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복’-‘여당 복’, 우습고 무서운 이야기
‘야당 복’-‘여당 복’, 우습고 무서운 이야기
  • 전주일보
  • 승인 2020.01.0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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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칼럼
이 현 재/논설위원
이 현 재/논설위원

쏟아져 나온 새해 정치의식 여론조사는 여론조사를 매춘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를 떠올리게 한다. 널뛰기를 하는 수치들이 여론조사를 의뢰한 언론사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홍수를 이룬 새해 여론조사 결과를 대충 훑어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긍정 평가는 50%, 민주당 지지도는 40%, 자유한국당 지지도는 30% 안팎을 오간다.

새해 여론조사 수치를 접하는 개인적 감정은 당혹황당이다. 황당한 것은 한국당의 지지율이다. 수구적 색채를 탈피하지 못한 채 정치판을 정쟁으로 몰아넣는 정파에게 우리 국민들이 30%를 오가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니, 차마 믿기가 힘들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 또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책 성과는 부진하고 인사 파행은 거듭되는데, 핵심 인사들의 일탈 및 불탈법 행위가 잇달아 터지고 있다.

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계속하자 야당 복이 국민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상대의 실책 덕을 보는 것은 문 대통령과 민주당뿐이 아니다. 정부·여당의 실책 덕을 보고 있는 것은 한국당도 못지않다.

실없는 셈이지만, 그렇다면 누가 더 덕을 보고 있을까. 대체로 정부·여당을 말한다. 그렇지만 전자보다 후자 쪽이라는 게 개인적인의 견해다. 구체제를 종식시킬 아마겟돈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올 총선에 강력한 잠재변수로 등장했기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색을 띠고 섣부르게 입장을 밝히는 것은 주저스럽기도 하거니와 위험하기도 하다. 진영으로 갈려 상대방의 말엔 아예 귀를 닫아버린 현실에서 자신들과 다른 목소리는 좌파아니면 수구로 매도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설 자리를 잃은 이성은 세외(世外)로 향하기 마련이다. 그곳에선 떠오르는 대로 몇 가지 이야기를 자유롭게 말 할 수 있다. 우습고도 슬픈 이야기 두 개와 무서운 이야기 두 개다. 말해도 듣는 이 없지만 음미하면 유머 속에 촌철살인이 교훈이 담겨 있다.

 

#웃픈 이야기 1. ‘민주당 좌파

조지훈 시인의 수필 우익좌파(右翼左派)’. 정치 과잉과 좌우대립이 오늘의 세태 못지않았던 해방정국이 무대다.

오랜만에 두 친구가 거리에서 만났다. 그 중 급조 공산당원인 친구가 소속 정파를 묻자 대답이 걸작이다. “난 요즘도 민주당을 하네.” 묻던 친구의 놀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자네같이 깨끗하게 지내온 사람이 친일파·민족반역자·미군정의 주구 노릇을 하다니...” “난 민주당을 하지만 그래도 좌파야” “예끼 사람, 민주당은 천하가 다 아는 극우익인데 그 안에 좌파가 다 무슨 좌파야.” 당시 민주당은 한국민주당으로 우익의 선봉이었다.

흥분하는 좌익투사를 이끌고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 나누자고 골목 빈대떡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은 민주당파 왈, “여기가 우리 당 본부야”.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좌익 친구에게 술을 권하며 그가 한 말은 이러했다. “난 요즘도 막걸리를 마시네. 막걸리는 백성의 술이니 민주(民酒) 아닌가.”

그제야 말뜻을 안 좌익 친구 왈, “그럼 좌파는 또 뭔구?” “것두 모르나? 옛날엔 선술집에서 먹으니 입파(立派)였지만 요즘은 앉아 마시니 좌파(坐派) 아닌가?”

 

#웃픈 이야기 2. 세상에서 가장 억센 것, ‘수염

전두환 신군부 철권통치가 기승을 부리던 1980년대, 한국 언론의 횃불이었던 당시 김중배 동아일보 논설위원의 일화다.

짓궂은 친구가 거나한 술자리에서 대뜸 수수께끼 하나를 던졌다. “여보게, 이 세상에서 가장 억센 게 뭔지 아나?” 답을 찾지 못한 김중배 선생에게 친구가 속사포처럼 쏘아왔다. “이 사람이 멍청하기는... 요즘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게 어디 얼굴인가, 그건 강철판일세. 그 강철판을 뚫고 나오는 수염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억센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철면피(鐵面皮)라는 표현도 이미 모자란다는 뜻이었다. 김중배 선생은 그 친구가 강철면피(鋼鐵面皮라는 새 낱말을 창안 중이었던 모양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중배 선생은 다른 글을 통해 찬성을 위한 찬성에 반대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에도 반대한다며 응원단식진영 논리를 비판했다.

 

#무서운 이야기 1. ‘악의 평범성

마르틴 뤼밀러 목사(1982~1984)는 히틀러 지지자였다. 그는 훗날 나라는 혼란스럽고 무신론을 내건 공산주의자들이 득세했다. 그 상황에 갇혀 나는 히틀러의 을 믿었다고 후회했다.

나치가 공산당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태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서운 이야기 2. ‘두 번 짓는 죄

기원전 323, 아라비아 반도 정벌을 준비하던 알렉산드로스 3세가 33세의 젊은 나이로 바빌론에서 사망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의 위세에 눌려 있던 아테네인들은 그 소식을 접하고 예순이 갓 넘은 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를 불경죄로 고소했다. 그 이전인 기원전 399년 아테네 배심원은 대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불경죄로 사형에 처했었다.

신변에 위험을 느낀 아리스토텔레스는 고향 칼키스로 가기 위해 도시를 빠져나오며 한 마디 말을 남겼다. “아테네가 두 번이나 철학에 죄를 짓도록 할 수는 없다.”

415일 실시되는 제21대 총선에 문재인 정부 핵심 인사들이 대거 전북으로 귀환해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그 중에는 한병도 전 정무수석,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이강래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각각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 상가 투기 의혹, 이권 개입 의혹을 받고 있다. 문 정부의 개혁동력을 떨어뜨리고 촛불민심에 죄를 지은 셈이다. 그들의 총선 출마는 촛불민심에 두 번 죄를 짓는 격일까, 결백의 주장을 민의로 심판받는 일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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