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흐르는 군국주의 잔재
대학에 흐르는 군국주의 잔재
  • 전주일보
  • 승인 2020.01.1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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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모 대학에서 선배 학생이 후배들의 행동을 일일이 간섭하고 억압하는 소위 똥군기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단체 대화방 내용이 공개됐다. 매년 대학에 신입생이 입학하면 오리엔테이션을 빙자하여 선배들이 군기를 잡고 운동권에서는 포섭할 대상자를 찾는 행사가 치러지던 전통이 진화와 변형을 거쳐 최근에는 SNS에 사용하는 문자마저 간섭하기에 이른 모양이다.

대화방에 공개된 신입생 준수사항을 살펴보면, 각종 부호로 된 이모티콘을 선배에게 보낼 수 없고, 아침 일찍 선배에게 연락할 때는 이른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선배님이라는 표현을, 밤늦은 시간에는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라는 표현을 머리에 붙이도록 요구했다고 한다. 날이 바뀌면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000입니다.’라고 깍듯이 선배님이라는 호칭과 경어를 쓰도록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복장규제, 여학생의 머리는 귀가 보이도록 묶도록 하고, 술을 마실 때에도 반 부대표에게 사전에 연락하도록 하는가하면, 요즘 젊은 학생들의 필수품인 에어팟 조차도 강의시간에만 사용하도록 금지시켰다고 한다.

사실 이런 서열화는 군사문화 이전 일본 강점기에 일본이 세운 초중고 대학 등 학교에서 만연하던 문화다. 후배는 선배에게 경례를 해야 하고 경어를 쓰는 것은 물론 어른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야만 했던 군국주의 문화이다. 학년 서열이 엄격하여 단 1학년 차이여도 선배는 후배에게 해라를 하고 후배는 선배에게 경어를 써야 했던 문화가 광복 이후에 까지 이어져왔다.

그리고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이후 학교에 들이닥친 군사훈련과 경직된 군사문화가 40년 넘게 이어지면서 선후배간 군기잡기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 뒤에 민주화라는 이름의 변화가 있었지만, 학교문화는 별로 달라지지 않다가 글로벌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의 군사문화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를 알게 되면서 차츰 사라졌다.

입시지옥에 시달린 학생들에게 대학생활은 새로운 학문의 자유와 함께 새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는 마당이 되어야 한다. 고등학교까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수련의 시기였다면, 대학생활은 자유와 무한상상 속에 살면서 창의력을 기르고 시대에 적응하여 발전을 꿈꾸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그런 학교생활을 방해하고 억압하는 전통은 교육과 나라를 망치는 패악에 다름 아니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학생들의 자율문제가 아니라 전북의 인재양성과 나라발전을 위해 반드시 뿌리 뽑아야할 일이다. 대학은 대학대로, 정부가 개입해서라도 반드시 그 진원을 파악하여 재발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해야 한다. 지금은 군대에서도 계급 사이가 엄격하지 않고 선임과 후임 사이에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시대다.

대학은 대학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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