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 향우 단상 ‘근자열 원자래’
귀성 향우 단상 ‘근자열 원자래’
  • 전주일보
  • 승인 2020.01.2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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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칼럼
이 현 재/논설위원
이 현 재/논설위원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지만 설은 설이다. 상점의 진열대마다 상품이 쌓이고 거리에도 사람들이 붐비니 어김없는 민족의 대 명절이다. 귀성세태도 여전하다. 고향과의 정서적 밀도는 떨어졌지만 당장 오늘 밤부터 해마다 설이면 되풀이되는 민족대이동의 행렬이 이어진다.

설 대목을 노리기는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각 정당 지도부는 서울역과 강남터미널로 총출동해 귀성객들을 환송하고 전북도내 총선 출마자들도 거리마다 현수막을 내걸고 고향을 찾는 향우들을 맞고 있다. 눈앞으로 다가온 4·15총선을 염두에 두고 설 민심을 끌어안기 위한 구애들이다. 그들의 계산된 몸짓들은 한없는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전북의 향우사회, 전국에 산재한 전북인의 디아스포라다.

 

애환과 고난의 파노라마 귀성행렬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귀성행렬은 단순한 사회 현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배경을 헤아리면 이는 대서사시로 다가온다. 전북도민의 대량이탈이 진행되던 초기, 고향은 존재의 뿌리였다. 조상대대로 가족과 친지, 이웃들이 한 곳에 뿌리박혀 희로애락을 등온(等溫)의 체온으로 나눴던 고향은 안전한 삶을 의미했고, 그곳으로부터의 이탈은 부랑의 삶을 의미했다. 그랬으니 어쩌다 고향을 떠날 때면 떠나는 이나 보내는 이나 이산애수(離散哀愁)의 눈물을 한없이 쏟아냈다. 또 타향에 몸담아도 마음은 항상 고향으로 치달아 실개천 소리도 그리워하며 백골이라도 돌아가길 염원했다.

그런 정서 속에 불과 반세기 전 산업화와 함께 최악의 고향이탈이 전북에서 진행됐으니, 전북의 근대사는 그에 정비례 해 이산애수의 눈물을 대량으로 쏟게 했다. 그 눈물의 부피는 통계 속에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정부수립 직후인 1949년 전북의 인구는 205408명으로 전국의 10.16%를 차지했다. 이후 70년이 지난 지난해 전국인구는 5,100여만 명으로 배증했지만 전북의 인구는 180만여 명으로 감소했고 비중 또한 3.51%로 떨어졌다.

심각한 현상은 수도권 비대화로 영남을 제외한 전국의 인구비중이 1949년에 비해 모두 떨어졌지만 절대인구는 증가한 반면, 절대인구마저 감소한 곳은 전북이 유일하다는 점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진행된 절대인구 감소는 전북의 낙후와 전북도민의 빈곤한 삶을 웅변하는 대목이다. 전북도민의 귀성행렬은 생존을 위해 빈 몸으로 타지로 떠났던 전북의 향우들이 반세기 동안 겪어야 했던 애환과 고난의 파노라마인 셈이다. 여전히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전북도민의 고향이탈을 또 다른 상념을 자아낸다.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 논어 자로편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 온다는 뜻이다.

 

척박한 삶의 부피 향우사회

 

2500년 전 중국 춘추시대, 자신의 이상을 알아줄 제후를 찾아 고국인 노나라를 떠나 천하를 주유하던 공자가 초나라에 이르자 실력자인 섭공이 극진히 환대했다. 당시 초는 백성들이 국경을 빠져나가 다른 나라로 가는 통에 인구가 반으로 줄어 세수와 군사력 확보에 큰 곤란을 겪고 있던 터였다.

섭공이 고민을 말하며 공자에게 해법을 구했다. “날마다 백성이 도망가니 천리장성을 쌓아 막을까요?” 공자가 제시한 해결책은 바로 근자열 원자래였다. 공자의 말씀은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는 역설법(逆說法)에 해당한다. 초왕과 공경대부(公卿大夫)들이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진리를 몰라서 백성들을 유량의 거리로 몰아냈겠는가?

실제로 백성들이 원하는 것은 소박한 삶이었다. 공자의 시대라면 더욱 그러했다. 열심히 일해서 그저 배만 부르면 배를 두드리고 발로 땅을 구르며 태평성대를 노래했던 백성들이었다. 그러나 통치자들은 패권 다툼에 눈이 멀어 전쟁을 일삼지 않으면 향락에 빠져 백성들이 애써 일군 재산을 탕진할 뿐이었다. 왕이 백성을 경시하면 고관대작들이 그 뒤를 따르고 다시 중간관리, 하급관리 순으로 그 행태를 답습해 백성들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할 뿐이었다.

근자열 원자래는 비단 왕조시대의 경구에 그치지 않는다. 세습계급이 선출계급으로 대체된 덕택에 옛날과 같은 학정과 수탈은 사라졌지만 지도자의 리더십에 따라 주민들이 유랑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동서양이 따로 없다. ‘티부의 가설리벡모델근자열 원자래의 현대판에 해당한다. ‘티부의 가설에 따르면 주민들은 지역 간에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인구 증감에는 지방공공재에 대한 주민들의 선호가 표현된다. 스웨덴 의 소도시를 실증적으로 조사한 리벡모델은 지역 간 소득 차이는 있을망정 생활편의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어메니티는 비슷한 지점에서 균형을 이룬다고 분석하고 있다. 보다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이동하는 인구가 주민의 삶을 말해주는 지표라는 의미다.

티부는 한걸음 더 나가 보다 나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으로 떠나는 지역으로 떠나는 이주행렬을 발에 의한 투표(voting with feet)’라고 정의한다. 티부의 발 투표는 오늘 전북도민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여전히 진행형으로 나타나고 있는 전국 최악의 인구감소 현상은 바로 전북도민의 삶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손 투표로 발 투표 멈춰 세워야

 

이런 가운데 4·15총선을 향한 출사표가 난무하고 있다. 국회 입성을 꿈꾸는 후보자들마다 외치는 구호는 새로운 전북시대 개막이다. 전북의 개발을 선봉에서 이끌어 탈 낙후의 고리를 끊겠다는 약속들이다. 하지만 지난 연말과 새해 초에 나오는 통계들은 점점 고착되는 현상이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경제성장률이 전국 평균을 크게 밑돌고,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나는 청장년층이 줄을 잇고 있다.

그 책임의 일단을 전북의 정치지도자들에게 물어야 할 것임은 말할 것 없다. 더불어 전북도민들이 이번 4·15총선에서 제대로 된 손 투표를 통해 전북을 등지는 발 투표를 멈춰 세울 수 있을 지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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