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좋픈날
어떤 좋픈날
  • 전주일보
  • 승인 2020.01.0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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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 영 숙 /수필가
김 영 숙 /수필가

대형마트 비정규직의 애환을 그린 카트라는 영화를 봤다. 개봉한 지 6년이 지난 영화인데 무료한 휴일 시간 때우기를 하느라 TV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다가 우연히 만났다모진 일을 다 겪으면서도 참으며 살아온 주인공인 선희 씨는 회사로부터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았지만, 막상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해고 통지를 받는다. 선희 씨뿐만이 아니라 싱글맘, 청소원, 순박한 아줌마, 젊은이까지 비정규직인 이들이 하루아침에 밥벌이 터를 잃을 위기에 내몰렸다. 그들은 노조를 만들어 회사의 부당한 처사에 대응하기에 이른다.

영화는 모 대형마트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일방적 복종과 희생, 열악한 노동 현실에 대한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 촉구하는 내용으로 만들어졌다. 손님은 왕이라는 영업논리를 내세워 일방적인 강요와 사측이 제시하는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걸 구실로 일방적 해고를 일삼는 갑과 을의 서글픈 현실적 주소 차이를 잘 그려낸 영화였다. 영화는 아직도 사회 곳곳에 드러나지 않는 차별이 존재함을 알리고 그 비정규직들에게 세상과 맞설 용기를 주는, 그들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세력에게 경고를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나의 이야기, 내 가족의 이야기, 내 이웃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편의점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 대기업 사원, 중소기업 사원, 나처럼 약국 전산원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산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모두 먹고 살기위하여, 노동의 대가 즉 임금을 목적으로 일하는 노동자다. 크게 보면 우리나라 대부분 국민은 노동자이고 여기에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노동자 절반 이상이 그런 노동시장에서 일한다. 직장인가운데 고용안정과 복지, 승진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회사의 일방적인 해고에 계약직이라는 약자가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선택, 그리고 최소한의 방어를 위해 선택한 길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버거운 인생의 무게였다. 1%의 갑과 99%의 을이라는 지형도의 고착화, 이 무거운 부정의 지시어를 어떻게 이해할까?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했다.

영화 후반에 주인공 선희가 비장하게 호소하는 대사 중에 저희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에요라는 말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회사는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능률을 올려서 회사의 수익을 높이면 정규직으로 전환 해준다는 유혹도 빼놓지 않았다.

영화는 그 과정을 무겁게만 그리지 않았다. 얼핏 보면 경쾌하고 밝다. 마치 처음 경험하는 파업이 재미있다는 듯 웃음꽃도 피어난다. 그래서 더 큰 울림을 안긴다. 리쌍의 노래 가사 가운데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처럼, 이들의 웃음이 마냥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업 영화로서 재미를 보이면서도 이들의 아픔과 감정을 놓치지 않고 잘 담아냈다. 웃음 속에 전해지는 비정규직들의 사연은 내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인간답게 살아보고자 용기를 내어 사회구조의 모순과 맞서서 싸우는 비정규직의 평범한 하루하루는 그래서 위태롭고 불안하다. 이 영화의 내용이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는 누구나 새해 첫날부터 1년은 365일이라는 날 수를 공평하게 부여받았다. 그런데 이 사회는 비정규직에게만은 1년을 364일로 살라며 서글픈 을()의 삶을 강요한다. 아등바등 열심히 살지만, 도무지 넘어설 수 없는 그들의 하루가 있다.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으려고 갑()이 부리는 꼼수로 만들어진 계약서 때문이다. 세상은 그렇게 그들에게 364일만 근무하게 하고 모자라는 하루는 움켜쥔 채 좀처럼 나누려 하지 않는다. 물론 정권이 바뀌고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위한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동안 억눌렸던 을()들이 체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큰 것을 바라는 게 아닌데,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해고 없는 직장, 노력하는 만큼의 보상받고 인간으로서 차별 없는 일터가 되길 바라는 소박한 소망뿐인데, 더불어 같이 잘 살자고 할 뿐인데, 하루를 챙기려는 목소리가 커지면 그들은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으니까하며 밥줄을 미끼로 재갈을 물리고 심지어 종북 딱지까지 빌려서 해고의 무기로 삼기도 한다.

노동을 사회 경제 현상의 종속변수로 여기는 세상에서 노동자는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늘 끊임없이 흔들린다. 알토란같은 성장의 결실은 기업이나 정규직이 챙기면서 왜 실패의 아픔은 비정규직의 몫이어야 하는지.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며 비정규직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을 나락으로 밀어내는 짓은 암묵적으로 휘두르는 사회적 흉기이다. 있는 자들에게는 의미 없는 365일 중에 하루 일 수 있지만, 비정규직의 하루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또는 찬란하게 다가올 미래를 꿈꾸며, 때로는 목소리를 낮추고, 때로는 비굴하게, 때로는 비참하게, 버텨내며 찾아야 하는 모든 을()의 밥줄이요, 눈물겨운 시간이다.

나도 경자년 첫 출근 날 ()은 노동법령을, ()은 노동법령의 범위 내에서 정한 약국의 제반 규정을 성실히 준수할 것을 서약하고 다음과 같이 근로 계약을 체결한다.’로 시작하는 계약서를 썼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운 좋게 365일을 다 몫으로 챙길 수 있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참 좋픈 날이었다.

 *좋프다 : 좋은데 슬프다는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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