점차 줄고 있지만, 유럽과 미국에서 크게 늘면서 사람이 모이는 모든 행사와 운동경기가 중단됐다. 야외 잔디에서 진행하는 PGA Players 골프경기가 첫날 경기를 마친 상태에서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도 있었다. 각국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미국의 메이저리그 야구,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와 독일의 분데스리가 축구도 모두 취소되었다. 7월에 열릴 올림픽 경기도 연기 내지는 취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두려워 집콕할 수밖에 없는데, 모든 스포츠가 중단되어 중계방송조차 없다. 채널마다 해묵은 경기를 몇 번이고 재방송하니 지겹기만 하다. 방송마다 오락프로그램을 편성하여 보여주지만,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유치한 시시덕거림이 지겨워 TV를 끄고 만다. 도서관도 문을 닫아 책을 빌려다 보기도 곤란하고 인터넷을 통해 전자책을 읽기도 하지만, 오래 보면 눈이 피로해 어렵다. 그럴 때는 자전거를 타고 바깥바람을 쏘이는데 미세먼지가 만만치 않아 그마저 용이하지 않다.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셈이다.

요즘 눈이 피로해 멀리했던 컴퓨터를 켜서 미루던 글이나 써보려는데 뭔가 답답한 가슴이어서 글이 되지 않는다. 늘 시간이 없어서 쓰지 못했던 글을 왜 쓸 수 없는지 생각해 본다. 코로나바이러스에 일상이 무너져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기껏 전화로 만나는 이런 시간이 중첩되면서 마음이 무너진 탓이다. 인간은 서로 의지하며 사는 사회적 동물인데 마음을 나누지 못하니 생각이 막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글을 쓸 목적으로 혼자 있는 것과 거리 두기때문에 나 홀로 있는 건 전혀 다른 심리상태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답답한 심사를 달랠 겸 마스크를 쓰고 거리 산책하러 나갔다. 거리엔 사람이 드물고 사람들이 드나드는 상가와 음식점들이 휴업이라는 안내문을 붙여놓고 불이 꺼져 있다. 업소마다 일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일용직일 터인데 수입이 끊어진 그들은 어떻게 살 것인지 다시 마음이 무거워진다. 업소들은 손님이 줄면서 인원을 감축하고 주인 가족이 나와서 운영하다가 그마저 어려워지면 문을 닫는 과정이라고 한다. 자치단체와 정부가 어려운 이들에게 생계보조비를 줄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이런 사태가 장기화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할 것이다.

 

지역사회 거리두기는 양날의 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두려워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하고 조심한 덕분에 전북과 전남, 제주 지역은 보름가까이 새로운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 정부와 자치단체는 지역사회 거리두기를 코로나-19 확산 방지의 기본으로 강조한다. 서로 접촉하지 않으면 전염이 이루어지지 않는 건 당연하다. 교회의 예배나 운동경기의 관중석에 앉는 등 불특정 지역과 계층의 사람들이 모이는 건 물론 위험하다. 그러나 특정 지역에 여행하지 않았고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끼리도 전혀 접촉하지 않는 개인 간의 거리두기는 너무 삭막하다는 생각이 든다.

거리 두기’, 지역사회 거리 두기를 통해 코로나-19가 진정세를 보이기는 하지만, 그 때문에 지역경제와 나라 경제가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으니 문제다. 처음에는 잠시 견디다 보면 수그러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거리두기는 분명히 효과를 내고 있다. 서로 만나지 않으니 바이러스를 옮길 수 없고 점차 확진자 수는 줄어드는 성 싶다. 그런데 모두 거리두기만 골몰하니 상가에도 음식점에도 사람이 들지 않는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거리두기를 강조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지나칠 만큼 조심하니 환자가 나오지 않는다. 그것도 잠시가 아니라 벌써 두 달 가까이, 대구 경북의 신천지 감염자들로 확진자가 크게 늘면서 집콕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리고 시민이 찾아가는 상가와 전통시장, 음식점에 손님이 크게 줄었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업소나 음식점에 가지 않는다. 경제가 어려우니 조금 용기를 내서 바깥출입을 해보라고 권할 수도 없다. 감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없다. 개인의 생명과 직결된 전염병 문제이니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더욱 삭막해지는 사회

 

지난 토요일, 매주 토요일에 만나던 친구들 몇 명이 만났으면 싶었는데, 다섯 가운데 세 사람이 반대해서 둘만 만났다. 아직 만날 때가 아니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나이 들어 바이러스에 취약한 계층이니 더욱 조심하겠다는 것이다. 전북이 비교적 안전하지만, 아직 장담할 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그들의 말에 반박할 근거도 자신도 없어서 아무 말 못했지만 조금 답답했다.

이러니 가까운 사람들과 전화로 말하면서도 쉽게 만나자는 말이나 식사라도 하자는 말을 하지 못한다. 혹시라도 나들이하다가 감염되는 일이 생길까 두려워서이다. 잘 있는 사람을 불러내서 바이러스 감염이라도 된다면 그 뒷감당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출어근(情出於近), 사람은 서로 가까이 있어야 정이 생긴다. 별로 어울리지 않을 사람들이 오래 가까이 지내다 보면 정이 들어 결혼하기도 하고 절친이 되기도 한다.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정에 약하다. 그래서 어려움이 닥치면 서로 돕고 쌓인 정을 풀어낸다.

그런데 서로 만나지 못하고 지내다 보면, 전화정도로는 정()의 끈이 질기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 속담에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서로 만나지 못하면 마음도 점차 멀어지는 것이다. 자주만나는 이웃이 사촌보다 가까워져 이웃사촌이 되는 게 인간의 정리다. 코로나-19로 인해 그나마 이어지던 정마저 멀어질까 두려운 생각이 든다. 우리 전북은 그래도 조금 덜 위험한 편이니 조금씩 문을 열어 만나기도 하고 상가도 이용하면서 사람 사는 모습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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