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조(迷鳥)
미조(迷鳥)
  • 전주일보
  • 승인 2020.01.1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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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백금종/수필가
백 금 종 /수필가

내 고향 저수지는 요즘 생경한 그림이 펼쳐진다. 기러기나 가창오리 떼가 날아와 온 저수지를 삶의 각축장으로, 때론 사랑의 경연장으로 만든다. 황량한 겨울 하늘에 노을이 넓게 날개를 펴면 철새들의 군무는 우리를 황홀경에 빠뜨린다.

가을걷이가 막바지에 이를 때쯤 철새들이 무리 지어 북쪽에서 날아온다. 빈들을 거쳐 허공을 가득 메우며 수천 마리 아니 수만 마리가 떼 지어 날아든다. 들판을 한 바퀴 빙 돌며 묘기를 자랑하는가 하면 우리 마을 상공을 비행하며 끼룩 끼룩인사도 한다. 그렇게 날아오는 철새를 보며 겨울이 깊어가고 있음을 실감하곤 한다.

자연의 질서에도 파격이 있듯이 무리를 지어 날아오는 새들과는 달리 반대 방향으로 나는 새들이 있다. 반대로 나는 새 중에는 두 어 마리가 짝을 지어 나는 새가 있는가 하면 혈혈단신 혼자 몸으로 나는 새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새를 바라본다. 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반대쪽으로 날아가는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다가 무리에서 쫓겨나는지 아니면 싫다고 스스로 뛰쳐나왔는지? 그리고 날아가는 곳은 정녕 어디인지? 소실점을 향해 달리는 비행기처럼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

둘이 나는 새는 그나마 짝꿍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신방을 차리기 위해 밀월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랑하는 자식들이 기다리는 보금자리를 찾아가는지? 그렇게 생각하니 안쓰럽단 생각보다 다정하고 행복하게 보였다. 그리고 날갯짓도 힘찬 듯했고 모습도 신랑 신부처럼 예뻐 보였다.

그런데 혼자 나는 그 새는 어떠한가? 날갯짓에 힘도 빠진듯하고 방향감각도 없는 듯했다. 그저 정처 없이 날아가는 듯했다. 날아서 서녘의 노을 속으로 사라지면 나는 생각하는 갈대가 된다. 얼마나 외로울까? 어느 곳에서 고단한 날개를 접을까? 잡다한 상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홀로 드넓은 하늘을 나느라 지쳐 허덕일 그 새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 새를 보면 지난날의 나의 모습이 불현듯 생각난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나는 새를 미조迷鳥라고 하는데 나도 그 새들처럼 길을 헤맨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꿈을 좇아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에는 꿀이 흐르는 강이 있으려니 했다. 겨우 허리만 펼 수 있는, 그것도 외풍이 황소바람처럼 드나드는 썰렁한 골방에서도 나의 꿈을 키웠다. 나의 미래에 대해 유채색 그림을 장장이 그리고 또 그렸다. 나만의 길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 시간에는 분명 나도 한 마리의 미조였다.

 

내가 40여 년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사회에 나설 때도 미조가 된 기분이었다. 세상에는 나만 모르는 것이 널려있었다. 모두가 낯설고 서툴기만 했다. 그 속에서 나만의 길, 2인생의 좌표를 찾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험난한 세파를 헤엄쳐 건너는 일도 버겁고, 때로는 인간관계를 맺는 요령도 미숙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주저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부단히 날개를 펄럭이는 중이다.

이제는 가정에서조차 미조가 되기도 한다. 여성의 발언권은 세어지고 남성들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가족 간의 대화에서도 권위가 졸아들어 참고발언을 할 뿐, 결정은 아내나 아들의 몫으로 넘어갔다. 지난날 내 한마디가 지상명령의 권위를 지녔던 적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나 혼자 외로운 미조로 보내기엔 나의 여생은 아직 한참 남았다.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가다듬고 대열의 앞에 서서 가족을 이끄는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 그 길이 비록 만만치는 않겠지만, 집안의 중심으로서 가족이 편안히 날아 갈 수 있도록 힘껏 날갯짓을 해야겠다.

새들이 무리 지어 날 때는 V자 대형을 이룬다고 한다. 노을 진 가을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편대를 이루어 물결의 너울처럼 편성되는 V자 대형, 그것은 앞에 나는 새의 날개 끝에서 발생하는 상승기류를 타기 위해서란다. 앞에 나는 새의 덕분에 뒤편의 새는 그만큼 힘을 덜 쏟아도 된다. 앞에 나섰던 새가 힘이 지치면 이번에는 뒤에서 따라오던 다른 새가 앞으로 나서면서 그 대열을 이끈다. 그렇게 서로 돕고 협력하며 날면 힘도 덜 들고 멀리까지 날 수 있단다. 또 대열에서 이탈되지 않기 위한 그들만의 비책이라고도 한다. 따뜻한 남쪽에서 겨울을 보내고, 북만주에 보금자리를 틀 수 있는 것은 바로 새들의 편대 비행 덕분이라고 한다.

그에 비해 영장이라 우쭐하는 인간들은 어떠한가? 협력해야 하느니 단결해야 하느니 말은 쉽게 해도 막상 이익이 상충 되는 지점에 이르면 쉽게 마음을 바꾼다. 협조해야 할 때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대며 꽁무니를 빼고, 얻을 때는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하는 게 지혜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일에 주저주저하고 망설이는 게 인간 세상이다.

생각하는 가운데 다시 철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와 내려앉는다. 저수지에서 자맥질하던 새들과 새로 날아온 새들의 서로 다른 목소리로 한 동안 소란하다. 크고 작고, 희고 검고, 부리가 길고 짧은 새들이지만, 서로 싸우거나 다투는 기색 없이 잘 어울린다. 서로 다르면서도 다투지 않는 새들, 같은 얼굴에 같은 말을 쓰면서도 서로 헐뜯고 싸우는 인간을 생각한다.

잠시 후면 석양 노을을 배경으로 화려한 군무가 이어질 것이다. 아름다운 군무를 기다리며 조금 전에 저 혼자 외롭게 날아간 미조를 생각한다. 그 미조가 영원히 무리와 섞이지 못하는 외톨이로 남지 않았으면 한다. 자꾸만 그 한 마리 새에 마음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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